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연극 굴레방다리의 소극 2019/06/13 12:11 by 오오카미




대학로 예그린 씨어터에서 연극 <굴레방다리의 소극>을 관람했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제작, 엔다 월시(Enda Walsh. 1967-) 원작,
김민정 번역, 임도완 연출이고 공연시간은 2시간이다.
원작 희곡의 제목은 <월워스의 소극(The Walworth Farce. 2006)>이다.



굴레방다리란 마포구 북아현동에 흐르던 창천에 놓인 다리 이름이자 동네 이름이었다.
창천을 복개하여 오래전에 굴레방다리는 사라졌고 그 위에 아현고가도로가 세워졌었으나 이마저 2014년에 철거됐다.
하지만 아직도 아현역 사거리를 굴레방다리사거리라고 부르고 있으므로 옛 명칭은 남아있다.
지명의 어원에 관해서는 김포에서 쌀을 운반해오던 쌀장수들이 도성 안에 들어가기 전에
주막과 객주가 많았던 이곳에서 우마의 굴레를 벗기고 쉬게 하였다고 한 것에서 유래하는 것 같다.
굴레를 풀어놓은 바위라는 건지 굴레 모양의 바위라는 건지 어쨌든 굴레바위가 굴레방이 됐다는 글이 보이던데
내 생각에는 굴레를 해방한다는 의미에서 굴레방이 된 것 아닌가 싶다.
로비에 붙어 있는 어휘사전에는 뜬금없이 바퀴살이 등장하고 있어서 굴레라는 단어와 전혀 연관이 되지 않는다.



공연장 로비에는 어휘사전과 인물관계도가 붙어 있다.
관람 전에 한번 눈길을 주는 편이 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날 공연의 캐스팅은
아버지 김대식 역에 이상일, 큰아들 김한철 역에 성원,
작은아들 김두철 역에 이중현,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김리 역에 윤세인 배우였다.



원작은 아일랜드에서 온 3부자와 런던의 월워스로 인물과 지명이 설정되어 있는데
2008년 국내 초연 때부터 작품의 주인공인 김씨 3부자는 연변에서 온 조선족이고 지명은 굴레방다리로 설정됐다.
굴레방다리(아현역) 지역에 조선족이 많이 살아서일 수도 있겠고 굴레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작용했을 것도 같다.

무대는 중앙에 거실, 좌측에 침실, 우측에 부엌으로 공간이 구획되어 있고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실로 설정되어 있다.
대식이 카세트의 재생버튼을 눌러서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면 김씨 3부자의 연극은 어김없이 시작되어야 한다.
대식은 본인 역을 하고 두 아들 한철과 두철은 본인들 역 외에 대식의 주변인물 여섯 명의 멀티역을 겸하여 연기한다.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연극은 <크리스토퍼 논란클럽>을 보았을 때
극단명처럼 몸의 움직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 연극에서도 두 명의 배우가 숨가쁘게 여덟 명의 배역을 연기하고 있으므로
역시 이 극단의 작품은 인체의 움직임을 중시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대식은 유산을 놓고 다투다가 그의 동생 대환과 제수씨를 살해했고 곧바로 한국으로 도망쳤다.
대식의 아내는 얼마 후 어린 두 아들 한철과 두철을 남편이 있는 한국으로 보내는데
이것이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 되고 만다.
대식은 죄책감 때문인지 살인이 있었던 그날의 일들을 스스로 각색하고 왜곡하여 연극을 한다.
연기상 트로피를 애지중지하는 걸로 보아 전직 배우였거나 최소한 배우를 꿈꾸었던 것 같다.
대식은 두 아들을 때려가면서까지 그의 의도대로 연기를 시킨다.
3부자가 머무는 지하실 셋방은 두철이 마트에 식료품을 사러 다녀오는 때를 제외하고는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되고 고립된 세계다.
매일같이 아니 하루에도 수도 없이 반복되는 연극. 그것이 이 가족의 일상이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와도 같은 이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이가 있었으니
마트에 오는 두철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고 마트 계산원 김리였다.



연극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외부자 김리에 의하여 매일 반복되던 삶이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했음에도
주인공이 끝내 선택하는 결말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암담한 길이어서
껍질을 깨고 나온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정신없이 움직여야만 하는 한철과 두철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는 연극이다.





연극 굴레방다리의 소극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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