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알폰스 무하전 2019/11/24 16:25 by 오오카미




지난 주말에 알폰스 무하전을 관람하러 마이아트뮤지엄에 다녀왔다.



마이아트뮤지엄은 지난달에 개관한 신생 미술관이고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건너편에 있는 섬유센터빌딩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다.
개관특별전으로 알폰스 무하전을 기획하여 무하의 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마이아트뮤지엄 개관특별전으로 열린 이번 전시회의 출품작들은
체코 출생으로 80년대에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미국 테니스 선수 이반 렌들(Ivan Lendl. 1960-)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반 렌들 무하 컬렉션은 2013년에 체코 프라하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고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뉴욕 등을 거쳐서 한국 서울을 찾아왔다.

개인적으로 무하의 작품들은 2005년에 토쿄도미술관(東京都美術館)의 <뮤샤전(ミュシャ展)>에서 처음 접했고
이후 2017년 1월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알폰스 무하전>에서 오랜만에 만나보았었다.
이 두 전시회도 물론 좋았지만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회가 더 좋은 이유는
전시실 내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무하의 작품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도슨트(전시해설가)의 작품설명은 식견을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마이아트뮤지엄 알폰스 무하전은 정규 도슨트가 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11시, 14시, 16시, 18시에 예정되어 있다.
이날 오후 2시에 도착하여 한 시간 동안 도슨트와 함께 전시실을 돌아보았고
이후 오후 6시 반까지 진지하게 무하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었다.
전시되어 있는 모든 작품의 사진을 찍어오긴 하였으나 현재 진행 중인 전시회이므로
모든 사진을 올리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위주로 일부의 사진을 첨부했다.



이날의 도슨트는 연극배우와 이름이 같은 윤석화 도슨트였는데 재미있게 진행하여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준비해온 관련자료들도 보여주며 전시된 여러 작품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어 공부가 되었다.
무하전을 보러 갈 예정인 관객들에게 도슨트 타임을 맞추어 가서 해설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도슨트 시간이 끝난 후 작품과 관련된 개인적인 질문도 가능하니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알폰스 무하전은 5개의 전시실로 구획되어 있다.
1부는 연극 포스터, 2부는 제품 광고 포스터, 3부는 대중을 위한 인쇄출판물,
4부는 아름다운 여인들, 5부는 조국 체코를 위한 애국심을 주제로 작품들이 구성되었다.



- 1부 -
체코가 낳은 국민화가이자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 무하(Alphonse Maria Mucha. 1860-1939)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여인이 있으니 당시 프랑스의 유명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1844-1923)다.
1894년 크리스마스 연휴에 파리에서 가난한 유학생활을 하던 무하는 그가 일하던 인쇄공장에 남아있었다.
연말이라고 하여 남들처럼 편하게 쉴 수 있는 여유로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었는데
혼자서 공장을 지키고 있던 무하에게 사라가 출연하는 연극의 포스터를 급하게 제작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사라가 거래하고 있던 인쇄소가 연휴로 휴무였기 때문에 무하가 일하는 인쇄소에까지 일이 넘어오게 된 것인데
우연히 찾아온 이 기회가 무하의 운명을 바꾸어놓는 계기가 되고 만 것이다.



사라 베르나르 미국 순회공연 (74.5 x 197.5cm. 1895) /  지스몽다(Gismonda. 68.2 x 210.8cm. 1894)

오른쪽이 사라 베르나르가 주연으로 출연한 연극 <지스몽다>의 역사적인 포스터다.
지스몽다는 아테네를 배경으로 하는 종교극이다.
사라의 당시 나이보다 한참 젊게 그렸기 때문에 포스터를 본 그녀는 회춘하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이 포스터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던 사라는 무하와 6년간 전속계약을 맺게 되고
이후 사라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연극의 포스터는 무하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졌다.
지스몽다 포스터는 당시의 일반적인 포스터보다 길이가 2배 정도 긴 파격이었고
수려한 그림체에 홀린 사람들이 거리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몰래 떼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사라 베르나르의 지스몽다 미국 순회공연 포스터는 당시 1만장 정도가 인쇄되었는데
이 중 2000장 정도는 수집가들에게 판매되었다고 한다.
무하의 포스터는 리토그래프(석판화)로 제작한 작품이라서 같은 그림이 다수 존재하므로
유화 작품에 비해서는 희소성이 떨어지지만
무하가 생전에 작업하여 그의 사인이 들어가 있는 작품들은 비교적 고가에 거래된다.
일본 웹에서 찾아보니 아르누보 시대에 만들어진 <동백꽃 여인> 포스터가
마이니치옥션(毎日オークション)에서 180만엔에 낙찰된 예가 있었다.



