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연극 망자 죽이기 2019/10/13 09:35 by 오오카미




지난 주말에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연극 <망자 죽이기>를 관람했다.
원작은 세르비아 작가 브라니슬라브 누쉬치(Бранислав Нушић / Branislav Nušić. 1864-1938)의 희곡
<망자(Покојник / The Deceased. 1937)>이고 이번 공연이 국내 초연이다.
작가는 젊은 시절에 체제에 저항하는 시를 썼다가 1년 간 감옥에 갇힌 적이 있고
이후에는 공무원이 되어 외교관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후에는 국립극장의 장이 되기도 했다.
1936년에 작가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적이 있고 의료진의 도움으로 하루 만에 깨어난 것이
죽은 자가 살아돌아온다는 내용의 이 희곡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고전작품답게 무대에는 옛스러운 정취가 느껴지는 가구들이 배치되었으나
곧은 직선으로 간소화한 3개의 출입구가 주는 모던한 느낌이 더해져서
전체적으로는 고전과 현재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느낌을 주었다.
연극 망자 죽이기는 극단 관악극회 제작, 이순재 예술감독, 안경모 연출,
고건우 무대감독, 최종률 무대디자인, 하경희 의상이고 공연시간은 115분이다.


파블레 마리치는 부와 명예를 이룬 성공한 건축가다.
어느 날 몇 년 전부터 함께 일했던 현장감독 알료샤가 찾아와서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인즉슨 그의 아내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집을 나가버렸는데
도저히 사랑하는 아내를 잊을 수가 없어서 슬픔에 겨워 사느니 그만 자살할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누추한 옷차림의 부하가 안쓰러워서 파블레는 옷걸이에 걸려있던 
그의 고급외투를 입혀주고는 기운 내라고 다독여서 돌려보냈다.
파블레는 부하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파블레의 아름다운 아내 리나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얼마 전 알아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상대가 그의 절친이자 동업자인 밀란 노바코비치라는 사실이 더욱 괴로웠다.
파블레가 시름에 빠져있을 때 그가 후원하고 있는 젊은 학자 류보미르가 찾아왔다.
파블레가 고민을 털어놓자 학자는 그의 후원자에게 며칠 집을 떠나있어 보면 어떻겠냐고 조언을 했다.

파블레가 아내에게 화를 내고 집을 나간 다음날 인근 강가에서 그의 외투와 신분증이 발견되었고
한 달 후에는 물에 불어서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사체가 멀리 떨어진 강에서 발견되었다.
파블레가 집을 나간 후로 소식이 끊겼기에 정황상 신원미상의 사체는 파블레로 인정되었고 장례가 치러졌다.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흘렀다.
파블레의 아내 리나는 남편의 친구였던 밀란과 재혼을 했고
파블레의 친척 스파소예 블라고예비치는 성공한 건축가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파블레의 후원을 받았던 야심 찬 젊은이 류보미르는 그의 인심 좋은 후원자가 7년 간에 걸쳐서 
일하는 틈틈이 취미 삼아서 집필한 수로학에 관한 연구 원고를 자신의 이름으로 학계에 발표하여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수로 채용되는 특혜까지 얻었다.

죽은 파블레 덕분에 모두가 행복을 만끽하고 있던 어느 날
리나의 이모 안타가 사색이 되어서 황급히 조카의 집을 찾아왔다.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파블레가 살아서 돌아왔다고.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젊은 하녀 아나 역 김하림, 남자 하인 소피오 역 이솔우 배우.

대사가 몇 줄 없는 하인이나 하녀 역은 여건에 따라서는 뺄 수도 있겠으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인원수가 한정되어 있는 공연장에서는
단역일지라도 배우가 추가되면 그만큼 무대가 풍성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아나 역 김하림 배우는 겉으로는 고분고분해 보이지만
고용주들이 없을 때에는 도도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고서 의자에 앉는 등 요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늙은 하녀 마리야(Marija) 역 이주미 배우.

허리가 구부정하고 귀가 잘 안 들려서 노동력이 떨어지는 노인을 피고용인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고용주 가문의 오랜 역사나 피고용인을 가족처럼 여기는 가족성을 대변하는 장치로 봐도 좋을 것이다.



신문기자 믈라덴 자코비치(Mladen Djaković) 역 고건우 배우와 리나의 정부 밀레(Mile) 역 이정춘 배우.

이 연극은 제목을 악인들이라고 붙였어도 좋을 만큼 나쁜 인간들이 다수 등장한다.
믈라덴은 흰 것도 검은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소문이 난 민완기자다.
3년 만에 돌아온 파블레가 모든 것을 원위치시키겠다며 소송을 준비하려 하자
스파소예는 파블레를 헐뜯는 기사를 신문에 실어서 여론을 자신들 쪽으로 움직이려 한다.
그래서 고용한 사람이 믈라덴인데 그는 한 자도 쓰지 않고 스파소예로부터 돈을 뜯어낸다.
유유상종이라고 악인 곁에는 악인이 모이게 마련이다.

밀레는 리나의 정부이고 그녀에게서 용돈을 타 쓰는 제비족이다.
리나는 파블레와 혼인 중에 남편의 친구 밀란과 바람을 피웠다.
그리고 밀란과 재혼한 후에는 새 남자친구 밀레를 만들어서 또 바람을 피우고 있으니
제 버릇 개 못 주는 법이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법이다.



