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모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이기웅이 번역한 일본 추리소설 <요리코를 위해(頼子のために)>를 읽었다.
필명(펜네임) 노리즈키 린타로(法月綸太郎. 1964-) 작가가 창조한
탐정이자 추리소설작가 노리즈키 린타로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소설을 쓴 작가의 이름과 소설 속에 등장하는 탐정의 이름이 같다.
작가의 이름과 소설 속 탐정의 이름이 같은 대표적 작품으로는 엘러리 퀸(Ellery Queen) 시리즈가 유명하다.
프레더릭 다네이(Frederic Dannay. 1905-1982)와 맨프레드 리(Manfred Lee. 1905-1971)
동갑내기 사촌형제가 엘러리 퀸이라는 필명으로 공동작업하여 창조한 탐정이 바로 엘러리 퀸이다.
작가 이름이 탐정 이름처럼 쉽게 기억되라고 필명과 탐정 이름을 일치시켰다고 한다.
엘러리 퀸을 경애하는 노리즈키 린타로 작가는 엘러리 퀸이 그랬듯이 그의 소설 속 탐정과 필명을 통일시켰고
엘러리 퀸과 그의 아버지 리차드 퀸 총경이 등장하는 엘러리 퀸 시리즈의 부자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서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에서도 탐정의 아버지 노리즈키 사다오(法月貞雄)가 경찰 간부로 설정되어 있다.
요리코를 위해는 일본에선 1990년 6월에 단행본이 간행됐고 2017년 12월에 표지를 바꾼 신장판이 출판됐다.
신장판은 구판과 비교하여 글자크기가 커져서 읽기 더 편해졌다고 한다.
내용면에서는 별다른 차이는 없으나 구판에서 임신주기 계산법에 오차가 있었던 것을 신장판에서 바로잡았다고 한다.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목록 (정리된 리스트 출처는 https://nicoichi-read.com/houtukirintaro/)
시리즈의 첫 작품인 <눈 밀실(雪密室)>이 1989년 4월에 발매됐고 요리코를 위해는 시리즈 3번째 작품이다.
최신작은 시리즈 15번째 작품이자 시리즈 30주년 기념작에 해당하는 단편집
<노리즈키 린타로의 소식(法月綸太郎の消息)>이고 일본에서 2019년 9월에 발간됐다.
개인적으로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는 이번에 요리코를 위해를 읽으며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사진은 소설과는 관계 없고
후지TV에서 제작한 멀티엔딩형 유튜브 드라마 <세븐틴 킬러(セブンティーンキラー)>의 한 장면.
420여 페이지 분량의 소설 요리코를 위해는 "1989년 8월 22일 요리코가 죽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앞부분 70여 페이지는 살해된 17세의 여고생 니시무라 요리코(西村頼子)의 아버지인
대학교수 니시무라 유지(西村悠史)가 딸을 죽인 범인을 스스로 조사하여 밝혀내고
범인을 직접 처벌한 후 자살을 시도하기 전까지 열흘 동안 쓴 수기로 구성됐다.
외동딸 요리코가 자정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하던 니시무라는 다음날 아침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따님으로 추정되는 사체가 여학교 인근의 공원 수풀 속에서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부검결과 목이 졸려 살해당했음이 밝혀졌다.
니시무라는 딸의 방을 정리하다가 산부인과 진찰권을 발견하게 되고
그 병원을 찾아가 의사로부터 요리코가 임신 4개월 상태였음을 듣게 된다.
니시무라가 딸의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형사에게 왜 요리코가 임신 중이었던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냐고 따져묻자
형사는 사건과 관련 없는 일 같아서 굳이 알리지 않았다는 궁색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형사의 석연찮은 태도에서 니시무라는 딸이 다니는 여학교에서 경찰에 압력을 가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딸이 다니는 학교의 이사장에게는 국회의원 오빠가 있다.
여학생의 임신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자명한 일일 테니 경찰에 손을 썼을 수도 있다.
니시무라는 딸의 친구들로부터 요리코가 좋아했던 남자선생님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딸을 임신시킨 장본인이 그 선생일 가능성으로까지 의심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요리코로부터 임신 소식을 들은 선생이 제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추악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것 아닐까라고 생각한 니시무라는 선생을 찾아가 추궁한 끝에 자백을 받아낸다.
니시무라는 딸을 죽인 범인을 직접 처단하고 집에 돌아와 수기를 마무리짓고 음독자살을 시도한다.

이 소설은 아버지가 딸의 행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동안 알지 못했던 딸의 모습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실종된 딸을 찾아나선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일본영화 <갈증(渇き。. 2014)>을 생각나게 했다.
영화는 야쿠쇼 코지(役所広司)와 코마츠 나나(小松菜奈)가 주연했고 인간의 광기를 극적으로 표현한 수작이다.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에게 니시무라 유지 사건을 의뢰한 것은 요리코가 다니는 학교의 이사장이었다.
니시무라의 수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학교의 위신이 곤두박질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니
수기가 사실이 아님을 밝혀내어 학교의 명예를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니시무라의 수기에서 의아한 부분이 있음을 느낀 린타로는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하여 수사에 착수한다.
일반적으로 유서 등 죽기 전에 남기는 글은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죽음을 앞두고서 거짓말을 하진 않을 테니 말한 그대로 믿어주자라는 온정주의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안이한 생각이다.
어떤 인간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죽기 전에도 거짓말을 한다.
그렇기에 유서든 비망록이든 죽기 전에 남긴 글이라고 하여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기에 그리 충격적으로 와닿지는 않았다.
오히려 의식을 되찾은 니시무라의 병실에서 린타로가 취한 행동이 보다 충격적이었다.
탐정이 그렇게 행동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린타로의 선택이 보다 인간미 넘치는 솔직한 행동이었고
제목처럼 요리코를 위한 결단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덮으며 비지상파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떠올렸다.
이 소설의 결말부는 파격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다.
부녀 간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부부 간의 이야기로까지 결말부에서 비약적으로 사고의 폭이 확장되는 탓에
이야기가 너무 나간 것 아닌가 하는 과유불급적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비약적 결말이 주는 씁쓸한 뒷맛이 있는 작품이라고는 하나
요리코를 위해는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중 <1의 비극(一の悲劇)>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라고 하니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를 접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꼭 만나봐야 할 작품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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