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연극 그을린 사랑 2018/12/18 07:46 by 오오카미




낮에도 영하를 맴돌았던 지지난 일요일에 올림픽공원 K-아트홀에서 연극 그을린 사랑을 관람했다.

원작은 레바논 출생의 캐나다 극작가 와이디 무아와드(Wajdi Mouawad. 1968-)가 2003년에 발표한 
희곡 Incendies다. 원작은 프랑스어로 쓰여졌고 제목 Incendies는 화염(Fire)이란 뜻이다.
레바논 내전(1975-1990)이 발발하자 작가가 8살 때 그의 가족은 고국을 떠나 프랑스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5년을 거주한 후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했다.
희곡의 주인공 노래하는 여자는 소하 베차라(Souha Bechara. 1967-)라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소하는 레바논 출생의 여성 레지스탕스다. 
레바논 공산당에 가입한 그녀는 적국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은 남레바논군(South Lebanon Army)의 리더
안토이네 라하드(Antoine Lahad. 1927-2015)의 암살을 시도했다가 체포되었다.
에어로빅 강사를 구한다는 라하드 부인의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하여 집안에 잠입한
소하는 라하드에게 두 발의 총알을 쏘아 중상을 입혔으나 암살에는 실패했고
10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친 후 1998년에 풀려났다.
작가는 이 레지스탕스 여인의 삶에 가족이라는 요소를 추가하여
전쟁에 의해 파괴된 여인의 삶과 그녀의 가족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2010년에 캐나다 영화감독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1967-)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됐고
여주인공 나왈 역을 연기한 루브나 아자발(Lubna Azabal. 1973-)의 연기가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연극 그을린 사랑은 마크923 제작, 최준호 번역, 신유청 연출이고
공연시간은 1부 85분, 인터미션 15분, 2부 110분이다.
인터미션을 포함하여 3시간 30분의 긴 공연이니 진득하게 작품과 대면할 수 있다.

올림픽공원 장미광장(장미정원)에 인접한 K-아트홀은 태권도 등 한국문화 전문공연장으로 2012년에 개관했다.
이곳에서 연극을 관람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연극과 뮤지컬 공연장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연극 그을린 사랑을 계기로 앞으로는 연극과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유치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공연장은 무대 뒷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커튼을 젖히면 장미광장이 곧바로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까지 다녀본 실내공연장 중 공연장의 벽면이 유리로 되어 있었던 곳은 코엑스아트홀이 유일했다.
그러나 코엑스아트홀은 유리로 되어 있는 왼쪽 벽면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코엑스 내부의 복도였던 것에 반하여
K-아트홀은 실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특색이 있는 공연장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활짝 열려 있던 커튼은 1부가 시작된 후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의 독백이 끝나고 두 남매가 참석하여 유언장이 공개되는 장면에서야 닫혔다.
2부에서는 감추어졌던 아픈 진실이 밝혀지는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커튼을 개방하여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의 충격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2부 상연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어둑해졌을 때라서 공연장의 커튼이 열리고 조명을 밝힌 무대가 훤히 드러나니
장미광장을 지나던 시민들이 신기한 듯이 연극이 진행되고 있는 건물 안을 쳐다보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인터미션 때에는 커튼이 닫힌 채로 있었는데 공연장의 특성을 살릴 겸
인터미션 때에도 커튼을 개방하는 편이 관객에게 공연장의 잔상을 보다 오랫동안 남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공연 시작 바로 전에 입장해서 커튼이 활짝 열려 있는 상태의 공연장 모습을 찍지 못한 점이 아쉬울 정도로
K-아트홀 공연장의 유리벽은 강한 임팩트를 주었다.



시몽 역 이원석 배우와 잔느 역 나혜진 배우.
작품 속의 현재는 2002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1980년생이니 22세다.

