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영화 위대한 쇼맨 2017/12/27 16:27 by 오오카미




지난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을 관람했다.
제작진을 살펴보면 감독 마이클 그레이시(Michael Gracey),
각본 제니 빅스(Jenny Bicks), 빌 콘돈(Bill Condon)인데 빌 콘돈이란 이름이 눈길을 끈다.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인 빌 콘돈이 참여했던 뮤지컬 영화에는
시카고(2002), 드림걸즈(2006), 미녀와 야수(2017) 같은 쟁쟁한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영화인 만큼 음악이 더욱 중요하다 하겠는데
작곡은 존 데브니(John Debney), 조셉 트라파니즈(Joseph Trapanese)가 담당했고
작사는 벤지 파섹(Benj Pasek), 저스틴 폴(Justin Paul)이 맡았다.
1985년생 동갑내기인 파섹과 폴(Pasek and Paul)은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2016)를 비롯하여
디즈니에서 제작 중인 뮤지컬 영화 알라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도 작사 작업을 함께하고 있다.

휴 잭맨(Hugh Jackman)은 흥행사(쇼맨. showman)이자 서커스단 단장인 주인공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Phineas Taylor Barnum. 1810-1891)을 연기한다.
P.T.바넘이 실존인물이라는 것은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웹에서 검색해 보니 바넘이 쇼맨으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그가 뉴욕으로 이주한 이듬해인 1835년에 70대의 흑인 여성노예 조이스 헤스(Joice Heth)를 매입하여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유모이고 나이가 무려 161세나 된다고 속여서 공개한 전시회였다고 한다.
이후로도 바넘은 난쟁이, 거인, 알비노, 샴쌍둥이 등 외형이 정상인과는 다른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그가 구입한 박물관에서 인간 박물관을 개최했고 미인 선발대회, 아기 선발대회 등 다양한 쇼를 기획했다.
1850년에는 영화에도 나오듯이 제니 린드의 미국 순회 콘서트를 성사시켰다.
1865년과 1868년에 바넘이 소유한 박물관이 화재로 전소된 후에는 박물관 사업에서 손을 떼었고
1870년부터 순회 서커스를 기획하여 나중에는 서커스의 왕이란 호칭까지 얻게 되었다.
1881년에는 동종업계의 제임스 베일리(James Bailey)와 합병하여
바넘과 베일리의 서커스(Barnum & Bailey Circus)를 설립했으며 동물원에서 아프리카 코끼리를 구입하고 
미국 최초로 기차를 소유한 서커스단이 되어 전국을 순회할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바넘과 베일리의 서커스는 1919년에 링링 브로스에 매각되었고 이후
링링 브로스와 바넘과 베일리 서커스(Ringling Bros. and Barnum & Bailey Circus)라는 이름으로
미국 최대의 서커스 공연단이라는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2017년 5월 21일에 마지막 공연을 행하고 해체되었다.
유튜브에서 이들의 마지막 공연 영상과 동물학대라는 여론에 의해 코끼리를 공연에서 배제하기 이전에
코끼리를 기차에 싣는 장면 등의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바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서론이 길어져 버렸다.

위대한 쇼맨은 한마디로 신나는 뮤지컬 영화다.
영화에 수록된 넘버들이 무척 매력적이다.


최고의 흥행사라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파렴치한 사기꾼이라는 혹평도 받는 바넘이지만
영화에서는 대체적으로 바넘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바넘과 그의 쇼에 대해서 비평을 일삼던 기자마저 후반부에선 바넘의 재기를 응원할 정도이니까.

가난한 양복 재단사의 아들과 부잣집 딸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서
어렸을 때부터 서로 좋아했던 바넘과 채러티(미셸 윌리엄스. Michelle Williams)는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뉴욕의 변두리에서 세를 사는 풍족하지는 않은 삶이지만 두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린
바넘과 채러티가 빨래가 널린 옥상에서 A Million Dreams를 부르며 사랑의 춤을 추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채러티는 옥상 난간을 뛰어다니기도 하여 아찔한 스릴감마저 느껴지는 장면이다.



