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에 대학로 TOM 2관에서 뮤지컬 <머더러>를 관람했다.
한다프로덕션 제작, 게오르크 카이저 원작, 정찬수 극작,
심설인/이현정 연출, 한혜신 작곡/음악감독, 이현정 안무이고 공연시간은 100분이다.

이날 공연의 캐스팅은 앨런 역 최석진, 앤 역 강연정, 에릭 역 이우종,
토미 역 이진우, 피터 역 남민우, 새끼여우 역 최종석, 어른 역 송상훈 배우였다.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1-1824)의
<메두사의 뗏목(Le Radeau de la Méduse / The Raft of the Medusa. 1819)>.
루브르 박물관 소장이고 491cm × 716cm의 큰 그림이다.
1816년 7월 5일 프랑스 군함 메두사 호가 식민지 세네갈로 향하던 중에 암초에 부딪혀 좌초했다.
항해술이 부족한 선장의 책임이 컸다. 400명의 탑승객 중 구명보트에 탈 수 있는 인원은 250명뿐이었다.
보트에 타지 못한 약 150명은 좌초한 선박의 잔해물로 뗏목을 만들어 올라탔으나
이들이 갖고 있는 음식이라고는 건빵 한 봉지, 물 두 통, 와인 몇 병 밖에 없었다.
12일 후인 7월 17일에 뗏목이 발견되었을 때 살아있는 사람은 15명에 불과했다.
표류기간 동안 뗏목 위에서는 폭력과 살인 그리고 식인 행위까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아서 그림을 그렸고 그의 이름을 알리는 대표작이 되었다.

독일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Georg Kaiser. 1878-1945)는 이 사건을 모티프로 하여
바다 위에서 구명보트를 타고 난파한 열 세 명의 소년이 불운의 숫자 13을 피하기 위해서
가장 어린 아이를 익사시키는 참극을 저지른다는 내용의 희곡 <메두사의 뗏목(The Raft of the Medusa. 1945)>을 썼다.
창작뮤지컬 머더러는 게오르크의 이 희곡을 바탕으로 하여 내용을 각색했다.
바다와 뗏목 대신 2차 대전 때의 유대인 수용소로 배경을 옮겼고 13명의 아이들을 6명으로 줄였다.
유럽에서는 12를 완전수로 여겼다. 예수의 12사도(열 두 제자)나 올림푸스의 12신이 그 좋은 예다.
12에 1이 더해지면 완전수가 깨어지기 때문에 13을 불길한 숫자로 보는 것이다.
또한 예수와 12사도가 함께 최후의 만찬을 즐긴 후 열 두 제자의 한 명인 가롯 유다가 배신을 했기 때문에
13명이 함께 모이면 불길한 사건이 일어난다는 미신도 있다.
뮤지컬 머더러에서는 원작의 13 대신에 악마의 숫자로 여기는 6을 대용하고 있다.

다섯 명의 소년이 갇혀 있는 수용소 감방의 문을 누군가가 두드리는 것으로 공연은 시작된다.
나치에게 잡혀온 유대인 소년들은 어른들과 격리되어 따로 감금되어 있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너희들을 구하러 왔다고 얘기했으나
이곳에 잡혀와서 온갖 고초를 겪은 소년들은 그 말을 쉽게 믿지 못했다.
문이 밖에서 잠겨 있었기에 구원자는 가지고 있던
비스킷 여섯 개와 물병 한 개를 감방 안에 던져넣고는 다시 구하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앨런, 앤, 에릭, 토미, 피터 이렇게 다섯 명의 소년은 하루에 비스킷 한 개를
다섯이 똑같이 나누어 먹으며 6일 간 버텨보자고 서로에게 약속을 한다.
구하러 오겠다고 했으니 7일 내에는 오지 않겠냐고 생각을 하며.
그러나 예기치 못했던 돌발상황이 발생하고 만다.
감방 구석의 은폐된 공간에 또 한 명의 소년이 있었던 것이다.
고문이라도 당했는지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그 소년은 말을 하지 못했다.
다섯 소년은 상처로 온몸이 붉게 물들어서 붉은여우 같다고 그 아이에게 새끼여우라는 호칭을 붙인다.
새끼여우의 개입으로 인해 먹는 양이 줄어들게 되어 일부 소년들은 불만을 표시한다.

작품 속에는 홍일점이 끼어있다.
12세 가량의 소년들로 설정되어 있으므로 아직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일 수도 있으니
사람에 따라서는 외모나 목소리로는 남녀 구분이 모호할 수도 있는 시기여서
소녀가 수용소로 끌려간 아버지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남장을 하고 소년들 틈에 섞였다는 설정이 납득할 만하다.
이날 공연의 강연정 배우는 앳된 목소리를 내어 십대 초반의 순수한 소녀를 효과적으로 연기했다.
앤이 여자인 것이 밝혀지자 앨런은 너와 결혼하고 싶다며 앤에게 고백을 한다.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어린 청소년들의 순수한 감정이 움트는 희망의 장면이기도 했지만
앨런과 앤이 실현될지 어떨지 알 수 없는 둘의 결혼을 미리 축하받으며
은폐된 공간에서 쉬고 있던 새끼여우를 밖으로 나오게 하고
자신들이 그곳에 들어가 신혼방을 꾸미는 전개로 인하여 순수성은 퇴색되고 말았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있듯이 밀폐된 공간에 남녀가 단둘이 있을 때
정말로 손만 잡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누구보다도 새끼여우를 감싸고 돌았던 앨런이 여자와 단둘이 함께 있고 싶다는 이유로
아픈 새끼여우를 은신처 밖으로 내몬 꼴이 되어 버려서 순수성이 지닌 미숙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앨런이 최후에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자신이 행한 행동에 대한 속죄의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

원작에서 그랬듯이 뮤지컬 머더러에서도 집단은 불길한 숫자를 피해야 한다는 미신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
미신이든 소문이든 또는 종교든 무언가를 믿고 안 믿고는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으나
그것을 철저하게 믿어 버렸을 때 인간이 어떤 행동까지 저지르게 될 것인가는 명약관화하다 하겠다.
성지를 되찾아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으로 일으킨 십자군전쟁이나
순교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자행되는 이슬람교도의 폭탄테러가 그 좋은 예다.
더군다나 의심이 없는 순진무구한 소년과 소녀들일수록 쉽게 믿기 마련이다.
뮤지컬 머더러는 살인자라는 제목처럼 미신을 믿어서 살인을 저지른 소년들의 이야기다.
결말은 어두운 내용이 될 수밖에 없으나 앨런과 앤의 결혼식 장면 등 밝은 부분도 적절하게 가미되어 있다.
잘못된 믿음에 좌우되는 인간의 나약함과
타인을 희생시켜서라도 믿음을 관철하는 인간의 잔혹함에 관하여 생각해보게 하는 뮤지컬 머더러였다.
무능과 부패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추악한 정권을 지지하는 자들과
작품 속에서 미신을 신봉하는 소년들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커튼콜 촬영은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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