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알폰스 무하전 2019/11/04 12:14 by 오오카미




좋아하는 아티스트 알폰스 무하의 전시회가 개최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회에 다녀오기 전에 2017년 1월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무하전을 회상해본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2016년 12월 3일부터 2017년 3월 5일까지 진행되는 알폰스 무하전을 관람했다.
한국에서 알폰스 무하 단독 전시회가 처음으로 진행된 것은 2013년이었고 이번 전시가 두 번째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 무하전과
아르데코의 여왕 타마라 렘피카전이 함께 진행되고 있어서 주목을 끌었다.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모두 프랑스어인데
아르누보(Art Nouveau)는 새로운 예술이란 의미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유럽에서 개화한 미술 사조로서
꽃과 식물 등 자연을 모티프로 삼아 자유로운 곡선을 활용하여 장식성을 강조하였고 화려하고 우아한 것이 특징이다.
아르누보의 예술가로는 그래픽아트 부문에서는 알폰스 무하, 건축 부문에서는 안토니오 가우디가 유명하다.
이에 반해 장식미술이란 의미의 아르데코(Art Déco)는 1925년 전후로 유럽과 미국 등에서 유행했던 미술 사조다.
아르누보의 특징이 물 흐르는 듯 바람에 나부끼는 듯한 자유로운 곡선인 것에 반하여
아르데코는 공업이 발달한 시대상을 반영하여 직선과 도형 등 기하학적인 요소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알폰스 무하(Alphonse Maria Mucha. 1860-1939)는 체코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다.
알폰스 무하전은 그의 다양한 작품은 물론이고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소장품과 사진 등의 개인자료
그리고 그가 현대의 만화가들에게 끼친 영향까지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였다.

체코 모라비아에서 태어난 무하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그가 8세 때 교회 성가대에 다니면서 그렸다는 스케치에서부터 이미 남다른 자질을 엿볼 수 있었다.
20세에 비엔나 극장에서 무대장식 견습생으로 2년 정도 일했고
이후 귀족의 후원을 받아 뮌헨과 파리의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정식으로 공부했다.
30세부터는 파리와 프라하의 출판사들의 삽화가로 일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895년은 무하에게 있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해였다.
유명여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제작하고 출연하는 연극 지스몬다의 포스터를 의뢰받은 것이다.
원래 베르나르가 포스터 제작을 주문하는 화가는 따로 있었으나 연말이라서 휴가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돈이 없어서 휴가를 가지 못하고 인쇄소에서 일하고 있던 무하에게까지 의뢰가 넘어왔다.
새해 첫날에 파리 시내에 포스터가 전시될 수 있도록 기한을 마쳐달라는 요구에
무하는 기한을 지킨 것은 물론이고 여배우 베르나르의 등신대 크기로 포스터를 제작했다.
기존 포스터 길이의 2배나 되는 규모였기에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여신이 강림한 듯한 수려한 화풍과 다양하고 섬세한 문양에 포스터는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포스터에 매우 만족한 베르나르는 무하와 6년간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그녀가 출연하는 연극의 포스터뿐만 아니라 의상과 무대디자인까지도 그에게 맡겼다.





1896년에는 첫 장식패널 사계를 제작했다.
장식패널은 실내에 걸어놓고 보면서 즐기는 텍스트가 없는 포스터를 가리킨다.
무하는 누구나가 아름다운 예술품을 소장할 수 있기를 염원했다.
그래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리토그래프(석판화)로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는 무하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박람회의 포스터와 만찬회장의 메뉴판 디자인을 의뢰받았고
체코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제국으로부터는 영토 내의 문화를 소개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시관의 내부장식과 오스트리아 가이드북의 디자인을 의뢰받았다.
오스트리아 제국 전시관은 파리만국박람회를 평가하는 디자인어워드에서 은메달을 수상했고
무하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박람회에 공헌한 보답으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무하의 장식예술가로서의 명성은 미국에까지 전해져 1904년에는 초청을 받아 첫 미국 방문을 하게 된다.



