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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모토 레이지 은하철도999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전시실에서 
마츠모토 레이지 은하철도999전이 3월 18일부터 5월 1일까지 전시된다. 
지난 일요일 예술의전당에서 르 코르뷔지에전과 함께 은하철도999전을 관람했다. 



일본만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만화가 중 한 명이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다. 
그리고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바로 은하철도999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의 제목도 은하철도999전이라고 명명된 듯하다. 
은하철도999의 일본어 발음은 깅카테츠도스리나인(銀河鉄道999)이고 
서양권에서는 GALAXY EXPRESS 999로 알려져 있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2012년에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를 수상하기도 했고 
이보다 앞서 일본 정부로부터도 문화예술에 공헌한 공로로 훈장과 포장을 수여받은 바 있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대표작은 은하철도999, 우주해적 캡틴하록(宇宙海賊キャプテンハーロック),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戦艦ヤマト), 천년여왕(新竹取物語 1000年女王) 등 다양하다. 
많은 작품이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물인 것은 작가 본인이 우주여행을 간절히 꿈꾸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편도티켓이라도 좋으니까 나를 우주에 보내 달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우주에 대한 동경은 무한한 것이었다. 



마츠모토 레이지 은하철도999전은 전시실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한가람미술관 3층 로비의 벽면을 장식하는 그림과 기념품샵에서 촬영한 사진을 위주로 올리고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을 웹에서 발췌하여 추가로 게재하는 방식으로 리뷰를 작성해 보았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1938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육군 항공대 조종사였고 2차대전 때에는 전투기에 탑승하여 연합군과 싸운 참전군인이었다. 
일본의 패망 후 그의 아버지는 후쿠오카에서 야채 행상을 시작했고 
1950년 육상자위대가 설립되면서 다시 군인이 될 수도 있었으나 
많은 부하를 잃고 돌아와서는 무슨 낯으로 미국이 만든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하늘을 날 수 있겠느냐며 
행상을 계속했다. 마츠모토의 유년기는 가난했지만 그는 기개 있고 강인한 아버지를 존경했다. 
아버지에게서 느낀 진정한 사무라이의 이미지는 후에 캡틴하록의 모델이 되었다. 

2015년 6월 구인잡지 리크루트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마츠모토 레이지는 가난 때문에 힘들다고 느껴본 적은 없으나 가난이 원망스러웠던 적은 있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고 기계와 우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에 진학하여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이미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여 당시 회사원의 월급에 맞먹는 원고료를 받으면서 
만화가라는 직업세계를 체험하고 있었고 그가 집에 가져다주는 원고료가 가계에 보탬이 되고 있었기에 
직업만화가의 길을 선택했다고 밝히고 있다. 



꿀벌의 모험(蜜蜂の冒険) - 마츠모토 레이지의 만화가 데뷔작. 
1954년 코쿠라미나미(小倉南) 고교 재학 중 
만화소년(漫画少年) 공모전에 이 작품이 당선되어 만화가로 데뷔하게 된다. 



1956년 큐슈를 방문했던 테즈카 오사무(手塚治虫)의 의뢰를 받고 
마츠모토 레이지는 만화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테즈카의 철야작업을 도왔다. 
당시 촬영한 사진을 보면 뒷열 중앙이 일본 만화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우주소년 아톰(鉄腕アトム)을 창조한 테즈카 오사무(당시 28세)이고 
앞열에 앉아 있는 이가 고교생 시절의 마츠모토 레이지(당시 18세)다. 
네 명 모두 안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우주작전제1호(宇宙作戦第一号) - 1958년에 출간된 마츠모토 레이지의 첫 단행본이다. 
1957년 마츠모토는 고교를 졸업하자 야간열차에 몸을 싣고 토쿄로 상경하여 
소녀만화잡지 소녀(少女)에 만화를 게재하며 본격적인 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소년만화잡지에는 기성작가들이 많았기에 신인작가가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만화가들이 늘어나 소녀만화잡지에서 남성만화가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23세가 되던 1961년 마츠모토는 세 살 연상의 만화가 마키 미야코(牧美也子)와 결혼했다. 
작년에는 이들 만화가 부부의 콜라보전이 코베에서 열리기도 했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본명은 마츠모토 아키라(松本晟)다. 
데뷔 이래로 본명을 사용해 오다가 1965년부터 마츠모토 레이지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레이지의 레이(零)는 영원을 의미하고 지(士)는 자신의 신념대로 사는 사나이를 의미한다. 
신념을 가지고 목숨을 걸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그의 격언과 펜네임이 잘 어울린다. 