동백꽃 여인 미국 순회공연 (112 x 240.5cm. 1906) / 동백꽃 여인(La Dame aux Camelias. 73 x 205.7cm. 1896)

<동백꽃 여인(동백 아가씨. 椿姫)>은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으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Alexandre Dumas père)의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 1824-1895)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이다.
이 소설은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타락한 여인)>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교계에서 명성을 떨친 아름다운 고급 매춘부 마르그리트가
귀족 자제와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의 격차 때문에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사교계의 연장선이었던 공연장에서 마르그리트는 한 달 중
25일은 하얀색 동백꽃을, 나머지 5일은 붉은색 동백꽃을 들고서 객석에 앉았다.
하얀색 동백꽃의 꽃말은 '비밀스러운 사랑'이고 붉은색 동백꽃의 꽃말은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다.
오른쪽 포스터의 동백꽃은 하얀색이고 왼쪽 포스터의 동백꽃은 붉은색이다.
원작의 내용처럼 동백꽃 여인의 대부분의 포스터의 동백꽃은 하얀색이었고 붉은색은 한정판이었다고 한다.



백합의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 La Plume. 49.5 x 68cm. 1896)

1896년 문화예술 전문잡지 <라 플륌(La Plume)>이 사라 베르나르 특집을 다루면서
그녀를 위한 연회와 축하행사를 홍보하기 위해서 무하에게 의뢰한 작품이다.
이 기념포스터 속의 사라는 에드몽 로스탕(Edmond ERostand. 1868-1918)의 연극
<먼 나라의 공주(La Princesse Lointaine)>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무하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 19세기 말에서 1차 세계대전 전까지 프랑스가 번성했던 시대)의
인기 여배우를 화려한 왕관과 순백의 백합꽃으로 숭고하게 장식했다.



메데(Médée. 71.7 x 201.6cm. 1898)

그리스의 유명한 비극 <메데이아(Medea 또는 Medeia)>를 각색한 연극의 포스터다.
메데이아는 아르고 원정대의 이아손에게 반하여 콜키스의 왕인 아버지 아이에테스를 배신하고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손에 넣도록 도왔고 그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으나
이아손이 그녀를 배신하고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딸 글라우케와 결혼하려 하자
메데이아는 크레온과 글라우케를 독살하고 자신의 두 아들까지 죽여서 이아손에게 복수한다.
사라 베르나르는 포스터 속 메데이아가 왼쪽 팔목에 차고 있는 뱀 모양의 팔찌가 마음에 들어서
같은 모양의 팔찌를 주문제작하여 공연 중에 무대의상의 일부로서 착용했다고 한다.



토스카(La Tosca. 32 x 99.4cm. 1898)

무하는 사라와의 계약기간 동안 그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곱 작품의 포스터를 제작했다.
제작순으로 나열하면 <지스몽다>, <동백꽃 여인>, <로렌자치오(Lorenzaccio. 1897)>,
<사마리아 여인(La Samaritaine. 1897)>, <메데>, <토스카>, <햄릿(Hamlet. 1899)>이다.
1부 전시실에서 이들 작품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토스카 사라 베르나르 마지막 미국 방문(Sarah Bernhardt The Last Visit to America. 99.7 x 228cm. 1910)

사라 베르나르가 1887년에 처음 연기한 <토스카>는
극작가 빅토리앙 사르두(Victorien Sardou. 1831-1908)가 그녀를 위해 특별히 쓴 희곡이다.
후에 푸치니의 오페라로 만들어져서 더욱 유명해졌지만.
베르나르는 1895년의 미국 방문 이후 미국 순회공연 때마다 무하가 만든 포스터를 공연 홍보에 적극 활용했다.



연인들(Amants. 131.4 x 100.4cm. 1895)

1873년에 건립된 파리의 르네상스 극장(Théâtre de la Renaissance)은
현재도 650석의 좌석을 보유한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라 베르나르는 1893년에 이 극장을 인수하여 1899년까지 소유했다.
코미디 연극 <연인들>은 사라가 극장 소유주일 때 상연됐던 작품이다. 
그녀가 주연으로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극장에서 올린 작품이기에 무하가 포스터를 제작했다.



