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연극 말피 2018/09/19 14:00 by 오오카미




지난주에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3관에서 연극 말피를 관람했다.
영국의 극작가 존 웹스터(John Webster. 1580-1634)의 대표작 말피 공작부인(The Duchess of Malfi)이 원작이다.
1614년에 초연된 말피 공작부인은 자코비안(Jacobean) 비극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제임스 1세(James I)의 재위기간인 1603년부터 1625년까지를 일컫는 자코비안 시대에
복수를 소재로 하는 비극이 한창 유행하였기에 이 시대의 복수극을 가리켜 자코비안 비극이라고 한다.



연극 말피는 극단 적 제작, 마정화 번역, 이곤 연출이고 공연시간은 2시간이다.
말피 공작부인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이 국내에서 상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작가
존 웹스터의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하얀 악마(The White Devil)와 이 연극의 원작인 말피 공작부인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토록 유명한 작품을 이제까지 한국에서 무대에 올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의외로 느껴질 정도다.

연극 말피에는 김주완, 백익남, 민정희, 안병식, 안병찬 5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이들이 맡은 극중 캐릭터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공작부인(The Duchess) - 말피(Malfi) 공국의 통치자. 젊은 과부이고 두 명의 남동생이 있다.
안토니오(Antonio) - 공작부인의 집사. 공작부인과 사랑에 빠져서 신분차를 뛰어넘는 사랑을 한다.
페르디낭(Ferdinand) - 칼라브리아(Calabria) 공국의 공작. 공작부인의 쌍둥이 남동생이고 누나에게 욕정을 품는다.
추기경(The Cardinal) - 로마 카톨릭 교회의 추기경. 공작부인의 남동생이고 누나의 재물을 탐낸다.
보솔라(Bosola) - 페르디낭과 추기경의 스파이. 공작부인에게 종사하는 척하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보고한다.
줄리아(Julia) - 추기경의 정부(情婦). 추기경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보솔라에게 독살당한다.

줄리아 역은 공작부인 역의 민정희 배우가 함께 맡아서 연기했다.



원작 말피 공작부인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남편과 사별한 공작부인의 두 오라버니는 각자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그녀의 결혼에 반대한다. 그들이 공작부인의 결혼에 반대하는 이유는 페르디난드는 쌍둥이 누이를 향해 갖는 근친상간의 추악한 욕망 때문이고, 추기경은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탐욕 때문이다. 하지만 공작부인은 자신의 집사장인 안토니오와 사랑에 빠져 그와 비밀 결혼을 감행하고 임신까지 한다.

페르디난드는 공작부인에게 스파이인 보솔라를 심어두었는데 공작부인은 그가 스파이인줄 모르고 그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 놓는다. 그녀의 결혼을 둘러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페르디난드는 공작부인을 위협한다. 이에 공작부인은 안토니오와 도망갈 계획을 짠다. 계획을 알게 된 페르디난드는 두 사람을 잡을 것을 명령하고 군대를 보낸다. 결국 안토니오와 큰아들을 제외하곤 모조리 붙잡혀 말피로 되돌아오고 페르디난드는 잡혀온 자들을 다 처형한다. 공작부인은 심하게 고문을 당하고 자식들과 함께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이에 부당함을 느낀 보솔라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 안토니오에게 신변이 위험함을 알려준다.

한편 페르디난드의 처형에 공모한 추기경은 그 사실을 애인인 줄리아에게 털어놓고 그녀가 그 사실을 발설할까 두려워 그녀를 독살한다. 보솔라는 추기경이 자신을 죽이려함을 알고 예배당에 그를 죽이러 가지만 실수로 추기경과 화해하러 온 안토니오를 죽이고 만다. 결국 보솔라는 추기경을 죽이고 페르디난드와 결투를 하다 둘 다 죽는다. 극이 끝날 때엔 안토니오의 큰 아들만이 살아남아 말피 가문의 상속자가 된다.

시놉시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말피 공작부인 [The Duchess of Malfi]

원작의 시놉시스와 비교하여 연극 말피에서 바뀐 점을 몇 가지 짚어보겠다.
원작에선 말피가 막내로 설정되어 있으나 연극에선 장녀로 설정되어 있다.
즉 연극 말피에선 페르디낭이 쌍둥이 동생, 추기경이 막내동생으로 출연한다.
그리고 큰아들은 연극에서는 따로 등장하지 않는다.

원작 말피 공작부인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주인공인 공작부인의 모델이 되는 실존인물은
아말피(Amalfi) 공국의 공작부인이었던 죠반나 다라고나(Giovanna d'Aragona. 1478–1510)다.
그녀의 삶은 원작에서 다룬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쟁에서 남편이 전사하자 아직 갓난아기였던 아들이 아말피 공국의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죠반나는 자연스레 섭정이 되어 12년간 공국을 다스렸다.
이 기간 동안에 그녀는 안토니오라는 이름의 집사와 비밀리에 결혼했고 둘 사이에는 두 명의 자녀가 생겼다.
귀족이 하인과 결혼하는 것이 불명예로 여겨졌기 때문에
죠반나는 안토니오와의 결혼 사실을 가족들에게 비밀로 부친 것이었으나
셋째를 임신하고 나서는 더 이상 가족들에게 숨기는 것이 힘들 거라고 생각하여
안토니오와의 사이에서 난 두 아이를 데리고 아말피를 떠나서
남편이 먼저 가 있었던 안코나(Ancona)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추기경인 오빠의 입김에 의해서 죠반나 가족은 안코나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새로 정착할 곳을 찾아 이동하던 도중에 가문에서 보낸 수행원들에게 붙잡혀서 아말피로 끌려가게 된다.
안토니오는 간신히 탈출하였으나 죠반나와 세 아이는 아말피에 도착한 후 교수형에 처해졌고
안토니오 또한 이듬해에 다라고나 가문에서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되었다고 전해진다.



