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메와 만화 바질리스크 코우가 인법첩 2020/01/05 17:35 by 오오카미


연말연시에 애니메이션 <바질리스크 코우가 인법첩(バジリスク 〜甲賀忍法帖〜. 2005)>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이 작품의 원작은 전기(伝奇)소설, 탐정소설, 시대소설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작가
야마다 후타로(山田風太郎. 1922-2001)의 시대소설 <코우가 인법첩(甲賀忍法帖. 1959)>이다.



만화가 세가와 마사키(せがわまさき)는 소설 코우가 인법첩을 바탕으로 하여
2003년에서 2004년에 걸쳐서 바질리스크 코우가 인법첩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 5권 분량의 만화를 연재했고
이 만화를 토대로 하여 2005년에 총 24화 분량의 TV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
또한 원작소설은 오다기리 조와 나카마 유키에(仲間由紀恵. 1979-) 주연의 영화 <SHINOBI. 2005>로 제작되기도 했다.



코우가 인법첩의 시대적 배경은 1615년이다.
1603년에 에도막부를 개창한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1543-1616)는
1605년에 정이대장군직을 아들 토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 1579-1632)에게 물려주고 은거하기는 했으나
오오고쇼(大御所. 은거한 정이대장군)가 된 후에도 여전히 실권을 행사했다.
노년의 이에야스가 안고 있던 고민거리 중 하나는 3대 장군을 누구로 지목하느냐는 것이었다.
히데타다에겐 장남 타케치요(竹千代. 후의 토쿠가와 이에미츠(徳川家光. 1604-1651)와
차남 쿠니치요(国千代. 후의 토쿠가와 타다나가(徳川忠長. 1606-1634)가 있었다.
장남이 권좌를 상속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겠으나
차남 쿠니치요가 장남 타케치요보다 외모나 기량면에서 모두 뛰어났던 데다가
심지어 두 형제의 부모인 히데타다와 고우(江.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お市)의 셋째 딸)조차도
쿠니치요를 편애했기 때문에 장자상속의 원칙에 반하더라도 쿠니치요를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아서
가신들은 타케치요파와 쿠니치요파로 나뉘어져 후계자 다툼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역사적으로는 타케치요의 유모 카스가노 츠보네(春日局. 1579-1643)가 이에야스가 머물고 있던
슨푸(駿府)성을 찾아가서 장남이 장군직을 상속받는 체제가 확립되어야
이후로도 후계자 자리를 놓고서 분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직소했고
이에야스 또한 가문의 영광이 오랫동안 지속되기 위해서는 내분의 여지는 사전에 없애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여
3대 장군직은 장자상속의 원칙대로 맏손자 타케치요가 물려받게 된다.

* 카스가노 츠보네의 원래 이름은 사이토 후쿠(斎藤福)이고 오후쿠(お福 또는 阿福)라고도 불린다.



야마다 후타로는 3대 장군직을 놓고서 막부 내에 분열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초로 하여 작가적 상상력을 더했다.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1600)와 오사카의 겨울 진(大坂冬の陣. 1604), 여름 진(大坂夏の陣. 1605) 등을 통하여
무사 가문들은 이미 많은 피를 흘린 상태였다.
타케치요와 쿠니치요 중 3대 장군을 누구로 삼을 것인가를 놓고서
사무라이들끼리 다시 피를 흘리는 것을 이에야스는 원치 않았다.
이에야스의 고민을 알아챈 측근 난코보 텐카이(南光坊天海)는 닌자(忍者)들을 이용하자고 주군에게 조언했다.

귀족 대우를 받는 사무라이와는 달리 닌자는 천민 취급을 받았다.
둔갑술이나 분신술 등 기상천외한 인술(忍術)을 사용하는 닌자는 적으로 삼으면 상대하기 껄끄러운 존재였고
아군으로 삼았을 때조차도 음습하고 음침한 분위기로 인해서 다가가기 꺼려지는 성가신 존재였다.
이가(伊賀) 지역의 닌자들과 코우가(甲賀) 지역의 닌자들은 예로부터 철천지원수와도 같은 사이라고 하니
두 지역에 각각 후계자를 할당하고 이들 닌자끼리 싸우게 하여
이긴 쪽에 할당됐던 후계자를 차기 장군으로 삼자는 제안이었다.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 이에야스는 슨푸성으로 두 닌자 집단의 대표를 소집했고
두 닌자 집단 간에 싸우지 말라고 강제적으로 맺어놓았던 부전의 조약을 풀어준다.
그리고 이들에게 인별첩(이름을 적는 두루마리)를 건네주고는 대전에 나설 사람의 이름을 열 명씩 적게 한다.
그리고 이가에는 타케치요를, 코우가에는 쿠니치요를 대표하여 싸우라고 명한다.
승자 집단에게는 영원한 번영을 약속했음은 물론이다.