사나이 오이동(男おいどん) - 주간소년매거진(週刊少年マガジン)에 1971년 5월부터 1973년 8월까지 연재. 
사나이 오이동은 마츠모토 레이지 하면 떠오르는 SF만화와는 전혀 다른 장르의 만화이나 
그의 이름을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린 첫 히트작이다. 
주인공 오오야마 노봇타(大山昇太)는 키도 작고 안짱다리에 고도근시에 추남이고 가난한 하숙생이다. 
그러나 어려운 현실을 살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청년이라서 사나이 오이동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마츠모토 본인의 자전적 작품이기도 한 이 만화가 대중의 관심를 끌게 된 것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하숙집에서 많은 사람들과 하숙을 하던 마츠모토는 인킨타무시를 앓고 있었다. 
인킨타무시(いんきんたむし)란 사타구니에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사타구니 무좀이다. 
발에 생기는 무좀과 마찬가지로 전염성이 강해서 단체생활을 하는 경우 더욱 발병하기 쉬워서 
당시 인킨타무시를 앓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마츠모토는 약국에 가서 사타구니 무좀 약을 달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워서 참고 지냈으나 
이 병의 학명이 백선균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약국에 가서 백선균 약을 달라고 하여 치료에 성공했다. 
자신의 체험담이기도 한 이 에피소드를 사나이 오이동에 사용했더니 
작가와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던 독자들이 보낸 팬레터가 택배상자 한 가득 도착했고 작품의 인기도 급증했다. 
제목에 쓰인 오이동은 주인공이 자신을 지칭하는 1인칭 대명사이고 
주인공의 먼 후손이 캡틴하록의 친구 오오야마 토치로가 된다. 



우주전함 야마토 - 1974년 10월부터 1975년 3월까지 방영된 TV 애니메이션이고 
동명의 만화도 같은 시기에 연재되었다(1974년 11월 ~ 1975년 4월). 

본방송 때에는 같은 시간대에 방영된 알프스 소녀 하이디, 플란다스의 개 등에 밀려 시청률 저조로 
원래 36화 방영 예정이었던 것을 26화로 조기종영하였으나 재방송 때에 큰 인기를 얻으며 재조명되었다. 
우주전함 야마토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고 
마츠모토 본인은 자신이 원작자라고 주장하는 작품이지만 저작권과 관련된 소송에서 2002년 법원이 내린 판결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애니메이션 기획자였던 니시자키 요시노부(西崎義展)가 우주전함 야마토의 원작자가 되었다. 
원래 우주전함 야마토는 1973년부터 니시자키에 의해 기획되어 제작에 들어갔고 
마츠모토는 1974년에 디자이너로 참가하여 캐릭터와 메카 디자인을 새로 고안했고 
방영 직전에는 감독직까지 역임하였으나 원작자라는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어 
우주전함 야마토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 판결 이후로 제작된 야마토에선 그림체가 일변했고 
스태프의 이름에서 마츠모토 레이지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은하철도999 - 소년 King(少年キング)에 1977년 1월부터 1981년 11월까지 연재. 
은하철도999는 마츠모토 레이지 최고의 히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주전함 야마토가 조기종영되자 마츠모토는 차기작으로 구상하고 있던 
만화의 원고 5회 분량을 출판사에 넘기고 모든 것을 잊고자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났다. 
사방이 탁 트인 대자연을 접하고 쏟아질 듯 온하늘이 별로 뒤덮인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는 시청률과 인기의 덧없음을 깨달으며 마음을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 돌아와 보니 여행을 떠날 때와는 상황이 일변해 있었다. 
재방송된 우주전함 야마토의 치솟은 인기는 사회적 현상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고 
자신이 차기작으로 구상해서 보냈던 원고 은하철도999도 출판사로부터 연재 허가가 나 있었다. 





은하철도999의 이야기는 기계인간들이 부와 권력을 차지한 반면 
인간의 몸을 유지한 정상적인 인간들은 빈민으로 살아가는 미래의 지구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철이(테츠로) 소년은 아름다운 엄마와 단둘이 사는 모자가정이었으나 
인간사냥을 취미로 하는 기계백작에 의해 엄마를 잃는다. 
정신을 잃은 철이를 구해준 것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인 메텔이었다. 
메텔은 철이에게 함께 여행하자며 안드로메다행 정기권까지 건네준다. 
머나먼 별 안드로메다에서는 무료로 기계인간이 될 수 있다고 들은 적이 있는 
철이는 메텔에게 총을 빌려서 기계백작의 저택을 찾아가 엄마의 복수를 한 후 
메텔과 함께 특급열차 999호에 몸을 싣고서 지구를 뒤로한 채 길고 긴 우주여행을 시작한다. 

은하철도999는 철이가 기계인간이 되기 위해서 안드로메다까지 간다는 이야기의 중심축을 유지한 채 
매회 정착하는 행성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 옴니버스식 구성의 작품이었다.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은하철도999는 1978년 9월부터 1981년 3월까지 113화에 스페셜판 3화까지 
총 116화가 방영되었고 대히트를 기록했으며 히로인이라 할 수 있는 금발의 메텔은 소년들의 연인이 되었다. 
국내에선 1982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쳐서 방영된 바 있고 역시 큰 인기를 얻었다. 





