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전 첫사랑을 만나러 홋카이도로 떠나는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윤희에게>가 어제 개봉했다.
개봉에 앞서서 지난주에 열렸던 최초 시사회와 이번주 초에 있었던 시사회에 다녀왔다.
최초 시사회에서는 영화 상영 전에 임대형 감독과 김희애, 김소혜, 성유빈 배우가 참석한 무대인사가 행해졌다.

김희애가 연기하는 윤희는 경찰관 남편과 이혼한 후 혼자서 고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다.
고졸 학력에 변변한 경력도 없는지라
그녀가 살고 있는 예산군 인근의 공장 구내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늘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을 살던 그녀는 어느 날 뜻밖의 편지를 한 통 받게 된다.
서신의 발신자는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小樽)시에 살고 있는 옛 친구였다.

새봄은 윤희의 외동딸이고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고교생이다.
윤희가 젊은 시절에 썼던 필름카메라를 물려받아서 늘 갖고 다니며 애용하고 있다.
새봄은 아직 철부지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어른스러운 면이 있는 아이다.
부모가 이혼했을 때 엄마와 살겠다고 한 이유도 엄마가 더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온 일본발 국제편지를 본 새봄은 엄마와 함께 홋카이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조른다.

영화 윤희에게는 20년 전 첫사랑과 재회하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엄마와 딸의 끈끈한 가족애를 그린 훈훈하고 따뜻한 가족영화이기도 하다.
동성애를 다룬 퀴어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성 간의 직접적인 애정신이 전무해서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김희애 배우는 소년 시절부터 좋아했던 여배우다.
그녀가 주연했던 드라마 <여심(1986)>, <아들과 딸(1992)>, <폭풍의 계절(1993)>, <사랑과 결혼(1995)> 등을
시청했던 기억이 있고 그녀가 DJ를 맡았던 <김희애의 인기가요>는 학창시절 애청했던 라디오 방송이기도 했다.
그녀가 부른 연가 <나를 잊지 말아요(1987)>는 지금 들어도 여전히 매력적인 목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최근에는 여배우들의 크로아티아 여행기를 다룬 <꽃보다 누나(2013)>, 드라마 <미세스 캅(2015)>,
그리고 이번 시사회에서 드디어 그녀의 실물을 영접할 수 있었으니 기쁘기 한량없었다.

김희애 배우의 무르익은 연기도 좋았지만
걸그룹 아이오아이(I.O.I) 출신 김소혜 배우의 연기도 풋풋하고 좋았다.
이 영화가 그녀의 영화 데뷔작인데 대선배와 모녀로 출연하게 되어 많은 연기공부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배우들뿐만 아니라 일본배우들의 연기도 빛을 발했다.
나카무라 유코(中村優子. 1975-)가 연기하는 카타세 준과
키노 하나(木野花. 1948-)가 연기하는 카타세 마사코는
조카와 고모 사이로 출연하여 모녀 만큼이나 끈끈한 가족애와
독신여성끼리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녀들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쿠지라 또한 귀여웠는데
고래라는 뜻의 일본어 이름답게 덩치가 있어서 스크린을 수놓는 귀여움의 비중도 컸다.

영화 윤희에게의 원래 제목은 보름달을 의미하는 <만월(満月)>이었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는 명확한 보름달이 등장하지 않는다.
호타루의 밤 골목을 걷는 윤희 모녀가 술집에서 나온 취객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만월인가" 하고 내뱉는 소리에 모녀도 하늘을 올려다보았으나 구름에 가려서 달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인간의 기억이란
사람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인간의 기억이란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흐릿해지고 때로는 왜곡되기도 한다.
그러면 감정의 경우는 어떨까. 감정 역시 기억과 연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퇴색되는 정도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감정 중에서도 최고의 감정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의 경우는 어떨까.
뮤지컬 <드라큘라>처럼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랑이란 최고의 감정도 식거나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다.
온 세상을 밝게 비추는 만월 같은 사랑일지라도 망각의 강을 흐르며 흐릿해지기도 하고
사랑을 방해하는 여러 상황에 부닥치면서 그 빛을 잃어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난 사랑이 만월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윤희에게는 오타루에 조용히 내리며 소복이 쌓이는 하얀 눈처럼 잔잔한 영화였다.

영화는 윤희의 20년 전을 구체적으로 회상하지 않는다.
당시 고교생이었던 윤희와 같은 또래가 된 그녀의 딸과 딸의 남자친구를 통하여
윤희의 옛사랑도 저렇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다.
윤희의 딸을 통하여 윤희의 과거를 추정해볼 수 있는 반면에
준의 경우는 그녀의 고모 마사코를 통하여 그녀의 미래를 예상해볼 수 있다.


설국을 배경으로 담담하게 그려지는 옛사랑과의 재회 그리고 모녀 간의 정을 그린 영화이고
눈 내리는 겨울풍경을 그린 예쁜 수채화 같은 영화 윤희에게의 개인적 평점은
★★★★★★★★★☆
영화 윤희에게 무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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