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출간한 일본소설 <한자와 나오키 3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을 읽었다.
이 책은 2011년에 <변두리 로켓(下町ロケット)>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은행원 출신의 작가 이케이도 준(池井戸潤. 1963-)이 쓴 경제소설이고 이선희 번역가가 번역했다.

제목 한자와 나오키(半沢直樹)는 주인공의 이름이고 그의 직업은 은행원이다.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단행본으로 2004년, 2008년, 2012년, 2014년에 각각 발표되어 현재까지 네 권이 있다.
한자와 나오키 3는 경제전문잡지 <주간 다이아몬드(週刊ダイヤモンド)>에
2010년 8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연재된 작품이고 2012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2013년에 TBS에서 시리즈의 1권과 2권에 해당하는 내용을 드라마화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어 드라마 방영 전에는 7만 5천부의 판매고를 올렸던
3권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ロスジェネの逆襲)은 드라마 방영 후에는 판매부수 100만 부를 돌파하게 된다.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는 1화가 19.4% 시청률로 스타트하여 초반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고
최종화인 10화에서는 42.2%의 시청률을 찍으며 2013년 시청률 1위 드라마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2020년에는 시리즈의 3권과 4권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제작된 속편이 7년 만에 방영될 예정이다.

드라마에서는 사카이 마사토(堺雅人. 1973-)가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를 연기했다.
그는 여배우 칸노 미호(菅野美穂. 1977-)와 2013년에 결혼했고 이들 부부 사이에는 현재 1남 1녀가 있다.

소설 한자와 나오키 3의 키워드는 적대적 M&A라고 할 수 있다.
M&A(Merger&Acquisition)는 기업의 인수와 합병을 의미하는 영단어의 약자이고
인수 또는 합병을 당하는 회사측의 동의 없이 진행되는 M&A를 적대적 M&A라고 부른다.
토쿄중앙은행(東京中央銀行)의 영업제2부 차장이었던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가
이 은행의 자회사인 토쿄센트럴증권(東京セントラル証券)으로 파견됐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기업인 은행보다 자회사인 증권이 규모가 한참 작기 때문에
한자와의 현재 직함이 토쿄센트럴증권 영업기획부 부장이긴 하나 실질적으로는 좌천된 셈이다.
은행에 있다가 증권으로 파견된 사원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은행으로 돌아가려고 갖은 궁리를 하지만
주인공 한자와는 어디에 있든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정의로운 인물이다.
두 개의 IT기업이 등장한다.
50세의 히라야마 카즈마사(平山一正) 사장이 이끄는 하드웨어 종합상사 전뇌잡기집단(電脳雑伎集団)과
30세의 세나 요스케(瀬名洋介) 사장이 이끄는 검색엔진과 소프트웨어 개발사 토쿄스파이럴(東京スパイラル)이다.
토쿄스파이럴을 인수하고 싶으니 M&A 자문사가 되어 달라며 히라야마가 토쿄센트럴증권에게 접촉한다.
그러나 한자와가 부하들에게 지시하여 M&A 전략을 수립하는 도중에 이변이 발생하고 만다.
히라야마가 M&A 자문사를 토쿄센트럴증권에서 모회사인 토쿄중앙은행으로 갈아탄 것이다.
아무리 모회사라고 할지언정 아무런 통보도 없이 자회사의 일감을 가로채다니 너무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토쿄센트럴증권의 사원들 사이에서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한자와는 부하들에게 일임했던 안이함을 반성하는 한편 냉정하게 이번 사태의 추이를 되짚어보고는
전뇌잡기집단과 토쿄중앙은행 간의 거래에서 미심쩍은 요소들을 찾아낸다.