은하철도999는 1979년에 개봉한 극장판 은하철도999(銀河鉄道999)가 16억엔이 넘는 흥행수입을, 
1981년에 개봉한 극장판 안녕 은하철도999 안드로메다 종착역(さよなら銀河鉄道999 アンドロメダ終着駅)이 
11억엔이 넘는 흥행수입을 내며 영화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1981년에 완결되었던 은하철도999가 15년 후인 1996년에 다시 연재되기 시작한다. 
안드로메다 결말로부터 1년의 세월이 흐른 후 철이와 메텔이 다시 999호에 올라 우주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인데 
이전까지의 이야기를 안드로메다 편,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를 이터널 편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이터널 편은 연재하던 잡지가 폐간되어 미완인 채로 연재가 중단되어 있다. 
이터널 편을 다룬 극장판 은하철도999 이터널 판타지(銀河鉄道999 エターナル・ファンタジー)가 
1998년에 개봉하였으나 흥행수입은 2억엔에 그쳐 적자를 기록했다. 



은하철도999는 C62형 증기기관차를 모델로 하고 있다. 
증기기관차(Steam Locomotive)는 약칭으로 SL로 부르기도 한다. 
은하철도 999 하면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으로 시작하는 오프닝곡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국내에서 새롭게 작곡한 주제가였는데 일본 오프닝곡보다 더 나았고 타타타를 부른 김국환이 노래했다. 





우주해적 캡틴하록은 플레이코믹(プレイコミック)에 1977년 1월부터 1979년 9월까지 연재되었다. 
자유의 깃발 아래 모여든 승무원들과 함께 아르카디아호를 타고서 
지구를 침략하려는 외계인 마존 일당과 싸우는 고독한 선장 하록은 소년들의 로망이 되었다. 



TV 애니메이션 우주해적캡틴하록은 1978년 3월부터 1979년 2월까지 전 42화가 방영되었다. 



2013년에 공개된 애니메이션 우주해적 캡틴하록(宇宙海賊キャプテンハーロック)은 
실사영화를 보는 듯한 박진감을 느낄 수 있다. 



국내에서 별나라 손오공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SF 서유기 스타징가(SF西遊記スタージンガー) 역시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이고 1978년 4월부터 1979년 8월까지 방영되었다. 
오로라 공주와 코스모스호가 지금도 기억난다. 



천년여왕은 1980년 1월 28일부터 1983년 5월 11일까지 
산케이신문에 월요일부터 금요일에 걸쳐서 매일 1페이지씩 총 1000회가 연재되었다. 
천년여왕은 은하철도999의 프리퀄에 해당한다. 
은하철도999에서는 악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안드로메다 성운 기계제국의 여왕 프로메슘이지만 
지구에 머물며 유키노 야요이(雪野弥生)라 불리던 시절의 프로메슘은 지구를 수호하는 천년여왕이었다. 
후에 메텔과 에메랄다스의 어머니가 되는 프로메슘이기에 
천년여왕은 이들 자매와 관련된 이야기들의 원천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토쿄 아사쿠사와 오다이바를 오가는 수상버스 히미코(ヒミコ)는 2004년부터 운항을 시작했다. 
필자도 일본에 있었을 때 직접 본 적이 있다. 히미코 역시 마츠모토 레이지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회에선 일본에서도 공개한 적 없는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직필원고가 공개되었다. 
90년 후반에 새롭게 연재되었던 은하철도999 이터널 편에 해당하는 
단행본 17권 중 세인트 엘모의 화룡. 19권 중 혹성 대아마존 생명의 찬가. 20권 중 오페라 친구에게 바치는 노래 
이렇게 세 편의 직필원고가 전시실에 전시되어 전시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일본어 대사의 일부분을 한글로 번역해 놓아 각 단편의 대략적인 내용은 파악이 가능하지만 
빼곡한 일본어 대사의 대부분은 번역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일본어를 모르는 관객은 원고 속의 대사 내용을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관객이라면 만화책을 읽듯이 원고를 즐길 수 있겠다. 
17권 세인트 엘모의 화룡을 다 읽고 나니 시간이 부족하여 두 에피소드는 그림만 대충 훑고 지나쳐야 했다. 

그러나 17권에 등장한 용어나 설정 등만 살펴보더라도 작가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느껴볼 수 있었다. 
카논이라는 기계요정이 등장하고 유기체가 아닌 금속세포로 이루어진 메타노이드라는 금속생명체가 등장하고 
세인트 엘모의 불(정전기 방전현상)에 관한 언급도 등장하여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전사의 총(戦士の銃). 일명 코스모드라군(コスモドラグーン).

그밖에 피규어와 기념주화, 캐릭터가 디자인된 지포라이터 등이 전시되어 
만화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다양한 상품으로 재탄생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자원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해볼 수 있었다. 



아래 사진들은 기념품샵에서 만나볼 수 있는 상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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