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소설 한니발 라이징 2019/10/01 14:21 by 오오카미


토머스 해리스(Thomas Harris. 1940-)의 소설 <한니발 라이징>을 읽었다.
한국에서는 2006년 12월에 창해 출판사에서 박슬라 번역으로 출판됐었는데
오랜만에 작가의 신작 <카리 모라(Cari Mora. 2019)>가 나와서인지 이전 작품들이 재출간되었다.
이번에 다시 나온 한니발 라이징은 나무의철학에서 출판했고 번역자는 동일하다.
말미의 역자의 글에서 수정했다는 언급이 없는 걸로 보아 번역 상태는 이전과 동일한 듯하다.
 
토머스 해리스는 1975년에 <블랙 선데이(Black Sunday)>로 작가 데뷔했는데 
다작하는 작가가 아니라서 그가 지금까지 쓴 소설은
블랙 선데이와 올해 5월에 내놓은 카리 모라 그리고 한니발 시리즈 네 권을 더하여 총 여섯 권에 불과하다.  
<레드 드래곤(Red Dragon. 1981)>에서 그가 창조한 연쇄살인범 한니발 렉터(Hannibal Lecter)가 처음 등장했고
이후 한니발 시리즈는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 1988)>, <한니발(Hannibal. 1999)>로 이어졌다.
<한니발 라이징(Hannibal Rising. 2006)>은 가장 늦게 출간됐지만
한니발의 어린 시절을 다룬 프리퀄이라서 내용상으로는 가장 앞서는 작품이다.



한니발 하면 FBI 요원 클라리스 스털링(Clarice Starling)을 연기했던 조디 포스터(Jodie Foster. 1962-)와
살인죄로 감옥에 갇혀 있는 한니발 렉터 박사를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 1937-)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 1991)>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 한니발은 타인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천재적인 기억력을 지닌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로서 
스털링 요원이 담당한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데 도움을 주는 조력자의 모습을 보이는 한편
인육을 먹는 살인마로서 타인의 감정 따위에는 무관심한 사이코패스의 모습 또한 보여주었다.
한니발 렉터는 모두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을 수 있는 자질과 소양을 갖춘 교양인인 동시에
사람들의 혐오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범죄자의 모습도 동시에 지닌 양면의 괴물이었던 것이다.



소설 한니발 라이징의 이야기는 한니발 렉터가 일곱 살이었던 때부터 시작된다.
한니발은 리투아니아의 귀족 가문인 렉터 가에서 태어났다.
그와 이름이 같은 선조가 오백여 년 전에 지은 고성에서 일가가 평온한 나날을 지내고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화에 휘말리면서 렉터 가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독일과 러시아의 사이에 위치한 리투아니아는 두 나라가 각축을 벌이는 전쟁터가 되고 만다.
한니발 일가는 독일군을 피하여 하인들과 함께 산속에 위치한 산장으로 피난을 떠났지만
얼마 후 그곳 또한 전화에 휩쓸렸고 총성이 멎은 후 살아남은 사람은 어린 한니발과 그의 여동생 마샤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독일군 측에 붙어서 동네 주민들을 약탈하던 양아치 일당이 남매만 남은 산장으로 기어들어온다.
혹독한 추위의 겨울을 나면서 산장 안의 식량이 다 떨어지자 양아치들은 한니발 남매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과르디(Francesco Guardi. 1712-1793)의 그림
<베네치아,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와 푼타 델라 도가나
(venezia, punta della dogana con santa maria della salute. 1770)>.
베네치아 대운하를 조망하기 좋은 푼타 델라 도가나는 강 쪽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곶(푼타)에
옛 세관(도가나) 건물과 건강(살루테)을 기원하는 성모 마리아(산타 마리아) 성당이 들어선 관광명소다.
 
한니발 라이징을 통하여 한니발이 어째서 인육을 먹는 엽기적인 범죄자가 되었는지
타인의 감정에 동화하지 못하는 얼어붙은 마음의 소유자가 되었는지에 관한 답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그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전쟁의 참상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리고 한니발이 과외선생님에게서 기억의 궁전 기억법을 배우는 에피소드라든가
그의 숙부인 로버트 렉터가 꽤 유명한 화가였고
렉터 가의 고성 내부에는 많은 화가들의 명화가 장식되어 있었다는 묘사를 통하여
한니발의 뛰어난 기억력과 예술과 문화에 대한 폭넓은 식견의 유래를 짐작해볼 수도 있었다.

전후 리투아니아의 고아원에 있었던 한니발은 프랑스에 살고 있는 숙부에게 입양되어 고향을 떠나게 된다.
숙부처럼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인지 한니발의 그림 실력은 뛰어났다.
당시 유럽에서는 일본의 화풍이 유행이었는데 마침 한니발의 숙모가 나가사키 출신의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그는 숙모의 소장품을 통하여 일본의 문화와 예술에 관하여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고
일본 화풍을 본따서 그린 그림을 화랑에 판매하여 학비에 보태기도 했다.
한니발은 화랑에서 우연히 렉터 가의 고성에 걸려 있었던 베네치아 운하를 그린 명화를 발견하고서
여동생의 원수이고 렉터 가의 금품을 약탈한 양아치 일당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찾게 된다.



영화 <한니발 라이징(Hannibal Rising. 2007)>에서 한니발의 일본인 숙모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를 연기한 여배우는 중국배우 공리(巩俐. 1965-)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인 역을 중국인이 연기하면 어색하듯이
일본인 역을 중국배우가 연기하니 확실히 위화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공리야 워낙 인지도가 있는 배우이고 연기면에서도 충분히 기량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1008)>라는 연애소설을 쓴 여성작가다.
겐지모노가타리는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로 평가받기도 하는 작품인데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썼다는 사실에 더욱 주목을 받는 소설이기도 하다.
토머스 해리스가 그녀의 이름을 자신의 작품에 차용한 것은 그만큼 그녀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본다.

소설 속에서 무라사키는 한니발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감정이라는 것을 거의 잃어버린 한니발이었지만
아름다운 무라사키를 바라보면서 성숙한 여인을 향한 두근거림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로부터 일본의 문화와 예절 등을 배우며 이국의 교양을 몸에 익힘과 동시에
그녀의 선조가 남긴 갑주와 일본도를 가까이 하면서
검으로 사람을 베는 일에 있어서 망설임이 없었던 사무라이의 정신을 체득하게 된다.

무라사키와 한니발이 주고받는 와카(和歌. 일본의 전통시) 중에는
절세미녀였던 걸로 전해지는 여성시인 오노노 코마치(小野小町)의  시
"人に逢はむ月のなきには思ひおきて胸はしり火に心やけをり
(당신을 만날 방법이 없는 달이 뜨지 않은 밤에는 임을 그리는 생각에
가슴은 방망이질 치고 불타오르는 마음에 몸이 뜨거워집니다)" 가 인용되는 등
작가가 일본의 문화에 적지 않은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요소가 많이 있다.

영미소설 한니발 라이징은 문학사에 길이 남을 캐릭터 한니발 렉터의 원점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
한니발은 유능한 정신과 의사였으나 인육을 먹는 살인마의 모습도 함께 지닌 독특한 캐릭터이므로
독창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법을 연구해볼 수 있는 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복수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인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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