사라 베르나르의 동성 애인으로 알려진 프랑스 여성화가 루이즈 아베마(Louise Abbéma. 1853-1927)의 작품
<일본정원 속의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in a Japanese Garden. 1884)>

무하전을 관람하며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에 관해서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천생 배우에 여장부였던 것 같다.
무하와 알게 된 것이 1894년이니 그녀의 나이 50세 때였는데 그때에도 주연배우로 무대에 섰을 뿐 아니라
1910년에 미국 순회공연을 한 포스터도 있으니 오늘날의 원로배우처럼 백발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한 듯하다.
1915년에 깁스를 했던 무릎에 괴사가 일어나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서도 의족 착용을 거부한 채
전쟁터에 나가 있는 군인들의 위문공연을 다녔고 의자에 앉은 채로 연기를 했다고 하니 배우의 투혼이 느껴졌다.
1923년에 사라가 죽자 프랑스 정부는 국장으로 장례식을 행했고 그녀의 시신은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다.



"무대의 막이 오르면 그것은 오르기 시작하는 내 인생의 막이었다"라는
사라 베르나르의 말에서 평생을 배우로 살았던 그녀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리기아(Lygie. 59.5 x 175.5cm. 1901)

리기아 또는 리지아(영어로도 Lygia 또는 Lygie)는 1951년에 제작된 영화로 잘 알려진
<쿼 바디스(Quo Vadis)>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리기아는 이민족의 공주로서 로마제국에 노예로 잡혀오나 젊은 장군 마르쿠스에게 사랑에 빠진다.
원작소설은 폴란드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츠(Henryk Sienkiewicz. 1846-1916)가
1896년에 출간한 동명의 역사소설이고 쿼 바디스(쿠오 바디스)는 라틴어로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뜻이다.
소설은 당대에 큰 인기를 얻었고 그래서 연극으로도 제작된 것 같다.
일찍부터 무하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일본에서는 무하전이 수많이 개최되었으나
리기아가 일본에서 공개된 것은 2018년에 열렸던 전시회가 처음이었다고 하니 희소성이 있는 작품인 듯하다.











알폰스 무하 연보.



- 2부 -
연극 포스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무하에게
다양한 기업에서 제품 홍보를 위한 포스터나 제품 패키지를 제작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대중의 감각을 자극하고 그들의 욕구를 깨우기 위해서 예술가는 유혹하는 법을 알야야 한다"고
말한 무하는 그의 그림으로 자신의 이론을 증명해보였다.



쇼콜라 이데알(Chocolat Idéal. 55.8 x 84.3cm. 1897)

모락모락 김이 나는 쇼콜라가 들어있는 세 잔의 컵을 들고 있는 여인에게
두 아이가 달라붙어서 빨리 마시고 싶다며 조르고 있는 모습이 식욕을 자극한다.
가용성 분말(Poudre Soluble)이라는 문구에서 물에 녹는 가루 제품임을 알 수 있다.



블뢰즈 아당쿠르 향수(Bleuze-Hadancourt Parfumeur. 25 x 60cm. 1899)

무하의 대부분의 작품에는 그의 이름인 Mucha가 사인으로 들어가 있으나
무하의 이름이 서명되어 있지 않은 작품도 일부 존재한다. 이 작품 또한 그 중 하나다.
무하의 사인이 없음에도 그림체와 배경의 장식 등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작품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뿌리는 향수 로도 (Lance Parfum Rodo. 31.2 x 43.8cm. 1896) / 뿌리는 향수 로도 (Lance Parfum Rodo. 145 x 95.8cm. 1896)

무하의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 그림은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아서
여성을 주고객으로 하는 화장품이나 향수 회사로부터의 주문이 쇄도했다.
전시된 두 그림은 크기와 색상뿐만 아니라
여인의 시선 방향, 외곽의 꽃장식 무늬, 케이스 내부 용기의 수 등에 차이가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이처럼 비슷하지만 다른 그림이 나란히 전시되어 차이점을 찾아보며 관람하는 재미도 있다.



모엣 샹동 화이트 스타(Moët & Chandon: White Star. 21.5 x 59.65cm. 1899) /
모엣 샹동 그랑 크레망 임페리얼(Moët & Chandon: Grand Crémant Imperial. 21.5 x 59.65cm. 1899)

모엣&샹동은 1743년에 클로드 모엣(Claude Moët. 1683-1760)이 설립한 프랑스의 유명한 샴페인 브랜드다.
초창기 이름은 매종 모엣(Maison Moët)이었으나
1816년에 모엣 가문과 샹동 가문이 혼인으로 맺어지면서 모엣&샹동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플러트(Flirt. 28 x 61.3cm. 1900)

플러트는 프랑스의 제과회사 르페브르 위틸(Lefèvre-Utile)의 비스킷 제품명이다.
르페브르 위틸은 이니셜이자 로고인 LU(뤼)로도 잘 알려져 있고 제품 홍보 포스터에는 이 로고를 삽입했다.
아래의 사라 베르나르를 모델로 한 그림과 달리 이 그림에서는 로고 LU가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잘 찾아보면 여인이 입고 있는 드레스의 허리춤에 로고가 문양처럼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하단의 노란색 포물선 무늬는 비스킷의 1/4 조각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알고 나니 무하의 센스가 느껴진다.



