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소설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2018/08/03 17:30 by 오오카미



쿄토(京都)를 배경으로 글을 쓰는 걸로 유명한 작가 모리미 토미히코(森見登美彦. 1979-)의 소설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聖なる怠け者の冒険. 2013)을 읽었다.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지난 6월 하순에 발간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몽환적이고 메르헨(동화)적인 유쾌한 소설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물론 쿄토이고 시간적 배경은 7월 16일 토요일이다.
구체적인 연도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소설이 끝난 후 작가의 말 페이지에서
7월 초에 작가의 말을 쓰고 있다고 밝힌 점과 
소설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이 2013년 5월인 것으로 미루어볼 때
소설 속의 시간적 배경은 7월 16일이 토요일이었던 2011년으로 추정된다.

7월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쿄토의 기온축제(祇園祭)는 일본의 3대 축제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축제다.
7월 17일에는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야마호코준코(山鉾巡行. 가마행렬)가 쿄토 도심에서 펼쳐진다.
수십 또는 수백 명의 사람이 달라붙어야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가마들이 도심을 행진하는 것이다.

*山鉾는 야마보코라고 읽기도 한다.



가마행렬 행사일의 앞으로 3일, 즉 7월 14일부터 16일까지는
요이야마(宵山)라고 하여 성대한 전야제가 벌어진다.
거리 곳곳에 거대한 야마호코가 전시되어 밤새 등을 밝히고 도로는 차량을 통제하여 보행자천국이 되고
다양한 음식과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노점이 들어서서 시민과 여행자들에게 축제의 향연을 제공한다.
소설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은 7월 16일 요이야마의 아침부터 시작하여 일요일이 오기 전까지
하룻 동안 때로는 숨가쁘게 때로는 나른하게 진행되는 꿈 같은 이야기들을 그려나간다.



소설의 주인공은 천하의 게으름뱅이이고 모 연구소의 사원인 코와다(小和田) 군으로 일단 설정되어 있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자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인물은 단연 폼포코(ぽんぽこ) 가면이다.
그는 너구리 가면을 얼굴에 쓰고 검은 망토를 걸쳐서 정체를 감춘 채 선행을 행하는 의인이다.

스튜디오지브리(スタジオジブリ)의 타카하타 이사오(高畑勲. 1935-2018)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戦ぽんぽこ. 1994)을 알고 있다면
폼포코라는 단어가 그리 생소하게 느껴지진 않을 거다.
너구리를 의미하는 일본어로는 타누키(狸)라는 단어가 따로 있지만 
국어에서도 동물의 울음소리 같은 의성어를 이용하여 
고양이를 냐옹이, 강아지를 멍멍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처럼 
일본어에서도 너구리를 타누키 대신 폼포코라는 의성어로 대체하여 부르기도 한다. 
폼포코는 울음소리는 아니고 북을 치거나 배를 두드릴 때 나는 '둥둥', '팡팡' 같은 소리를 의미하는데
일본의 전설이나 민화 등에서 볼록한 배를 하고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는 너구리가
그 크고 푸짐한 배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 "폼포코"가 곧 너구리를 의미하는 대체어가 된 셈이다.

*올해 봄에 타계한 타카하타 이사오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1941-)와 함께 스튜지오지브리를 이끈 쌍두마차다.
그는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후지TV의 애니메이션 세계명작극장(世界名作劇場) 중
'엄마 찾아 삼만리(母をたずねて三千里. 1976)'와 빨강머리 앤(赤毛のアン. 1979)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쿄토에 애착을 갖고 있는 작가가 쿄토를 배경으로 글을 쓰는 만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명은 대부분 실재한다.
소설 속에서 폼포코 가면의 발원지로 설정되어 있는 야나기코지(柳小路)의 하치베묘진(八兵衛明神) 또한 실존한다.
다양한 신을 모시는 일본의 민속신앙 신도(神道)에는
토쿄의 메이지진구(明治神宮)나 이 소설에서도 언급되는 수천 개의 토리이로 유명한
쿄토의 후시미이나리타이샤(伏見稲荷大社)처럼
도시를 대표하는 유명 관광지가 될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한 규모의 신사도 존재하지만
마을 거리의 골목 어딘가에 조그만 불상이나 석상을 놓아두고 예를 갖추는 아주 조그마한 신사 또한 많이 존재한다.
하치베묘진 역시 그렇다. 주택가 골목에 위치하고 있고 성인 한 명이 지날 수 있는 대문만한 크기의 작은 사당이다.
너구리를 신으로 모시는 조그마한 사당 내에는 너구리 석상이 여덟 마리 놓여져 있다.



