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암아트홀에서 뮤지컬 <모든 순간이 너였다>를 관람했다.
김주희 작가가 쓴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이고 정하 작가가 그린 웹툰으로 각색되기도 했다.
하태완 작가의 베스트셀러 동명 시집이 이들 작품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뮤지컬의 원작자 이름에 같이 올라가 있긴 하지만 웹소설의 뮤지컬화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에이투비즈 제작, 하태완/김주희 원작,
추정화 각색/연출, 허수현 작곡/음악감독, 권은정 예술감독, 김병진 안무이고 공연시간은 110분이다.


이날 공연의 캐스팅은
로운 역 임강성, 하현 역 정재은, 강혜 역 정영아, 윤재 역 백승렬 배우였다.
강혜 역의 배우는 후반부에 윤재의 엄마 역을 겸하고
윤재 역의 배우는 술집 달리의 바텐더를 겸한다.
임강성 배우는 드라마 <내 사랑 치유기>, 연극 <러브 스코어>를 통하여 낯이 익고
정재은 배우는 뮤지컬 <도그파이트>에서 순진무구한 여주인공 로즈 역으로 여러 차례 만나보아서 친근하고
정영아 배우는 뮤지컬 <젊음의 행진>에서 섹시하면서도 코믹한 담임선생님 역으로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고
백승렬 배우는 이번 공연에서 처음 보았다.

무대는 약 5미터 높이의 다층 구조물을 설치하여 배우들의 동선을 수직으로 확장시켰다.
학교 옥상에 올라가서 과학실에서 빌려온 천체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하는 장면 등이
구조물의 최상층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평지에서 연기할 때보다는 한결 실감 나는 분위기로 다가왔다.
벽면에는 대형 스크린을 여러 대 설치하여
엔딩 장면에서 벚꽃이 흩날리는 영상을 보여주는 등 이야기의 흐름과 분위기 연출을 시각적으로 돕는다.

구조물의 우측 끝에는 미끄럼틀이 설치되어 있어서
학창시절의 회상 장면 등에서 학교 운동장을 연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배우가 자전거에 올라타고서 무대 위를 달리는 역동성 넘치는 장면은 자전거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웠다.

달을 관찰하는 대목에서는 여주인공의 이름이 하현이라서 하현달과 상현달의 모양과 관련된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지구과학 수업에서 배우는 달의 차고 지는 모양과 각 모양의 이름을 그림으로 첨부해보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야기의 핵심은 불변의 사랑 즉 일편단심의 사랑이다.
로운과 윤재는 어려서부터 함께 어울려서 논 죽마고우다.
두 소년이 공을 차고 놀다가 또래의 소녀를 공으로 맞히는 사고가 일어났는데
소녀에게 사과하러 간 것을 계기로 세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이러한 내용의 주인공 소개가 윤재의 내레이션으로 흐르며 공연은 막을 올리지만
느닷없이 날아온 축구공에 맞아본 적이 있기 때문에 내레이션의 과거 회상에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두 소년과 한 소녀는 성장했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고교생이 되었다.
친구 이상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셋의 관계에는 미묘한 균열이 시작되었고
윤재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면서 남은 두 사람 로운과 하현의 관계도 깨어지고 말았다.
늘 함께 어울려 다니는 사이였으니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죽은 친구가 생각이 나서 괴로웠을 것이다.
로운과 하현의 재회는 7년 후에 보석 디자이너가 된 로운이
하현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성사된다.
하현은 7년 만의 재회가 가슴 떨릴 정도로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가슴 한 켠이 저려옴을 느꼈다.
친구 이상으로 좋아했던 로운을 향한 감정이 되살아남과 동시에 죽은 윤재에 대한 미안함도 함께 되살아난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둘의 재회는 7년 만이 아니었다.

정영아 배우가 연기하는 강혜는 하현의 직장 상사다.
강혜는 애인과의 관계가 식어서 외로운 밤을 술집 달리에서 술로 달래는데
인근에 사는 하현을 술동무로 불러내곤 한다.
드라마 <X파일>에 어울릴 듯한 기이한 음악을 벨소리로 사용하는 그녀는
로운과 하현의 관계를 내다보는 예리한 촉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사랑에는 서툰 허당 이미지를 보여주며 웃음을 이끌어내는 유쾌한 캐릭터다.
강혜가 메인으로 부르는 넘버 <다시 사랑을 시작할래>는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길 기대하며 불안감과 희망사항을 노래하는 감미로운 발라드다.
뮤지컬 모든 순간이 너였다는 매력적인 넘버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는 작품이다.
백견이 불여일문이라고 제작사의 유튜브 공식채널에 올라와 있는 넘버를 들어보는 것이
이 뮤지컬의 음악적 매력을 알아보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연을 보면서 6장의 꽃잎을 가진 벚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희귀한 벚꽃에 '기적'이라는 이름을 붙인 작명센스 또한 감탄할 만했다.
벚꽃의 나라 하면 일본인 만큼 일본 웹에서 찾아보니 실제로 6장의 꽃잎을 가진 벚꽃에 관한 포스트가 있었다.
심지어는 7장의 꽃잎을 가진 벚꽃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뮤지컬 모든 순간이 너였다는 일편단심의 사랑과 진한 우정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임강성 배우가 연기한 로운은 멋진 남자란 저런 것임을 보여주었고
정재은 배우가 연기한 하현은 활발하고 명랑한 소녀
그래서 두 남자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던 여자를 실감나게 연기하여
오랜 공백이 있었음에도 화사하게 다시 피어나는 연인의 사랑을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그려냈다.
벚꽃이 주요한 소재이기 때문에 봄에 공연하면 계절에 더욱 잘 어울리는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뮤지컬의 제목과 노래 제목이 같은 넘버 <모든 순간이 너였다>는
네 배우가 노래하는 엔딩곡으로서
추억의 봄날을 회상하며 변치 않는 우정과 사랑을 노래하여 여운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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