바넘은 상류층에게도 자신의 쇼를 선보이기 위하여 성공한 연극 연출가 필립(잭 에프론. Zac Efron)을 스카우트한다.
바넘과 필립이 바에서 술잔을 나누며 밀당을 하는 장면에서는 The Other Side가 흐른다.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 앤 역의 젠다야 콜맨(Zendaya Coleman).
젠다야는 백인과 흑인의 혼혈이라고 하는데
핑크색 머리가 흑갈색 피부에 너무나 잘 어울려서 놀라웠다.
군살 없이 쭉 빠진 몸매가 공중곡예사라는 극중 배역과 잘 어울렸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바넘의 박물관을 방문한 필립이 공중곡예사 앤과 처음 대면하는 장면이었다.
만원 관객이 들어선 가운데 쇼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2층 객석의 입구에 들어선 필립은
마침 그네에 몸을 싣고서 2층 입구 쪽으로 날아오는 앤과 눈이 마주치고 만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버린다.
첫눈에 이성에게 반해 버린 경험이 있는 관객들에겐 남의 일 같지 않은 명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흑인에 대한 편견이 오늘날보다도 심했던 시대였으므로 이후 인종을 뛰어넘는 힘겨운 사랑이 애절하게 그려진다.



필립과 앤이 공중곡예를 하면서 Rewrite The Stars를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사랑이 가장 무르익는 신이었다.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 불렸던 소프라노 제니 린드(Jenny Lind)는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서 일사 파우스트 역으로 매력을 뽐내었던
레베카 퍼거슨(Rebecca Ferguson)이 연기했다. 그녀는 내년에 개봉예정인 미션 임파서블 6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제니가 오페라 극장을 가득 채운 관중 앞에서 Never Enough를 노래하는 장면은
스크린 속의 관중들뿐 아니라 객석의 관객들마저 매료시키는 명장면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장면의 노래는 레베카 퍼거슨이 직접 부른 것이 아니다.
실제 노래는 로렌 알레드(Loren Allred)라는 여가수가 불렀고 레베카는 립싱크를 했다고 한다.
영화에 출연하는 다른 모든 배우들은 직접 노래를 불렀는데 레베카만 예외라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바넘이 제작한 제니 린드 콘서트 포스터.

영화에서는 바넘과 제니 사이에 썸이 일어날 듯한 야릇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고
유부남인 바넘이 제니의 구애를 뿌리친 것이 계기가 되어
제니가 미국 순회공연을 중단하고 유럽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위키피디아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제니의 미국 순회 공연은 1850년 9월부터 1852년 5월까지 무사히 진행되었다.
공연 수익금의 대부분을 자선사업에 기부하는 제니와는 달리
바넘은 투어 초기에는 티켓을 경매에 붙이는 등 잇속을 챙기기에 급급해서 서로가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원래 바넘과 150회의 공연을 예정하였으나 바넘과 함께한 것은 93회의 공연까지였다.
제니는 1851년 6월에 바넘과의 계약을 해지했고 이후 약 1년간은 스스로 매니저 일을 겸하면서 투어를 완료했다.
영화에서는 제니가 공연을 중단하고 귀국함으로써 바넘이 수익금을 챙기지 못한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50만 달러(현재가치로 1400만 달러)의 순익을 올렸다고 한다.
바넘은 제니가 미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그녀를 효과적으로 홍보했고 결국 미국 순회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난 셈이다.



영화에서 가장 가슴 벅찼던 장면은 수염 난 여자 레티를 연기하는 케알라 세틀(Keala Settle) 등
서커스단 단원들이 제니에게 빠져서 자신들을 외면하는 바넘에게 항변하는 마음을 담아서
This Is Me를 부르며 군중 앞에서 당당히 가슴을 펴는 장면이었다.
더 이상 숨어 살지 않고 이것이 나라며 당당하게 세상에 맞서는 단원들의 모습은 가슴 뭉클했다.

입지전적인 흥행사이자 사업가 바넘의 이야기를 통하여 사랑과 용기와 가족애를 노래하는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의 개인적 평점은
★★★★★★★★★★



영화 상영 후에 포털사이트에 평점을 남기면 선물을 나눠 주었다.
나처럼 엔딩크레딧까지 다 보고 나오는 관객은 이런 행사가 있으면 늘 손해다.
이날 선물 중에는 This Is Me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 등도 있었나 본데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상영관을 나와 보니 이미 물량이 없었다. 남아 있는 것은 빼빼로와 영화 제목이 새겨진 반짝이는 소품뿐이어서
후자를 선택했는데 뒷면을 보니 핸드폰 파우치라고 쓰여 있었지만
길이가 5cm 내외밖에 안 되는 사이즈라서 도저히 핸드폰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이런 애매한 크기로 만들 거면 차라리 아기자기한 책갈피라도 만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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