주리치(Mr. Djurić) 역 최종률 배우.

건축업에 능통한 파블레가 실무로 익힌 지식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집대성한 수로학 연구 원고는 놀라운 것이었다.
젊은 학자 류보미르는 이 원고를 이용하여 교수가 되었고 수로를 건설하는 회사에 사외이사로까지 등재된다.
류보미르는 수로학 전문가라는 지위를 활용하여 스파소예를 비롯한 많은 투자자의 돈을 회사에 끌어모았다.
주리치 또한 투자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정권 실세와 연줄이 있는 인물로서 류보미르의 회사가 정부의 국책사업을 수주하는 데 힘을 발휘한다.
정권과 결탁하면 국민의 혈세로 개인의 배를 불릴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현장감독 알료샤(Aljoša) 역 조향용 배우와 스파쇼예의 시집 못 간 여동생 아그니야 역 신영선 배우.

극 초반에 등장하는 알료샤는 그의 말대로 자살을 한 것인지 아니면 실족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파블레의 외투를 강가에 벗어놓음으로써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의 빌미를 제공한다.
또한 바람난 아내를 가진 남자라는 점에서 파블레와 동병상련의 아픔을 지닌 인물로서
파블레에게 다가올 비극을 암시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조카 바보라는 말도 생겨났던데 미혼자 성인들에게는 조카가 자식처럼 여겨지기도 하는가 보다.
아그니야는 과년한 노처녀이지만 여전히 결혼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오빠는 스파소예다. 스파소예의 딸 부키차가 약혼을 하자
아그니야는 수시로 오빠의 집을 드나들며 조카의 결혼준비에 시시콜콜 간섭을 한다.



부키차 역 이규빈 배우와 류보미르(Ljubomir) 역 고용석 배우.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부키차는 그 존재만으로도 극에 생기를 불어넣는 캐릭터다.
그녀의 아버지 스파소예와 그녀의 약혼자 류보미르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그녀는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식을 준비하며 달콤한 신혼생활을 꿈꾸는 명랑하고 아리따운 예비신부다.
그녀의 유일한 고민거리라면 아그니야 고모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한다는 것 정도일까.

류보미르야말로 악인 중의 악인이라고 생각한다.
파블레의 등장으로 모든 것을 빼앗길까 봐 스파소예는 자다가도 식은땀을 흘리지만
류보미르는 전혀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냉정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스파소예가 자네는 그가 두렵지 않은 겐가 하고 물으니 류보미르는 대답했다.
"다들 죽은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훔칩니다."
이 대사 한 문장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뻔뻔하고 파렴치하고 죄의식이 없는 인간인가를 알 수 있다.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자면 조 머시기 같은 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밀란 노바코비치(Milan Novaković) 역 김인수 배우와 리나(Rina) 역 지주연 배우.

친구의 이성친구나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은 몹쓸 짓이다.
밀란은 오랜 친구이자 동업자인 파블레의 아내 리나와 불륜을 저질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파블레가 밀란에게 왜 그랬냐고 따져 묻자
자네가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그녀를 외롭게 만든 게 잘못이라고 밀란은 대답했다.

리나는 남편이 있음에도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다.
그럼에도 리나를 미워할 수 없음은 리나를 연기한 지주연 배우가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사랑이 죄인가요 하고 그녀가 물어온다면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요라고 대답하게 될는지도.
지주연 배우는 깜찍한 연기로 미워할 수 없는 악녀를 보여주었다.



스파소예 블라고예비치(Spasoje Blagojević) 역 신강균 배우와 리나의 이모 안타(Anta) 역 나호숙 배우.

극을 보면서 두 사람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 때문에 둘의 관계가 다소 헷갈리기도 했다.
스파소예가 파블레의 친척이고 안타가 리나의 이모이니까 일종의 사돈 관계일 텐데
스파소예와 안타는 서로를 당신이라고 부른다.
여하튼 두 노인은 파블레의 등장에 겁을 먹는 모습을 보여서 일말의 양심은 남아있음을 알려주었다.
원로배우들이 이끌어주는 작품에서는 확실히 무대에서 연륜이 묻어난다.



파블레 마리치(Pavle Marić) 역 정인범 배우.

자수성가한 사업가 파블레는 주변의 모함으로 결국 몰락한다.
휴대폰이 없는 시대였다고는 해도 전화나 전신으로 얼마든지 소식을 알릴 수 있었음에도
3년 간이나 아무런 연락이 없었으니 그가 죽었다고 사람들이 믿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위조여권을 받아들고서 축 처진 어깨로 돌아서서 떠나는 쓸쓸한 그의 뒷모습에서 비극은 절정에 다다른다.



연극 망자 죽이기는 서울대학교 동문들로 구성된 극단 관악극회가 국내 초연한 고전극이다.
체홉의 고전극 같은 강렬함은 적었지만 국내에 새로운 작품을 소개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의 것을 탐하는 인간의 사악한 본성과 여러 거짓말이 하나의 진실을 덮을 수 있다는 부조리를
성공한 건축가가 주변인물들의 모함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통하여 담담하게 보여주는 비극이자 풍자극이었다.





연극 망자 죽이기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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