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하순에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연극 당신이 그리운 풍경 속으로 멀어져 간다는 것은을 관람했다.
이언시 스튜디오 제작, 김지나 작/연출이고 공연시간은 90분이고 여섯 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27년 전 아이를 미국으로 입양 보내야 했던 미혼모 한나 역에 이주영,
러시아인 남편을 잃고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고려인 연화 역에 이은주,
캐나다 이민을 꿈꾸며 영어를 배우는 계약직 청소원 형선 역에 정연주,
생모를 찾으러 7년 전 한국에 온 해외입양아 스티브(순주) 역에 강병구,
아내를 사랑했고 야생마처럼 용맹했던 러시아인 세르게이 역에 채귀웅,
한나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기 전의 미혼모 춘희 역에 박채린 배우였다.

작가는 이주(移住)를 주제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태어나 살던 고향을 떠나서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지역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려인 여인 연화다.
러시아인 남편 세르게이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지만 부부의 코리안드림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고로 세르게이가 죽은 후에도 연화는 한국에 남아서 아이를 의지하며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고단한 삶을 살아나간다.
연화의 직장 동료인 형선은 지하철 계약직 청소원으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흙수저로 태어난 이상 한국에선 가난이 대물림될 뿐이라고 생각한 형선은 캐나다로의 이주를 꿈꾸고 있다.
그녀가 병아리 감별사 자격증에 도전한 것도 캐나다 이민을 위해서다.
미국으로 입양된 스티브는 양부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그 가정에 먼저 입양되었던 같은 한국인 양녀가 가정폭력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것을 목격한 후
뿌리를 찾아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비슷한 처지의 해외입양아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 힘이 되어주고 있다.
한나는 이전에는 춘희라는 이름이었다. 미혼모 센터에 있을 때 요한나라는 세례명을 받고서 개명했다.
미국으로 입양을 보냈던 아들이 조라는 이름의 청년이 되어 27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생모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스티브로부터 전해들었으나 차마 아들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망설이고 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이들에겐 이러한 논제는 더욱 가슴에 와닿는 것이리라.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이주를 했거나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그들은 왜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을까.
현실에 만족할 수 없었거나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삶을 누리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굳이 거처를 옮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고난과 시련, 좌절과 불안이 함께했던 어제까지의 과거를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연화가 그러했듯이
이제까지의 모든 것을 버리고 삶의 터전조차 옮길 수 있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대를 중앙에 놓고 네 면을 모두 객석으로 활용하는 구조라서 개인적으론 아쉬웠다.
맞은편 객석이 앵글에 들어올 수밖에 없어서 커튼콜 찍기에 불편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러시아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했다.
세르게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대사가 러시아어였고 벽면에 한글 자막이 송출되었다.
객석의 관객들은 러시아어를 모르는 이상 자막에 의존하지 않고는
배우의 대사를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답답했을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와 해외입양아가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낯선 언어로 인하여
타국에서 겪게 되는 삶의 이질감을 관객에게도 조금이나마 느껴보게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연극이 끝난 후 무대 가운데의 테이블 위에는 여섯 켤레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앞으로 주인공들이 걸어가야 할 머나먼 여정을 의미하는 미장센일 수도 있겠고
신발로 상징되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주인공들의 영혼을 암시하는 연출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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