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에세이 게이샤의 첫날밤에서 사무라이 할복까지 2019/09/18 16:23 by 오오카미


해드림출판사에서 출간한 <게이샤의 첫날밤에서 사무라이 할복까지>를 읽었다.
박동균 저자는 점을 보니 전생에 역관(통역사)이었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는데 그래서일까
본문의 구성은 임진왜란 발발 전에 조선통신사를 따라나선 조선인 역관의 시점에서 쓰여져 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일본의 특유한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인문서 또는 교양서의 범주에 들어가는 책일 거라고 생각하였으나
막상 페이지를 들춰보니 예상과는 많이 달라서 도저히 교양서로 분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어떻게 분류하였나 살펴보니 에세이 범주로 구분해 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본문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상당히 가볍다.
임진왜란을 전후한 16세기 후반을 본문의 배경으로 설정해 놓았음에도
그 이후의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나
컴퓨터, 신용카드, 스마트폰 등 현대에 사용되고 있는 물건들을 거침없이 언급하고 있는 데다가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을 말장난하듯이 기술하고 있어서 도무지 진지한 맛이 없다.
무겁거나 진지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독자의 취향에는 맞을지도 모르겠으나
일본의 다양한 잡학상식을 소개하는 책임에도 본문에 사용된 가벼운 문체 때문에 교양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真. 845-903)를 모시는 큐슈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満宮).

문체 문제는 차치하고 골자인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의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상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본문에서 언급한 몇 가지 소재를 예로 들어보겠다.

일본에서 학문의 신이라 불리우는 스가와라 미치자네가
백제에서 건너간 학자 왕인의 자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밖에도 임란 때 잡혀간 도공들이 조선에서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장인으로서 후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전후에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일본에 머무르는 것을 택한 도공이 많았다는 것 등
한국과 일본 간의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책에서는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왕인의 손자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자손을 손자로 잘못 쓴 오타로 보인다.
왜냐하면 왕인은 4세기 백제 근초고왕 때의 사람이지만 스가와라는 9세기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가와라가 왕인의 후예라는 것은 일설의 하나일 뿐 정설은 아니지만
왕인 박사가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한 것과 일본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평상시에 접해본 적이 있음에도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나중에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몇 가지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우선 육요(六曜)를 들 수 있겠다.
일본 달력을 보면 날짜마다 두 글자의 한자어가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先勝, 友引, 先負, 仏滅, 大安, 赤口가 그것인데 이들은 하루 중 시간대의 길흉을 나타낸다.
불멸은 뭘 해도 안 좋은 날이고 대안은 뭘 해도 좋은 날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이 책을 읽으며 다른 네 가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선승은 오전이 길이고 오후는 흉이고 선부는 오전이 흉이고 오후가 길이다.
우인은 아침과 저녁이 길이고 점심은 흉이고 적구는 점심 전후만 길이라는 거다.
이밖에도 각 상황에 따라서 해도 좋은 날과 안 좋은 날로 나뉜다는 것까지를 알 수 있었고
인터넷으로 좀 더 살펴보았더니 다양한 예를 볼 수 있었다.
사진은 입적일(入籍日. 혼인신고일)로 좋은 날에 하트 마크를 표기해 놓은 것이다.
여담으로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결혼식을 올린 날을 결혼기념일로 하는 부부도 있지만
구청에 혼인신고를 한 날짜인 입적일을 결혼기념일로 삼는 부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알게 된 지식은 아니지만
이 책을 계기로 웹서핑을 하다가 알게 되었으니 지식을 넓히는 데 영향을 미쳤음엔 틀림없다.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을 흔히 설사약(지사약, 지설제)이라고 하는데
설사약의 대표적인 제품으로 정로환(正露丸)이 있다.
청일전쟁(1894-1895)에서 일본이 승리하기는 했으나 중국의 더러운 수질환경 때문에
많은 일본군이 오염된 물을 먹고 설사로 고생을 해야 했고 그래서 설사약의 개발에 착수했다.
1903년에 일본육군군의관학교에서 설사의 원인인 티푸스 균의 억제에 크레오소트(목초액)가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고
알약 형태로 개발하였는데 당시 러시아와의 전쟁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라서
러시아를 정벌한다는 의미를 담아서 征露丸으로 이름을 붙였고 전후에 정복할 정 자 대신 바를 정 자로 이름이 바뀌었다.
정로환의 대표적인 제약회사는 정로환을 상표등록했고 나팔 로고를 사용하는 타이코야쿠힌(大幸薬品)의 정로환이지만
법정소송에서 정로환이 보통명사로 인정이 되면서 다른 제약사에서도 정로환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하고 있다.
책의 본문에서 正露丸의 원래 이름이 征露丸이었다는 내용을 토대로 하여
인터넷으로 여러 게시물을 찾아보고 이처럼 견문을 보다 넓힐 수 있었다.



578년에 창업한 콘고구미(金剛組)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콘고구미는 이 책을 통하여 그 존재에 관하여 알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국내 방송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이고
장인정신의 귀감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유명한 기업인 것 같았다.
쇼토쿠타이시(聖徳太子. 574-622)가 일본에도 백제의 사찰과 같은 건축물을 세우고 싶다며
백제에 목공을 요청하였고 3명의 목수가 파견되어서 지은 사찰이 오사카의 시텐노지(四天王寺)다.
사찰 건립 후에도 일본에 남은 목수의 이름이 金剛이었고 그의 후손이 대대로 목수 일을 하며 가업을 이었다고 한다.
시텐노지는 전쟁과 재해로 일곱 차례나 재건되었는데 일곱 번의 공사를 모두 콘고구미가 맡아서 했다.



마이코(舞妓)와 게이샤(芸者). 사진출처는 https://ei88.exblog.jp/22415839/ 

게이샤와 유녀(遊女)의 구별법에 관한 내용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도 연회의 시중을 드는 기생과 몸을 파는 유녀를 구분했듯이
게이샤는 술자리에서 춤과 연주로 연회의 흥을 돋우는 기생으로 매춘을 업으로 하는 유녀와는 구별된다.
게이샤나 유녀 모두 기모노를 입고 있지만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게이샤는 반드시 버선을 신고 오비(기모노의 허리끈)의 매듭을 뒤로 묶지만
유녀는 맨발이고 오비의 매듭을 앞으로 묶는다는 것이다.
게이샤의 첫날밤에서 사무라이 할복까지는 이와 같은 일본문화의 다양한 상식을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책에는 없지만 추가적인 내용을 첨부해보자면
게이샤의 경우 정식 게이샤가 되기 이전의 견습생 소녀를 마이코라고 하여 게이샤와는 구별을 둔다.
게이샤와 유녀가 그러했듯 게이샤와 마이코도 복장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마이코는 소매가 긴 후리소데(振袖)에 오비의 매듭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다라리노오비(だらりの帯)이고
봇쿠리게타(ぽっくり下駄) 또는 오코보(おこぼ)라고 부르는 굽이 높은 게타를 신는다.
사진의 왼쪽 키 큰 여성이 마이코이고 우측의 여성이 게이샤다.

게이샤의 첫날밤에서 사무라이 할복까지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말장난하는 듯한 가벼운 문체가 단점이긴 하지만
일본을 좋아하고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는
일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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