50세의 무하는 파리에서 이룬 부와 명성을 뒤로하고 조국 체코로 향한다.
남은 인생은 조국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그는 미국 방문시 인연을 맺은 부호의 후원을 받아
체코를 비롯한 동유럽국가의 기원이 되는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그린 20편의 연작 템페라화
슬라브서사시의 작업에 착수했는데 이 작업은 20년에 걸친 대공정이 되었다.
슬라브서사시는 한 변의 길이가 작게는 4미터 크게는 8미터에 이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라서
보존과 운반의 어려움으로 해외에서 전시된 것은 아직 연작이 완성되기 전인
1921년 뉴욕과 시카고에서 다섯 점이 전시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일찌감치 무하의 작품들의 매력을 알아본 일본에서는 1978년에 최초의 무하전이 개최된 바 있고
이후로도 수 차례에 걸쳐서 무하전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2017년) 봄에는 토쿄 롯폰기에 위치한 국립신미술관에서 슬라브서사시 20점 모두를 전시할 예정이다.
성사된다면 슬라브서사시 전 작품의 첫 해외전시가 되는 셈이다.



알폰스 무하가 일본에서 일찍부터 각광을 받았던 이유는 만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의 작풍과 기법이 일본의 만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번 전시회의 마지막 방에서는 로도스섬전기의 이즈부치 유타카, 여성 4인조 만화가그룹 클램프 등 일본 만화가와
고야성 등 한국 만화가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무하의 그림이 만화에 끼친 영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의 많은 화가들이 그랬듯이
무하 또한 일본의 전통회화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의 장식패널들에 보이는 외곽의 굵은 선이나 나뭇잎 위에 눈이 쌓인 묘사 등이 그렇다.
그런데 그의 그림이 다시 일본 만화에 영향을 주었으니 예술의 선순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하의 조국 체코는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에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을 획득한다.
무하는 독립한 조국을 위해 화폐, 우표 도안 등에 재능을 기부하기도 했다.
1939년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은 체코를 점령했고 프라하에서 무하는 체포되었다.
무하의 그림이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무하의 저택은 독일군 장교의 거처로 징발되었으나
이곳에 머문 고위 장교가 무하의 가족과 작품들을 보호해주어 작품의 유실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 후에는 체코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무하는 부르주아로 분류되었고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는 그의 작품들도 빛을 볼 수 없었으나
1960년대에 아르누보가 재평가를 받으면서 무하의 명성도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훈장을 받은 알폰스 무하.

알폰스 무하의 그림은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매력이 넘친다.
기념품샵의 아트포스터(장식패널)를 비롯하여 수많은 기념품들에서도 그 매력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전시실 내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었으므로
무하가 지향했던 모두가 소장할 수 있는 예술품이 실현된 공간 기념품샵에서 마음껏 셔터를 눌렀다.

이하는 기념품샵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한 상품들.



무하의 그림 하면 아름다운 여인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다양한 사물과 추상적 개념도 여인의 모습으로 승화시켰다.



물결 치는 머리카락과 의상과 배경에 사용된 곡선미 넘치는 다양한 문양들이 더해져 화사함이 더해진다.
무하는 자신이 고안한 다양한 문양들을 집대성한 장식문양집(1902)이란 도안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무하의 장식패널은 어느 곳에 걸어놓아도 찬사를 받을 것 같다.



미국에서 출간되는 잡지 표지를 의뢰받기도 했다.
무하는 인체의 동작을 묘사할 때 모델을 사진으로 찍은 후 사진을 참조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 표지의 모델은 자신의 아들이다.



무하는 기업으로부터 홍보용 포스터나 상품 패키지의 디자인을 의뢰받기도 했다.
모나코에서 몬테카를로까지 철도가 개통된 것을 홍보하는 포스터다.
식물의 줄기가 철로를, 둥근 꽃잎이 열차바퀴를 상징한다.



학생들에게 선물하면 좋을 것 같은 클리어파일.
우측 상단은 담배 종이를 제조한 회사 욥(JOB)의 홍보용 포스터.
여인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과 담배 연기가 함께 물결치고 있다.
끽연의 즐거움을 나타낼 수 있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찾기 위해서
무하는 모델에게 최면술을 걸게 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예쁜 핸드폰 케이스.



다양한 크기의 엽서들.



책갈피와 포스트카드.



텀블러와 알루미늄 액자.



손거울과 키홀더.



테이블 매트 세트.



벽시계.



자개거울과 코스타(컵받침). 



배지.



컬러링북과 메모패드.



노트와 도록.



테이블 매트 4종.





직소퍼즐.



쿠션과 머그컵.



우산.



머플러. 



티셔츠.

2005년 일본 토쿄에서 처음 알폰스 무하의 전시회 <뮤샤전>을 접한 이후 오랜만에 그의 작품들을 접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울러 이런 천재화가를 낳은 체코라는 나라에 관해서도 궁금해졌다.
언젠가 프라하에 가게 된다면 무하의 작품들을 또 만나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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