르페브르 위틸 / 사라 베르나르(Lefèvre-Utile / Sarah Bernhardt. 50.5 x 69.5cm. 1903)

르페브르 위틸은 유명인을 광고모델로 기용하여 브랜드를 홍보하기도 했다.
사라 베르나르가 연극 먼 나라의 공주의 주인공 복장을 하고서 사랑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하단에 적혀 있는 Le Petit Beurre LU(LU에서 만든 푸치 버터란 이름의 비스킷) 광고 카피에서 위트가 느껴진다.
"푸치 버터 비스킷 한 개보다 더 좋은 건 비스킷 두 개예요,"



모나코 몬테-카를로(Monace Monte-Carlo. 73.3 x 107.3cm. 1897)

모나코에서 몬테카를로까지 철도가 개통된 것을 홍보하는 포스터다.
식물의 줄기가 철로를, 둥근 꽃잎이 열차바퀴를 상징한다.



르페브르 위틸 비스킷(Biscuits Lefèvre-Utile. 43.5 x 62cm. 1896)

여인이 손에 들고 있는 접시에는 먹음직스러운 웨하스 모양의 비스킷이 담겨 있고
하단의 부채살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문양에서는 웨하스 모양의 공간을 달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LU 로고는 여인의 다리를 감싸고 도는 부드러운 곡선의 테두리 끝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섯 개의 그림이 함께 걸려 있는 공간의 그림인데 우측에 붙어 있는 설명 태그에서
4번 그림인 르페브르 위틸 비스킷과 5번 그림인 르페브르 위틸 샴페인 비스킷의 그림 위치가 반대로 표기되어 있다.



카산 필(Cassan Fils. 64.2 x 169.3cm. 1896)

2부 전시실에서는 그림이 어떤 제품을 홍보하는지 알아맞히는 것도 감상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카산 필은 인쇄소를 홍보하는 포스터다.
모델인 여인을 인쇄한 종이들이 흩날리고 있고 독자들의 눈을 배경 문양으로 집어넣었다.



트라피스텐(La Trappistine. 75.3 x 206.5cm. 1897)

여인의 머리카락이 무하의 다른 작품들처럼 물결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이트로 곧게 뻗어서 시선을 잡아끈다.
머리카락을 따라서 내려오다 보면 머리카락의 끝부분에서 여인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홍보 목적물을 발견할 수 있다.
수도사들이 만든 수도원 맥주로 유명한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레시피를 토대로 만든 리큐르 트라피스텐이다.



네슬레의 존경스러운 경의(Hommage Respectueux de Nestlé. 300 x 200cm. 1897)

스위스 기업 네슬레사가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리기 위해서 무하에게 주문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1837년에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서 1901년에 서거할 때까지 64년간 통치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기간 64년은 영국 역사상 두 번째 기록이다.
현재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는 올해로 67년째 왕위에 있어서 매년 재위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오른쪽은 18세 경, 왼쪽은 30대, 중앙은 재위 60주년을 맞은 78세의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다.
왕관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있는 여인은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의미하는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의 의인화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팍스 브리태니카를 맞이한 영국은 전세계에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려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웨이벌리 자전거(Waverley Cycles. 105.5cm x 82.5cm. 1897)

자전거 애호가의 한사람으로서 자전거 광고 포스터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웨이벌리 자전거는 미국 브랜드이고 여인이 팔꿈치를 올려놓은 모루와 망치는 기술력과 장인정신을 의미한다.



페르펙타 자전거(Cycles Perfecta. 102.2 x 152.6cm. 1902)

페르펙타 자전거는 영국 브랜드다.
여인의 포즈로 보아 자전거는 정차 상태인데도 여인의 머리카락은 바람에 물결치듯 나부끼고 있어서
자전거와 함께라면 언제든지 자연의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상쾌함을 표현하고 있다.
웨이블리 자전거와 페르펙타 자전거 포스터 모두 정작 홍보대상이 되어야 할 자전거가 아니라
자전거를 탄 여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자전거는 차체 전체가 아니라 핸들의 일부 정도가 표시되어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여인을 통하여 라이딩의 상쾌한 즐거움까지 전해져오니
무하 작품의 매력과 홍보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라고 하겠다.