연극 말피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오르는 고전이라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연극을 소개하는 글을 보았을 때에는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라는 문구를 통하여
가문의 명예보다 사랑을 선택한 여인의 순결하면서도 고귀한 러브스토리를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작품이어서 적잖이 실망감이 들었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공작부인이 결코 순결하고 순수한 여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과부의 재가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기간은 지켜야 하겠으나 그 후에는 재가를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적하고 싶은 문제점은 근친상간이다.
공작부인이 그녀의 남동생인 페르디낭과 추기경과 정을 통하는 장면이 영상을 통하여 묘사된다.
여성이 억압된 성(性)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성생활을 추구한다는 여성해방적 차원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남매 간의 근친상간은 아무래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게다가 원작에서는 공작부인이 막내 여동생이지만 연극에서는 장녀로 설정되었다는 점에서
오빠들에게 강요당했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극 중의 영상을 보면 공작부인과 남동생 서로가 몸짓으로 나누는 행위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주인공은 순결과 고귀가 아니라 음란과 방탕의 여인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었다.
게다가 공작부인을 연기한 민정희 배우는 억양과 목소리톤에서부터
기가 드센 여자의 이미지가 전해져서 착하고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천사 같은 여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섯 명의 등장인물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 있게 느껴진 캐릭터는 보솔라다.
보솔라는 사냥개 같은 캐릭터다.
주인의 명령을 받고 먹이를 사냥하지만 사냥이 끝난 후에는 토사구팽되어 버리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보솔라는 페르디낭의 부하였다.
주인을 따라서 전쟁터에 나갔지만 포로가 되어 노예선에서 노예생활을 몇 년간 하고서 돌아왔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보솔라에게 돌아온 것은 합당한 포상이 아니라 스파이짓을 하라는 새로운 명령이었다.
공작부인이 다스리는 말피 공국에서 말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게 된 보솔라는 궁전에 드나들며
공작부인의 행동을 주시했고 페르디낭과 추기경에게 일일이 보고해야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추기경의 애인이었던 줄리아에게 보솔라는 남몰래 연정을 느끼고 있었으나
줄리아가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자 비밀이 새어나갈 것을 두려워한 추기경은 줄리아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보솔라는 추기경의 명령을 받고서 사랑하는 여인을 독살해야만 했다.
결국에는 페르디낭의 명에 의해 공작부인을 교살하는 악역까지 보솔라는 떠맡게 되나
공작부인이 숨을 거둔 후 보솔라는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이 장면에서 내뱉는 보솔라의 대사를 이 연극의 명대사로 추천하고 싶다.

"유럽의 재화를 다 준다 하더라도 내 양심의 평화와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보솔라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자 그가 죄를 짓게 만든 당사자인 추기경과 페르디낭을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어두운 밤에 교회를 찾아간 보솔라는 추기경으로 보이는 인물을 향해서 칼을 휘두른다.
그러나 보솔라의 칼을 맞은 것은 공작부인과 아이들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 화해를 요청하러 추기경을 찾아온 안토니오였다. 
보솔라는 공작부인 가족과 자신에게 가해진 가혹한 운명을 저주하며 다시 추기경을 찾아나선다.
보솔라가 목숨을 살려달라고 구걸하는 추기경을 향해 칼을 내지르며 던지는 대사 또한 잊혀지지 않는다.

"넌 너의 누나를 죽였을 때 정의의 여신에게서 저울을 빼앗고 칼만 남겨둔 거야."

페르디낭마저 죽인 보솔라가 복수의 마무리는
이 모든 죄업을 손수 행했던 그 자신의 죽음임을 깨닫는 것으로 연극은 막을 내린다.
복수를 소재로 다룬 많은 작품에서 복수가 끝난 후의 허무함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연극 말피 또한 그 전철을 밟고 있다.
연극을 보고 난 후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공작부인이 아니라 보솔라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솔라라는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살려낸 백익남 배우의 농익은 연기가 그만큼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연극 말피는 당당한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의 여권신장 추세에 어울리는 작품일 거라고 예상하였으나
실제로는 두 남동생에게 번롱당하는 여주인공의 비극적인 인생이 그려지고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억압당하고 수난당하는 여성을 다룬 작품이었다.
목에 밧줄이 걸린 상태에서도 "그래도 난 말피의 공작부인이다(I am Duchess of Malfi still)."라고 말하는
공작부인의 대사가 이 연극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라고 하지만
솔직히 이 장면에서 여주인공의 굴하지 않는 강인함이나 곧은 기개가 크게 느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공작부인의 캐릭터를 보완하여 다시 무대에서 만나보고 싶은 연극 말피다.





연극 말피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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