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개봉했던 일본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원작소설을 읽었다.
한글판 제목은 한자를 풀이하여 <매일 매일 좋은 날>로 되어 있다.
알에이치코리아(RHK)에서 발간했고 이유라가 번역했다.
원작자는 여성 에세이스트 모리시타 노리코(森下典子. 1956-)이고
원작 수필 <日日是好日-「お茶」が教えてくれた15のしあわせ->는 2002년에 발매되었다.
원작의 부제는 '차가 가르쳐 준 15개의 행복'이다.
日日是好日의 일본어 독음은 にちにちこれこうにち(니치니치코레코우니치)라고 읽는 것이 원래 맞다고 하나
にちにちこれこうじつ(니치니치코레코우지츠)라고도 일반적으로 읽히고 있고
작가가 다도 교실에서 선생님께 들은 발음도 후자 쪽이라고 하여
원서에 쓰인 日日是好日의 일본어 독음이나 영화 제목은 '니치니치코레코우지츠'라고 읽는 것이 맞다.
日日是好日은 이 밖에도 ひびこれこうじつ(히비코레코우지츠), ひびこれこうにち(히비코레코우니치),
ひびこれよきひ(히비코레요키히)라고 읽히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한자를 읽는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한자 읽는 법은 일본어 학습의 애로점이기도 하다.

책의 분량은 약 290페이지이나 일본과 다도를 연상케 하는 사진이 다수 삽입되어 있어서 술술 읽히는 편이다.
서두의 번역자 첨언에 의하면 한글판에 게재된 사진들은 원서에는 없는 것이라고 한다.
사진이 첨가된 덕분에 일본풍의 분위기가 보다 잘 살아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의 말미에는 다도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도구들이 사진과 함께 설명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을 읽기 전에 책 뒤쪽의 다기 사진과 명칭을 먼저 훑어보는 쪽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실(茶室)의 토코노마(床の間).
* 토코노마는 방의 한쪽 구석에 마련해 놓은 장식용 공간이다.
방바닥보다 높게 단을 쌓고 공간 안을 족자와 화분 등으로 꾸민다.
물을 끓이고 차를 타고 마시는 일련의 행위를 지칭하는 다도(茶道)는
원래 일본에서 차토우(茶湯) 또는 차노유(茶の湯)라고 불렸으나
에도시대 초기에는 茶道라는 명칭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茶道는 일본어로 사도우(さどう) 또는 차도우(ちゃどう)라고 읽는다.
본문은 15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작가가 20세 때 이웃집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다도교실에서 처음 다도를 배우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이 책이 발간된 해인 2002년까지 25년간 꾸준히 다도교실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된
세상의 이치와 삶의 방식 그리고 개인사 등의 이야기가 차분하고 담담하게 쓰여져 있다.
다실의 토코노마에 걸려 있는 족자의 글귀나 화분에 장식된 야생화
그리고 차와 함께 즐기는 화과자 등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잘 드러나고 있어서
마치 다실 안에서 작가와 함께 차를 즐기고 있는 듯한 운치를 느낄 수 있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야생화 중 잎사귀의 중앙에 꽃이 핀다는 하나이카다(花筏. 화벌)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잎 위에 벌레가 앉아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지나칠 수도 있는 꽃이었다.
꽃뗏목이라는 이름처럼 잎사귀라는 뗏목 위에 꽃이 올라타고 있는 듯한 독특한 생김새가 개성 넘쳤다.
소소하나마 이처럼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다사의 코스요리인 카이세키(懐石)의 순서.
물론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다도에 관하여 전혀 문외한이었던 독자에게 다도란 이런 것이다 하고 윤곽을 느끼게 해 주는 점이다.
다도의 집대성이라고 해도 좋을 다사(茶事)에 관한 에피소드를 정리한 장이 특히 그랬다.
다사는 카이세키 요리가 나오고 한나절이 소요되는 행사였다.
차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먼저 식사를 하면서 배를 채우고 술을 곁들여서 흥을 돋운다.
차가 나오기 전에 등장하는 식사만 하더라도 밥과 국이 나온 후 익힌 요리, 튀긴 요리가 순서대로 등장했고
코스의 중간에는 다실을 나와서 휴식을 취하는 인터미션까지 있었다.
다도라고 하면 단순히 차를 마시는 예법인 줄만 알았으나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도란 차를 만드는 순서는 물론이고
차를 내는 주인과 차를 마시는 손님이 나누는 대화를 비롯하여
다실 안에 놓인 다양한 다기와 토코노마의 장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다도는 종합예술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일본 중요문화재 쿠로오리베차완(黒織部茶碗) 후유가레(冬枯. 겨울고목).
다다미 한 장 위를 여섯 걸음으로 걸어야 하고 다기는 の자 형태로 닦아야 하고
여름과 겨울에 사용하는 다기와 작법은 전혀 다르다는 둥
일본 다도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언급되어
다도에 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편 다도라는 예술의 깊이감도 느껴져서
괜히 道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구나 하고 수긍이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차를 즐기는 행사인 다회(茶会)를 소개한 장에서는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오리베차완을 진득하면서도 진지하게 관상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취미를 즐기는 기쁨에 관하여 공감해볼 수 있었다.

십이지신의 열 두 동물은 그 해에 해당하는 동물의 그림이 그려진 다기가
그 해를 시작하는 차 모임과 그 해를 마감하는 차 모임에서 사용된다고 한다.
올해는 기해년이니까 돼지 그림이 수놓인 다기가 차 모임의 처음과 끝을 장식할 것이다.
이처럼 다도와 관련된 다양한 상식을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화려하고 형형색색으로 알록달록한 화과자처럼 일본이란 나라에는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다도는 얼핏 생각하기에는 담백한 차의 맛처럼 수수하고 담담할 것 같지만
찻잔의 겉면뿐 아니라 안쪽에까지 화사하게 그림을 새겨넣은 것이라든가
매주 토코노마를 장식하는 족자와 꽃을 시기에 맞추어 바꾼다든가
낭만적이면서도 화려한 기운이 깃들어 있는 예술이었다.
그래서 작가 또한 다도를 통하여 인생의 깊이와 이치를 깨닫게 된 것 아닌가 싶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영화에서는 원작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놓았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일본의 전통 다도를 직접 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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