욥(Job. 41.5cm x 54.2cm. 1896)

JOB은 담배종이를 만든 회사다.
원래는 창업자인 장 바르도(Jean Bardou. 1799-1852)의 이니셜을 딴 J와 B 사이에 ◇를 넣어서
J◇B으로 표기하였으나 사람들이 JOB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서 JOB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따라서 욥이 아니라 좁이라고 읽는 것이 맞을 것 같으나 한국에서는 욥으로 표기하고 있다.
당시에는 파이프 담배의 수요가 더 많았던 시대라서 종이로 말아서 피우는 담배의 수요는 적었으나
종이담배 흡연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담배종이의 수요도 늘어났다.
흡연자가 일일이 종이를 자르는 수고를 덜 수 있도록
장 바르도는 질이 좋은 종이를 재단하여 휴대하기 좋도록 작은 상자에 담아서 팔았다.
경영권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은 여성 흡연자를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서 여인을 모델로 하는 광고를 기획했다.
유유히 피어오르는 담배연기와 황금색 머리카락을 출렁이는 여인의 황홀한 표정이 흡연 욕구를 자극한다.



- 3부 -
무하는 예술이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어느 곳에서나 감상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중을 위한 인쇄 출판물 작업을 하여 달력과 장식패널 등
일상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힌 것도 무하의 업적이라고 할 것이다.



파리 만국박람회 오스트리아관 포스터(Poster for the Austrian Pavilion at the Paris Exhibition 1900. 63.5 x 97.5cm. 1899)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서 무하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박람회 포스터와 만찬회장의 메뉴판 디자인을 의뢰받았고
당시 체코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는 영토 내의 문화를 소개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시관의 내부장식과 오스트리아 가이드북의 디자인을 의뢰받았다.
박람회가 성황리에 종료된 후 무하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박람회에 공헌한 보상으로 훈장을 수여받았고
무하의 장식예술가로서의 명성은 미국에까지 전해져서 1904년에는 초청을 받아 첫 미국 방문을 하게 된다.



지나가는 바람은 젊음을 가져간다(The Passing Wind Takes Youth Away. 39.6 x 58.4cm. 1899)



무하의 강의(Cours Mucha. 31.5 x 67.6cm. 1900)

무하는 1892년부터 그의 작업실에서 드로잉 레슨을 하기도 했었다.
무하의 강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들 수업은 평판이 좋아서
파리의 사립미술학교 아카데믹 콜라로시(Académie Colarossi) 등에서 무하에게 강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제20회 살롱 데 상 전시회 포스터(Salon des Cent 20th Exhibition. 42 x 62.2cm. 1896)

1889년에 창간한 문화예술 전문잡지 라 플륌이 후원한 살롱 데 상 전시회의 포스터를 작업 중인
무하의 아틀리에에 이 잡지의 발행자 레옹 데샹(Léon Deschamps. 1864-1899)이 찾아왔다.
포스터는 아직 미완성 상태였으나 레옹은 지금 이대로가 마음에 든다며 그대로 포스터로 사용했다.

 

웨스트 엔드 리뷰(West End Review. 218.4 x 307.3cm. 1897)

영국의 문학잡지 웨스트 엔드 리뷰의 표지용으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잡지 사이즈의 작은 그림뿐만 아니라 길이가 3미터가 넘는 대형 포스터도 전시되었다.
이번 전시회의 출품작 중 가장 큰 작품이기 때문에 포토존으로 삼기에도 좋다.



4부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영상자료에는 이반 렌들의 저택에 걸려 있던 무하의 작품들을
전시회를 위하여 떼어내어 집 밖으로 옮기는 작업과정도 볼 수가 있는데
웨스트 엔드 리뷰 대형 포스터는 네 명이 함께 작업해야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파리스의 심판(The Judgement Of Paris. 50.9 x 68cm. 1895)

영구달력용으로 제작되었고 무하의 상업작품 중 전통 회화 방식에 가까운 작품이고
무하의 화풍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중앙의 인물들에게선 책 삽화가였던 무하가 느껴지고
테두리의 문양에서는 시각예술가로서의 무하를 느낄 수 있다.
하단의 세 가면의 입에 숫자가 인쇄된 띠를 달아서 원하는 날짜를 표시할 수 있다고 한다.