르벨 변호사의 독백으로 연극은 막을 올린다.
르벨은 아직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잔느와 시몽 남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그가 변호사 사무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을 언급할 때 공연장의 유리벽 커튼이 활짝 젖혀져 있는 상태여서
무대가 순간적으로 실외로까지 확장되어 전술했듯이 타 공연장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탁 트인 느낌이 전해졌다.
르벨은 자신의 친구였고 남매의 어머니인 나왈 마르완에 관하여 회상을 시작한다.
오늘 이 자리에 잔느와 시몽이 참석한 것은 나왈의 유언장을 집행하기 위해서다.
나왈은 죽기 전 5년 동안 내내 침묵했다. 그녀의 자식들에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나왈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던 것은 아마도 5년 전 르벨 앞에서 유언장을 작성했을 때일 것이다.
나왈은 유언장에서 얼굴이 바닥을 향한 채 관 없이 매장할 것과 묘비를 세우지 말 것을 당부했다.
자신은 하나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기에 침묵할 것이며
침묵하는 자에게는 묘비를 세울 자격이 없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덧붙였다.
남은 재산은 두 자녀에게 똑같이 분배할 것을 밝혔고
유품으로 숫자 72가 새겨진 셔츠를 딸 잔느에게 빨간 수첩을 아들 시몽에게 남기겠다고 했다.
유언장에서 가장 의아한 내용은 수취인의 주소가 불분명한 두 통의 서신에 관한 것이었다.
한 통은 잔느와 시몽의 아버지 앞으로 쓴 편지였고 다른 한 통은 잔느와 시몽의 남자형제 앞으로 된 것이었다.
나왈은 전자를 딸 잔느에게 후자를 아들 시몽에게 맡기겠다고 했고
두 편지가 각각의 수취인에게 전달되었을 때 변호사에게 맡긴 마지막 편지가 공개될 거라며 글을 끝맺었다.  

유언장의 낭독이 끝나자 시몽은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모친을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
5년 동안 침묵하며 우리들을 무시했던 주제에 그것도 모자라서
죽은 아버지와 있지도 않은 다른 형제를 찾아서 편지를 전해 주라는 유언을 남겼으니
미친 게 틀림없다며 시몽은 길길이 날뛰었으나 대조적으로 잔느는 조용했다.
엄마가 왜 5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는지 늘 그 이유가 궁금했던 잔느는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라도 유언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나왈은 중동의 난민 출생이었다. 잔느는 엄마의 고향으로 향하는 캐나다발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충격적인 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잔느와 시몽은 쌍둥이이지만 대비되는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잔느는 수학과 조교로 이성적인 캐릭터다.
반면에 시몽은 아마추어 복서이고 감성적인 캐릭터다.
1 + 1은 절대로 1.5나 2.5가 될 수 없고 늘 2가 된다고 잔느는 이야기했지만
1 + 1이 1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차리게 되는 쪽은 시몽이었다.
물론 먼저 중동으로 떠나서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아낸 잔느의 결과물이 있었기 때문에
얻어낸 결과이긴 하지만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앞서는 시몽이 형제의 종적을 확인하고 휘청하는 순간
객석의 관객에게도 헤비급 펀치를 맞은 듯한 묵직한 울림이 전해져 왔다.
영화를 먼저 본 관객이라면 반전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충격이 덜했을지 모르겠으나
원작소설과 영화를 접하지 않고서 연극을 접했기에 1 + 1 = 1의 의미가 밝혀졌을 때의 충격은 적잖은 것이었다.



사우다 역 송희정 배우.

나왈은 어린 나이에 사랑에 빠져서 출산을 하지만 아이를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한 채
양동이에 담겨진 아이가 고아원에 보내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혼인도 하지 않은 소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가문의 수치였기 때문이다.
아이를 지키지 못해 괴로워하는 손녀에게 할머니는 평생의 지침이 되는 가르침을 전한다.
세대를 넘어서 반복되는 인습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글을 읽고 쓰는 법과 말하는 법 생각하는 법을 배우라고 그래서 세상을 바꾸라고 타이른다.
고향에서 쫓겨난 나왈은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글을 배웠고 3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왔다.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덩그러니 놓여 있던 묘비에 나왈은 할머니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이후 나왈은 자신의 아이를 되찾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마을 친구 사우다는 이 여정에 동참하기를 자원했다.
사우다는 나왈에게 글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각 지역을 돌면서 나왈은 글을 썼고 사우다는 노래를 불렀다.
이들의 글과 노래에는 사람들을 계몽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언젠가 중동에서 자행되는 명예살인에 관한 뉴스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딸 또는 며느리가 가족에 의해서 살해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이 혼자서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뉴스도 보도되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성에 대한 인권 차별이었다.
종교와 관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만든다.