일본의 거품경제(버블)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가 줄리아나 토쿄(ジュリアナ東京)다.
* 줄리아나 토쿄는 일본 기업과 영국 기업이 공동출자한 디스코텍으로 정식명칭은
JULIANA'S TOKYO 영국식 디스코텍 인 시바우라(JULIANA'S TOKYO British discotheque in 芝浦)이고
토쿄 미나토쿠(港区) 시바우라 부둣가에 설치된 디스코텍으로 면적 1200㎡에 최대수용인원 2000명 규모였다.
무대 위에선 몸매를 드러내는 짧은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성들이
주리센(ジュリ扇)이라 불리는 깃털이 달린 부채를 손에 들고서 춤을 추며 일본의 호경기를 자축했다.
줄리아나 토쿄는 거품경제 종반부인 1991년 5월 15일에 오픈했고 거품경제가 붕괴하며 1994년 8월 31일에 폐점했다.
소설 한자와 나오키 3는 대학만 졸업하면 기업에서 서로 모셔갔던
버블 세대(バブル世代)의 후반부인 1992년에 은행에 입사한 한자와 나오키와
수십 군데의 기업에 입사원서를 제출해도 한 건의 연락이라도 있을까 말까 하는
취업 빙하기의 로스 제네(Lost Generation의 약칭. 잃어버린 세대)인
부하직원 모리야마 마사히로(森山雅弘)가 함께 등장하여 세대 간의 이질감을 보여준다.
입사 8년차가 되는 모리야마는 버블 세대를 실력이 없음에도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편하게 입사한 무능력한 꼰대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새로 부임한 한자와 부장과 함께 일하게 되면서 가치관에 변화를 겪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일신의 안전보다 고객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신념을 관철하는
한자와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 그 누구라도 매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하면 되갚아준다. 배로 갚아준다!(やられたらやり返す。倍返しだ!)"
한자와 나오키의 입버릇과도 같은 이 문장은 그의 모토다.
전뇌잡기집단과 토쿄중앙은행 간에 부당한 거래가 있었음을 알아차리게 된
한자와는 이들의 먹잇감이 될 처지에 놓인 기업 토쿄스파이럴의 편에 서서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한편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낸다.
한자와의 복수극은 그의 좌우명처럼 시원하고도 통쾌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05년에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닛폰방송(ニッポン放送) 적대적 M&A 사건>이 떠올랐다.
TV의 예능 프로그램 등에도 자주 출연하여 인지도가 높았던
호리에 타카후미(堀江貴文. 1972-)가 사장으로 있던 벤처기업 라이브도어(livedoor)가
후지TV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목적으로 후지TV의 모회사였던 닛폰방송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인 사건이었다.
닛폰방송은 1954년에 개국한 라디오방송국으로
1967년에 산케이신문(産経新聞)과 후지TV를 산하에 두게 되면서 후지산케이그룹의 모회사가 되었다.

토쿄 오다이바의 랜드마크 후지TV 본사 건물.
TV를 중심으로 하는 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후지TV는 급성장하여 후지산케이그룹을 대표하는 대기업이 된다.
시대의 변화에 의해 자회사 후지TV가 모회사 닛폰방송보다 규모가 훨씬 커졌음에도
모회사가 대주주라는 점 때문에 자회사가 지배를 받게 되는 불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하여
2005년 1월에 후지TV는 닛폰방송의 주식을 공개매수(TOB, Take Over Bid)하겠다고 선언하나 난관에 부닥치고 만다.
라이브도어가 700억 엔을 투입하여 시간외거래로 닛폰방송의 주식 약 30%를 사들이면서 1대 주주로 올라선 것이다.
호리에는 과반수가 넘는 주식을 취득하여 닛폰방송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자회사인 후지TV를 지배할 계략이었으나
규모가 작은 모회사를 사들여서 공룡기업 규모의 자회사를 지배하겠다는 그의 꼼수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고
손정의가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백기사(적대적 M&A를 방어하는 측을 지원하는 기업)로 나서면서
후지TV를 손아귀에 넣겠다는 호리에의 꿈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후 라이브도어의 분식회계가 드러나면서 호리에는 2011년에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으나
현재도 80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유튜버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호리에 타카후미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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