일본의 슈퍼마켓 체인점 이온(Aeon)이 잠깐 언급되는 장면이 있다.
일본의 대도시 내에서는 국내의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국내에서와 같은 대규모의 대형마트는 도심 외곽으로 나가야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빅카메라, 돈키호테 등 가전제품이나 잡화를 주로 판매하는 대형 전문점에서
술과 식품 등을 판매하기도 하여 마트 개념을 대체하기도 하지만.



일본 도심에도 포인트카드를 통합하여 사용할 수 있는 슈퍼마켓 체인점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대형마트와는 규모면에서 차이가 크다.
사진은 십여 년 전 워킹홀리데이비자로 토쿄에 거주했을 때 애용했던
피코크 아자부주반점(ピーコックストア 麻布十番店)의 사진.
현재는 앞서 언급했던 이온그룹에 병합되었다고 한다.



모리미 토미히코 작가의 소설은 쿄토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쿄토를 여행해 본 독자나 쿄토를 애정하는 독자에게는 더욱 큰 감흥으로 다가온다.
사진은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난젠지(南禅寺) 수로각(水路閣)의 풍경이다.
쿄토 도심의 서북쪽에 위치한 아라시야마(嵐山)는 산기슭에 위치한 경치 좋은 관광지다.
작년에 개봉한 극장판 명탐정 코난 21기 진홍의 연가에서 쿠라키 마이(倉木麻衣)가 부른
주제가 제목이기도 한 토게츠쿄(渡月橋)가 위치한 지역이기도 하고
난젠지 주변의 대나무숲(竹林. 치쿠린)이 고즈넉하면서도 그윽한 풍경을 자아내는 너무나도 멋진 곳이다.
일본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을 저장해 놓았던 2테라바이트 하드디스크가 인식불능이 되어
난젠지와 수로각, 토게츠쿄를 직접 찍은 사진을 게재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소설 속에는 그 밖에도 다양한 장소들이 언급된다.
건물 외벽에 커다란 게 모형이 걸려 있는 카니도라쿠(かに道楽. 게도락) 건물은
오사카의 도톤보리(道頓堀) 본점이 유명하지만 소설에서는 게도락 쿄토 본점이 언급되고 있고
1916년에 개업하여 창업 100주년을 넘은
레스토랑 키쿠스이(レストラン菊水)가 주요인물들의 만남의 장소로 등장하기도 한다.