이리하여 코우가 닌자와 이가 닌자의 대표 열 명씩이 목숨을 걸고서 펼치는 싸움이 시작된다.
집단을 대표하는 멤버들끼리 팀대결을 벌이는 이러한 구도가 처음 나타난 것이 소설 코우가 인법첩이라고 한다.
코우가 인법첩은 야마다 후타로의 30여 권이 넘는 인법첩 시리즈 중에서도 첫 번째로 쓰여진 기념비적인 소설인 데다가
팀 배틀 형식의 효시적 작품으로서 이후 일본 만화계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우가 인법첩의 가장 큰 재미는 작품에 등장하는 스무 명의 닌자들의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각 닌자마다 사용하는 독자적인 인술에 세가와 마사키의 필력이 만들어낸 개성 넘치는 외모가 힘을 더한다.



여성 캐릭터들의 수려하면서도 매혹적인 미모가 빛을 발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
개인적으론 오프닝 장면에서 머리카락을 요염한 입술 사이에 머금고 있는 카게로(陽炎)의 컷을 좋아한다.
남심을 유혹하는 여인의 요염한 자태로 보이기도 하지만
코우가의 젊은 두령 코우가 겐노스케(甲賀弦之介)를 사모하고 있으면서도
남자를 해하는 그녀의 인술 때문에 님의 곁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애태워야만 하는 안타까운 여심을 집약적으로 나타낸 컷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이가의 젊은 수령이자 천진무구한 처녀 오보로(朧)를 보필하고 부상을 입은 아군을 돌보는 등
믿음직스러운 누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케기누(朱絹) 또한 매력적이다.
카게로와 아케기누뿐 아니라 등장하는 여섯 명의 여성이 모두 최후의 순간에도
사랑하는 님의 이름을 부르고 님의 얼굴을 떠올리는 순애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또한 낭만적이다.



캐릭터왕국 일본답게 바질리스크 코우가 인법첩과 관련된 제품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일회용 라이터부터 부부 차완(밥공기)에 이르기까지.



코우가 인법첩은 닌자들의 사투를 그리고 있는 액션물이기도 하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들을 애상(哀傷)하는 슬픈 로맨스물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코우가 인법첩 하면 오프닝 주제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애니메이션 타이틀과 같은 <甲賀忍法帖>이 곡명이고 요괴 헤비메탈을 추구하는 온묘자(陰陽座)가 불렀다.
현재는 4인조 밴드인 온묘자는 홍일점이자 여성보컬인 쿠로네코(黒猫)의 음색이 무척 매력 있다.
팀의 리더이자 남성보컬 및 베이시스트인 마타타비(瞬火)와는 부부 사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1999년에 데뷔하여 20년차가 된 밴드이지만 멤버들의 본명 등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부분이 많은 그룹이다.
쿠로네코는 애니메이션 18화에서 시녀(侍女) 역 목소리로 잠깐 출연하기도 했다.



이번에 바질리스크 코우가 인법첩을 다시 시청하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타케치요와 쿠니치요의 후계자 갈등 외에도 원작의 소설가 야마다 후타로에 관해서다.
효고현 야부(養父)군 출생이지만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었고
정학을 세 번이나 당하는 불량청소년 시절을 겪은 탓인지
졸업 후 토쿄에 상경하여 작가로 성공한 뒤에도 좀처럼 고향에 돌아간 적이 없어서
야마다 후타로는 고향을 버린 작가라고 알려져 있기도 했지만
고향의 동창생들이 주축이 되어 2003년에 야마다 후타로 기념관(山田風太郎記念館)을 야부군에 설립했고
작가의 사후에 유가족이 기념관에 친필원고와 창작노트 등 1500점의 유물을 기증했다.
기념관 설립은 작가 생전에 논의가 되었는데 야마다 후타로는 처음에는 거절하는 뜻을 보이기도 했으나
고향에서 자신을 기억하고 기려준다는 점이 싫지는 않았는지 결국에는 관심을 보였고 승낙했다고 한다.

* 야부군을 포함한 4개의 군이 통합되어 2004년에 야부시가 되었다.





야마다 후타로 사후에 발견된 26권의 일기장을 토대로 제작되어
2005년에 방영됐던 <야마다 후타로가 본 일본 - 미공개 일기가 말하는 전후 60년> 다큐멘터리를
2011년 8월에 BS 아카이브스에서 재방송 형태로 방영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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