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음사에서 출판한 피러 래빗 전집을 읽었다.
양장본(하드커버)이라서 외관부터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동물이 주인공인 그림책의 고전으로 유명한 피터 래빗 시리즈는
영국의 여성작가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1866-1943)에 의해 탄생되었다.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포터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친구가 없었고 어려서부터 다양한 동물을 키우면서 이들을 관찰하고 스케치했다.
그녀는 동물뿐 아니라 버섯 재배와 관찰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1897년에는 학회에 논문을 제출한 적도 있었으나
빅토리아 시대인 당시 영국은 남녀 성차별이 심해서 여성의 논문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여자라는 이유로 논문이 차별을 당하자 포터의 버섯에 대한 흥미가 식어들었고
이후 1902년에 출간한 피터 래빗 이야기(The Tale of Peter Rabbit)가 성공을 거두자
그림책 작가로서 활동하게 된다.

피터 래빗 전집에는 피터 래빗 이야기부터 1930년에 출판한 꼬마 돼지 로빈슨 이야기까지
피터 래빗 시리즈 23권이 출판된 순서대로 실려 있고 미출간된 네 편의 이야기가 그 뒤에 실려있다.
개인적으론 글로스터의 재봉사 이야기와 토드 씨 이야기를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25세 때의 베아트릭스 포터와 그녀가 처음 기른 토끼 벤자민 바운서(Benjamin Bouncer).
포터는 토끼를 키우면서 토끼 그림을 많이 그렸고 이들 그림이 후에 피터 래빗 탄생의 밑거름이 된다.

피터 래빗 전집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그림이었다.
옷을 입고 두 발로 걸어다니고 말을 하는 의인화된 동물들의 그림체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들 그림은 모두 베아트릭스 포터 본인이 직접 그린 것이다.
피터 래빗 시리즈가 유명해지게 된 것은 이야기의 내용보다도
동심뿐 아니라 성인의 마음도 사로잡는 출중한 그림 실력이 더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피터 래빗 전집은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시리즈의 후반부에 발표된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이야기의 각 페이지에 컬러 삽화가 들어가 있어서 수월하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오랜만에 그림책을 손에 드니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기도 했다.

'피터 래빗 이야기'로 시리즈가 시작되었기에 피터 래빗 시리즈로 흔히 불리고 있지만
27편의 이야기 중 피터 래빗이 등장하는 것은 피터 래빗 이야기, 벤저민 버니 이야기, 토드 씨 이야기 정도이다.
다른 이야기들에는 토끼 이외에도 다람쥐, 고슴도치, 고양이, 생쥐, 개구리 등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피터 래빗 전집을 읽으며 베아트릭스 포터의 화가로서의 재능을 새삼 확인해볼 수 있었다.
포터의 남동생이 소장하고 있었던 미공개 삽화 3점이 경매에 출품되어
5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는 10년 전 뉴스가 보이던데 충분히 공감이 갔다.

책을 읽은 후에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피터 래빗(Peter Rabbit)을 보았는데
전집 속의 삽화에서 보았던 수많은 캐릭터들이 CG로 생명을 얻어서
살아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영화의 재미와 감동이 배가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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