오하라(大原) 산젠인(三千院)의 이끼가 낀 동자보살(わらべ地蔵)이 등장하는 대목을 읽고서는
쿄토 여행 때 들러보지 못한 곳이라서 언젠가 다시 쿄토를 여행하게 된다면 꼭 들러봐야지 하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천 년의 고도 쿄토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아이템들에 역가사 깃들어 있다.
주인공 코와다의 회사 3년 선배인 온다(恩田)와 그의 여자친구 모모키(桃木)는 코와다와는 정반대로
주말마다 빼꼼하게 스케줄을 짜서 함께 여행과 모험을 떠나는 혈기왕성한 커플이다.
온다는 학교 선배가 개업한 국수집에 여자친구와 함께 방문하는데
기온축제를 맞이하여 그곳에서는 마침 무간국수(無間蕎麦)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불교의 팔열지옥 중 가장 고통이 심하다는 무간지옥(無間地獄. 아비(阿鼻)지옥이라고도 함)의 이름에서 유래한
무간국수는 무한리필되는 국수를 먹으면서 내가 이기는지 국수가 이기는지 겨루는 도중에
무아지경과 해탈의 경지에 빠지게 된다는 먹방의 새로운 장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기온축제 가마행렬에는 33개의 가마, 야마호코가 등장한다.
야마호코(山鉾)의 종류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전에는 7월 17일에 33개의 가마가 모두 등장하기도 하였으나
2014년부터는 7월 17일에 행해지는 사키마츠리(前祭) 가마행렬에는 22개의 가마가 등장하고
7월 24일에 행해지는 아토마츠리(後祭) 가마행렬에는 11개의 가마가 등장한다.
가마 행렬의 순서는 제비뽑기로 결정하지만 올림픽 개막식에서 그리스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처럼
가장 선두에 서는 나기나타호코(長刀鉾. 언월도 가마)처럼 뽑기에 상관없이 순서가 정해진 가마들도 있다.
가마는 야마(山. 산)와 호코(鉾. 창)로 나뉘는데
야마는 일반적인 가마처럼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손으로 들고 이동하는 방식을 취하지만
호코는 야마보다 더욱 규모가 크고 무게가 몇 톤에 달하기도 하는 큰 가마여서
가마에 네 개의 바퀴가 달려 있고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끌면서 이동을 한다.
야마 위에는 인형 등의 장식이 달려 있는 반면 호코 위에는 사람들이 올라타서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사진은 가마행렬 때 가장 앞에 서는 나기나타호코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쿠로누시야마(黒主山) 가마의 모습이다.
일반적인 가마보다 규모가 큰 가마이지만 호코보다는 덜하여 사람들이 어깨에 이거나 손에 들고서 이동을 한다.
이 가마는 헤이안 시대의 시인 오토모 쿠로누시(大友黒主)가 벚꽃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덴키브란(電気ブラン. 전기브랜디)은 1880년 토쿄 아사쿠사(浅草)에서 개업한
일본 최초의 서양식 술집 카미야바(神谷バー)의 창업주 카미야 덴베(神谷伝兵衛. 1856-1922)가
1885년에 개발한 브랜디 베이스의 칵테일이다.
당시엔 전기가 생소했던 시절이었기에 새로운 것을 표현하고 싶을 때 앞에 전기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어서 사이버나 e를 앞에 붙인 것처럼 말이다.
당시에는 덴키브란의 알코올도수가 45도여서 한 모금 들이키면 전기가 흐르듯
입안이 얼얼할 정도여서 이름과도 잘 어울려서 인기를 얻었다.
덴키브란은 브랜디, 진, 와인, 큐라소, 약초 등을 배합하여 만들어지는데
정확한 재료와 배합 비율은 지금도 비밀이라고 한다. 카미야바는 현재도 성업 중이다.

모리미 작가는 이 술을 좋아하는지 이 작품뿐 아니라 유정천가족(有頂天家族) 등 그의 다른 소설에서도
덴키브란을 위조한 가짜 덴키브란(偽電気ブラン) 속칭 텐구브란(天狗ブラン)으로 불리는 술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도 텐구브란을 유통시키는 조직이 등장하여 사건의 진상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고 있다. 
언젠가 아사쿠사를 다시 여행하게 되면 덴키브란을 한번 마셔봐야 할 것 같다.

소설은 요 몇 년 간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며 선행을 베풀어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의인
폼포코 가면이 누군가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쫓기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려나간다.
휴일엔 방콕하는 게 최고라고 믿고 있는 게으름뱅이 주인공 코와다를 비롯하여
누군가에게 사건의뢰를 받은 역시 게으른 우라모토(浦本) 탐정과
탐정과는 정반대로 부지런하게 주말 아르바이트로 탐정 조수를 겸하는 여대생 타마카와(玉川),
모험을 찾아 방황하는 온다와 모모키 커플, 알파카를 닮은 베일에 쌓인 조직의 실력자 5대(五代目) 등
다양한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흥미진진하게 축제 전야의 토요일이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술집 히비키(響)에서 진행되는 장면이었다.
일본의 서열사회를 엿볼 수 있는 장면 묘사가 기이하면서도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어서
과연 이 기나긴 계단의 가장 위에 군림하는 것은 누구일까 궁금해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고
최상위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을 때엔 과연 메르헨이라고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쿄토 기온축제의 거리를 거니는 동안에 나도 모르게 이상한 세계를 모험하게 되는 듯한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소설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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