황도 12궁(Zodiac. 48.5 x 65cm. 1896)



북동 보헤미아의 상공예술 박람회(Northeast Bohemia Fair. 56 x 149cm. 1903)



비스코프 상공업 민속박람회(Fair in Vyškov. 50 x 115cm. 1902)

무하는 1910년에 파리를 떠나서 고국 체코로 돌아가지만 파리에 있던 중에도 체코에서 의뢰한 포스터를 제작했다.
체코에서 열린 박람회 포스터들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이 관객을 맞이한다.  



문학과 그림의 달 표지를 위한 12개의 그림(The Months. 42 x 67.5cm. 1899) 



백일몽(F. Champenois. 51 x 66.3cm. 1897)

포스터 수집가 잭 레너트(Jack Rennert)는 무하의 성공에 영향을 준 세 명의 인물로
배우 사라 베르나르, 잡지발행인 레옹 데샹,
그리고 20대의 인쇄기와 3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인쇄업자 F. 샹프누아(F. Champenois)를 들고 있다.
지스몽다 이후 사라 베르나르는 새로운 인쇄업자와 계약을 맺게 되는데 그가 바로 샹프누아였다.
샹프누아는 무하의 모든 작품을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대신 그에게 막대한 월급을 지급했다.
덕분에 무하는 침실이 3개 있고 커다란 작업실이 있는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
이 그림의 원제는 백일몽이 아니라 인쇄업자의 이름인 F. 샹프누아다.
상단의 이름에서 샹프누아 본인이 의뢰한 작품임을 알 수 있고
이름 아래로는 인쇄업자(Imprimeur), 편집자(Éditeur)라는 직함과 인쇄공장의 주소가 적혀 있다.
이 작품은 무하의 석판화 작품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것으로 손꼽히는데
월급을 주는 고용주가 개인적으로 의뢰한 작품이었으므로 더욱 심혈을 기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인의 무릎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은 샹프누아 인쇄소의 샘플 책자다.
인쇄소를 홍보하는 달력으로 사용할 목적이었으나 그림의 인기가 많아서 글자를 뺀 특별판으로도 제작되었다.







인생의 단계(The Ages of Man. 네 장의 그림 각 21.2 x 29cm. 1897)



아르누보(Art Nouveau)는 새로운 예술이란 의미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유럽에서 개화한 미술 사조로서
꽃과 식물 등 자연을 모티프로 삼아 자유로운 곡선을 활용하여 장식성을 강조하였고 화려하고 우아한 것이 특징이다.
아르누보의 예술가로는 그래픽아트 부문에서는 알폰스 무하, 건축 부문에서는 안토니오 가우디가 유명하다.



- 4부 -
무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리따운 여인들을 홍보문구를 절제하고
오로지 그림만으로 만나볼 수 있는 전시실이다.
일출과 일몰,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2개나 4개 세트로 구성된 작품이 많았다.



정규 도슨트 외에도 꼬꼬마 어린이들을 위한 도슨트가 운영되고 있어서 귀여웠다.
소수로 운영되는 듯하여 다른 관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꼬마 관객들은 전용 헤드폰을 끼고서 도슨트가 헤드폰과 연결된 마이크에 속삭이는 해설을 들었다.



사계(The Seasons. 각 30 x 70.2cm. 1899)



꽃과 여인(Woman with Flowers. 74.5 x 56.2cm. 1900)

직물로 제작하여 벽에 거는 태피스트리 작품이지만
실제 태피스트리와는 달리 인쇄기술로 대량생산했다. 



사계 봄 여름 가을 겨울(The Seasons: Spring, Summer, Autumn, Winter. 각 52.5 x 101.6cm. 1896)



개인적으론 쾌청한 하늘 아래에서 붉은 꽃을 머리에 꽂고서 촉촉한 눈빛으로 관객을 내려다보는 여름을 좋아한다.



겨울(Winter. 115.8 x 189.5cm. 1901)

그러나 사계 중 가장 인기가 있는 작품은 겨울인 듯하다.
약 2미터 크기의 유화로 따로 제작될 정도였으니까.
겨울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나뭇가지 위에 수북이 쌓인 눈을 표현한 기법에서
일본 에도시대의 전통회화인 우키요에(浮世絵)의 기법이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네 개의 꽃 장미, 아이리스, 카네이션, 백합(The Flowers: Rose, Iris, Carnation, Lily. 각 43.2 x 103.2cm. 1898)

 

새벽과 황혼(Dawn and Dusk. 각 87.6 x 45cm. 1899)



네 개의 보석 루비, 에메랄드, 자수정, 토파즈
(Precious Stones: Ruby, Emerald, Amethyst, Topaz. 각 43.7 x 102cm. 1900)