이 연극에서는 민병대와 난민 간의 끝없는 반목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다.
기독교 민병대가 이슬람교 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연극을 보고 돌아와서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에서는 난민들이 탄 버스가 민병대의 집중사격에 의해 벌집이 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그려졌고
그 중에서도 나왈에 의해 유일하게 구조되었던 어린 소녀가 엄마를 부르며 버스로 되돌아가다가
민병대원의 총에 쓰러지는 장면이 충격적으로 묘사되었다.
연극에서는 난민촌을 습격한 민병대원이 세 아들이 있는 집에 들어가 아이들을 나란히 벽에 세워놓은 후
애들 엄마에게 살리고 싶은 아이 하나를 고르라고 선택을 강요한 후
다른 두 아이를 어미가 보고 있는 앞에서 사살하는 장면이
숨어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던 사우다의 고백을 통해서 밝혀진다.



나왈 역 이주영 배우.

이주영 배우는 이 연극에서 가장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감옥에 수감된 난민들을 고문했던 기술자를 심판하는 법정에
나왈이 증인으로 출석하여 담담하게 진술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마음 속에서 이글거리는 분노의 감정을 이성의 힘으로 억누르면서
눈앞에 앉아 있는 죄인의 죄상을 조목조목 열거하여 단호하고 패기 있는 여인상을 그려냈다.

2부 중반부에는 슈퍼트램프(Supertramp)의 논리적인 노래(The Logical Song. 1979)가 흥겹게 흐르는 가운데
스나이퍼가 그의 총에 최후를 맞이하는 희생자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으며 쾌감을 느끼는 엽기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이 스나이퍼의 이름은 니하드다.
난민 아이들이 모여 있던 고아원이 민병대의 폭격을 받았을 때 이슬람 무장세력이 아이들을 거두어서 소년병으로 키웠다.
니하드는 민병대의 스나이퍼들을 사살하며 이름을 떨쳤으나 결국 민병대에 붙잡혔다.
민병대는 적의 스나이퍼를 암살하는 대신 세뇌하고 교육시켜서 적의 포로를 고문하는 기술자로 만들어 버린다.
적대하는 두 세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괴물로 자라난 니하드라는 캐릭터 역시 어찌 보면 역사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작년 댄서하우스 공연 때 백석광 배우의 무대를 보며 실망한 적이 있었으나
이 연극에서 그는 광기에 물든 괴물 니하드를 맛깔나게 연기하여 그에 대하여 재평가하게끔 만들었다.
니하드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3층 높이에 설치되어 있는 공중통로에서 진행되어 유리창 벽면 만큼이나 신선미가 있었다.
공연장 천장의 정비 등을 위해서 설치되어 있는 정비용 통로인 것 같았는데
관객의 머리 위에서 연기가 펼쳐지니 색다른 느낌이었고 유아독존적인 니하드의 캐릭터와도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반복되는 인습의 굴레와 되풀이되는 복수의 고리를 깨뜨리기 위한다면 누군가는 다른 행동을 해야만 한다.
나왈은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배움의 길을 선택했고
복수의 고리를 깨기 위해서 붙잡힐 것을 각오하고 적의 본거지에 위장잠입하여 리더를 암살했다.
적군의 대장과 자신 단 두 명의 희생으로 피아간의 오랜 반목을 끝내고 싶다는 그녀 나름의 결단이었다.
난민들에게 전설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위대한 선택을 했던 이 여인이 말년에 왜 침묵해야만 했는지
그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그녀가 선택했던 침묵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관객의 어깨에도 전해진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침묵이었을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내린 벌인 것 같긴 한데 침묵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노래하는 여자와 관련되지 않을까 싶었다.
민병대 리더를 암살한 후 수감된 나왈은 감옥에서 다른 죄수들이 고문을 받을 때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노래하는 여자였다.
나왈은 친구 사우다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고 노래를 잘했던 사우다를 통하여 노래가 가진 힘을 알게 됐을 것이다.
나왈이 기나긴 수감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에는 노래의 힘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그토록 소중했던 노래를 금하고 나아가 말하기를 금했던 것은 아닐까.

연극 그을린 사랑은 한 여인의 굴곡진 삶을 반추하며 가혹한 운명에 맞서는 용기
그리고 한없는 모성애를 만나볼 수 있는 묵직한 작품이었다.




연극 그을린 사랑 커튼콜.

르벨 및 말락 역 박기원, 시몽 및 와합 역 이원석, 잔느 역 나혜진, 나왈 역 이주영,
사우다 등 역 송희정, 앙투안 등 역 이지훈, 샴세인 등 역 하준호, 니하드 역 백석광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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