취미로 장신구를 디자인하기도 했던 무하는 보석을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장식패널로 표현하기도 했다.
초반에 보였던 화려하고 풍부한 곡선의 아르누보 감성이 절제되고
과하게 찰랑거리던 머릿결도 점잖아진 것은 그의 화풍이 그만큼 성숙해진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앵초와 깃털(The Primrose and the Quill. 각 29.2 x 74cm. 1899) 





토파즈(La Topaze. 58.5 x 114.5cm. 1900)

네 개의 보석 중 토파즈를 보석과 진주를 활용하여 어레인지한 조각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비잔틴 양식의 두상 갈색머리, 금발머리(Byzantine Heads: Brunette, Blonde. 지름 42cm. 1897)
 


네 개의 예술 시 음악 춤 회화(The Arts: Poetry, Music, Dance, Painting. 각 36.5 x 57.2cm. 1898)





무하는 1904년에 초청을 받아서 미국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장식예술가라는 호평과 함께
프랑스와 미국의 우호적 관계를 기념한 그의 장식패널 <우정>이 신문 1면에 보도될 정도로 환대를 받았다.
무하는 그가 염원했던 대형 프로젝트 <슬라브 서사시>를 후원해줄 사업가를 미국에서 만나게 된다.



우정(Friendship. 30.7 x 46.3cm. 1904)





사봉 무하(Savon Mucha. 각 17.2 x 29.8cm. 1907) 비누 패키지.



장식자료집 포스터(Documents Décoratifs. 45 x 75cm. 1901)

무하에게 디자인을 요청하는 주문이 쇄도하여 주문을 모두 수용하는 게 어렵게 되자
무하는 그가 터득한 디자인의 노하우를 집약하여 72페이지 분량의 장식자료집을 발매한다.
이 책을 참조하여 직접 디자인해보라는 의미로 발간한 책일 테니 많은 디자이너에게 좋은 공부가 되었을 것이다.



4부 전시실의 후반부에는 장식자료집 72페이지가 양쪽 벽에 나뉘어져 전시되었다.
그림을 설명하는 글은 없고 그림과 장식만 그려져 있을 뿐이지만
미술을 전공한 전문가들에게는 디자인의 요령이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장식자료집의 일부 페이지들.



4부 전시실에는 이반 렌들을 비롯하여 전시회 관계자들의 인터뷰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시청각 공간도 있다.



26분여 길이의 영상인데 한글자막이 제공되니 이반 렌들 컬렉션 무하전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글자막은 제공되지 않지만 유튜브에도 같은 영상이 올라와 있어서 첨부해본다.





이반 렌들 컬렉션 알폰스 무하전 소개 인터뷰 영상.







슬라비아(Slavia. 36 x 55cm. 1907)

슬라비아는 미합중국을 의인화한 엉클 샘(Uncle Sam)처럼 하나로 뭉친 슬라브족의 소망을 표현한 가상인물이다.
보험회사가 애국심을 자극하는 삽화로 사용하려고 주문한 작품인데
슬라비아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화합의 상징인 범슬라브주의이고
왕좌의 등받이에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두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슬라비아의 무릎 위에 올려져 있는 검은 평화를 위협하면 싸우겠다는 의지를 표현한다.
이 그림은 1920년에 체코의 100코루나 지폐에 사용되었고
1931년에는 슬라비아 은행의 요청으로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글라스로도 제작되었다.



- 5부 -
무하는 파리와 미국에서의 성공을 뒤로하고 1910년에 조국 체코로 돌아갔다.
그는 조국을 위해서 그의 재능을 헌신적으로 기증했다.
그리고 20여년에 걸쳐서 슬라브족의 전설과 역사를 담은 20개의 연작 슬라브서사시를 완성한다.







히아신스 공주(Princezna Hyacinta. 83.2 x 122.2cm. 1911)

<히아신스 공주>는 1911년에 체코 프라하 국민극장에서 초연한 연극이다.
대장장이가 꾼 꿈 속에서 그의 딸이 히아신스 공주가 되어 세 명의 구혼자와 함께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다.
포스터의 모델은 연극에서 주연을 맡은 여배우 안두라 세드라치코바(Andula Sedláčková. 1887-1967)다.
파란 눈동자로 정면을 빤히 응시하는 소녀의 표정에서 굴하지 않는 기개가 느껴진다.





모바리아 교사 합창단(Moravian Teachers' Choir. 77 x 105.4cm. 1911)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전통의상을 입은 소녀가 새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모라비아 교사 합창단(The Choral Society of Moravian Teachers)은
1903년에 설립되어 현존하는 유서 깊은 합창단이다.
무하는 슬라브 민족의 전통의상을 수집했는데
애국심이 강했던 그에게 있어서 전통의상이란 민족성이 반영된 역사의 산물이자 지켜가야 할 보물이었다.



슬라브 서사시 전시회 포스터(The Slav Epic. 82.5 x 187cm. 1928)

체코를 비롯한 동유럽국가의 기원이 되는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그린
20편의 연작 템페라화가 알폰스 무하의 역작 슬라브 서사시다. 
20년에 걸친 대공정이었는데 한 편의 한 변 길이가 작게는 4미터 크게는 8미터에 이를 정도로
엄청한 크기라서 보존과 운반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해외에서 슬라브 서사시가 전시된 것은 연작이 완성되기 전인
1921년에 뉴욕과 시카고에서 다섯 점이 전시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의 세월이 흐른 2017년에 일본 토쿄 롯폰기의 신국립미술관(国立新美術館)에서
체코 프라하 이외의 장소에서 슬라브 서사시 20편이 모두 공개되는 세계 최초의 전시회가 열렸다.
웹에서 찾아보니 한국에서도 슬라브 서사시를 보려고 일본까지 다녀온 네티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전통의상을 입고 과일과 장미 그릇을 든 소녀(Dívka v kroji s mísou ovoce a růžemi. 34.4 x 35.1cm. 1934)



체코 음악의 판테온(Pantheon české hudby. 97.5  x 123.2cm. 1929)

이 작품은 어떤 의미에선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반 렌들이 뉴욕경매장에서 구입한 최초의 무하 작품이었고 이후 그의 무하 컬렉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판테온은 여러 신들을 모신 신전을 의미하는 단어이니 위대한 체코 작곡가들을 추모하는 그림인 셈이다.
중앙에 앉은 남성이 오페라 <팔려간 신부>와 교향시 <블타바>를 쓴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이고
그의 왼쪽에 종이와 연필을 들고 앉은 이가 <신세계 교향곡>을 작곡한 안토닌 드보르자크이고
드보르자크의 반대편에는 교회음악을 작곡했고 무하의 멘토 중 한 명인 파벨 크리즈코브스키가 앉아있다.
드보르자크의 왼쪽에는 모라비아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고트프리드 리거,
맨 왼쪽에는 체코의 국가를 작곡한 프란티셰크 슈크로우프,
맨 오른쪽에는 멜로드라마 형식 음악의 창시자 즈데네크 피비히가 위치한다.



북 보헤미아 국가연합 복권(Lottery for the National Union of North Bohemia)

무하의 그림은 지폐와 복권 등 공익적인 목적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제6회 소콜 축제 포스터(6th Sokol Festival. 82 x 166cm. 1912)

소콜은 체코어로 매(falcon)를 의미하는데 체코의 체육협회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862년부터 프라하에서 시작된 소콜 운동은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이념으로
표면적으로는 전연령이 참여하는 문화체육운동을 내세웠으나
내면적으로는 민족애와 애국심을 고양하는 운동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에게 300년 이상을 지배당한 체코는 늘 독립을 염원했고
1차 대전이 종결된 1918년에 비로소 체코슬로바키아로서 독립을 쟁취했지만
2차 대전 중에 독일군에게 다시 엉토를 점령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전후에는 공산화되고 말았다.
스콜의 컬러인 붉은색 망토를 걸친 소녀는 프라하의 의인화이고 소녀가 쓴 왕관은 프라하의 성벽을 상징한다.



브루클린 미술관 무하 전시회 포스터(Mucha Exhibition / Brooklyn Museum . 31 x 47cm. 1920)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렸던 무하의 회고전 포스터다.
당시엔 슬라브 서사시 중 5개 작품이 함께 전시되었다.
소녀가 손에 든 가시관은 수 세기 동안 타국의 지배를 받은 슬라브 민족의 고통을 상징한다.
이 전시회는 뉴욕에서만 60만 명이 관람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마이아트뮤지엄 알폰스 무하전의 가장 큰 장점은 무하의 작품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알폰스 무하전은 무하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즐거운 전시회다.
후기를 작성하느라 주말을 소진하여 기진맥진하긴 하지만
장문의 후기를 쓰고 싶은 열의가 생기게 만들 만큼 아름답고 매혹적인 작품들이 가득한 멋진 전시회다.



이하는 기념품샵에서 판매 중인 다양한 상품들이다.

















고급스럽고 두꺼운 45000원짜리 도록은 재고가 없어서 예약주문을 받고 있을 정도여서
많은 관람객으로 붐비는 전시실뿐만 아니라 기념품샵에서도 무하의 인기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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