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음악극 적로 2017/11/26 21:47 by 오오카미




명품 음악극 적로가 24일에 막을 내렸다.
공연기간 중에 후기를 올리려고 했으나 늦어 버려 아쉽지만
마지막 공연과 그 전날 공연도 매진되었다고 하니
이 공연에 반해 버린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게 생각한다.



11월 초순에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음악극 적로를 관람했다.
대학로와 광화문 사이을 오갈 때 보았던 창경궁 정문 건너편의 한옥 건물이 
서울돈화문국악당이라는 이름의 국악 전문공연장이라는 것은 이날 처음 알게 되었다.
돈화문은 창경궁의 정문 이름이다. 
그래서 2016년 9월 1일에 개관한 이곳 공연장의 이름도 서울돈화문국악당이 되었다.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는 카페테라스, 우측으로는 공연장 입구가 위치하고 있다.
정방형의 마당에서는 야외공연도 가능하다.



공연장 건물의 1층 로비에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아서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한옥 양식의 건물다운 설계라고 할 수 있겠다. 옛스러운 운치가 느껴진다.
공연장은 지하 2층에 위치하고 있다.



창립 1주년을 기념하여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제작한
음악극 적로는 배삼식 작, 정영두 연출, 최우정 작곡이고 공연시간은 100분이다. 
작품 속의 등장인물은 젓대(대금) 명인 박종기와 김계선 그리고 기생 산월인데 
박종기와 김계선은 실존인물이고 산월은 가공의 인물이다.

제목 적로(滴露)는 떨어지는 이슬이라는 의미이다.
프로그램북을 보면 극에 사용된 18곡의 노래 중에 타이틀과 같은 적로라는 제목의 곡이 있다.
박종기가 젓대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회상하면서 부르는 서글픈 곡으로
기력이 쇠한 노모를 봉양하려고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냈으나
다리만 절름거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휑하여서
구멍 난 마음을 메우려고 젓대를 불기 시작했다는 노랫말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적로는 눈물의 은유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음악극 적로의 배경은 1941년 초가을의 경성이다. 
청계천변 어느 돌다리 위에서 대금명인 박종기와 김계선이 옥신각신하고 있다.
박종기가 고향 진도로 내려가겠다고 하자 김계선이 이를 말리고 있는 것이다.
박종기는 전국에서 으뜸가는 젓대 명인이다.
서울 출생인 김계선은 박종기가 경성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최고의 젓대 명인이었기에
자신을 능가하는 라이벌 박종기에게 시샘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보다 열한 살이나 많은 박종기를 형님이라 부르며 돈독한 우애를 나누는 사이이기도 했다.
얼마 후 두 사람 앞에 인력거가 와서 섰다.
흔히 있는 일이다.
지체 높으신 분들이 젓대 소리를 듣고 싶을 때 이렇게 인력거를 보내곤 한다.
인력거는 두 명인을 어느 기생집으로 인도했다.
기방에 안내되어 진수성찬을 대접받고서 배를 채운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술시중을 들었던 아름다운 기생에게 말했다.
자 이제 우리를 부르신 분이 있는 방으로 안내하게. 배를 채웠으니 일을 해야제.
그러자 그 기생이 대답한다.
두 분을 이곳에 모신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오실 분이 한 분 더 계시긴 하나 오실지 안 오실지는 모르겠네요.



당돌한 기생일세 하며 다시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그제서야 속내를 털어놓았다.
실은 두 사람 모두 방에 들어서면서부터 이 기생을 보고서 적잖이 놀랐었다.
지금으로부터 이십오 년 전 아직 이들이 젊었던 시절에
후에 경성 바닥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산월이란 이름의 기생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박종기와 김계선이 산월을 처음 본 것은 어느 커다란 연회에서였고
당시 그녀는 막 기생이 된 열두 살의 소녀였다.
그 어린 것이 고깔을 쓰고 승무를 추는데
한 발 내디디면 팔순 할멈이 되고 또 한 발 내딛으면 색기 가득한 요부가 되니
마치 여시에라도 홀린 듯 어찌나 황홀했든지 하면서 박종기는 회상에 잠기며 미소를 지었다.
기생이든 풍각쟁이든 잔칫상에 자주 불려다니는지라 나이차가 있음에도 금세 이들 셋은 친해졌다.
그렇게 칠 년을 서로 친구처럼 지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산월이 경성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데 지금 박종기와 김계선 앞에 그 시절의 산월과 꼭 닮은 모습의 기생이 앉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기생의 이름 또한 산월이라 하니 이런 우연이 어디 있는가.
꿈을 꾸는 것인지 귀신에게 홀린 것인지 아니면 시간을 거슬러 오른 것인지 황당하면서도
두 젓대 명인은 십수 년 만에 그리운 이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반가움에 흥이 절로 나는 것이었다.



무대 중앙에는 돗자리가 깔려 있고 그 위에 주안상이 차려져 있다.
두 명인과 기생 산월이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작품의 주무대이다.
무대 왼편에는 자작나무가 몇 그루 세워져 있어서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삽입곡 중 가장 커다란 울림을 주는 노래 두 눈을 딱 감고 달아납시다에서 이 공간이 활용된다.
두 눈을 딱 감고 달아납시다는 등장인물 세 명이 모두 노래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곡인 데다가
"젓대나 한 자락 불어주소"라는 후렴구의 멜로디가 귓가에 착 감기는 매력적인 노래이다.
이 노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두 명인이 산월에게 우리 중 누구를 택할 것인가라고 물으니
산월이 둘 다 데리고 가지라고 답한 후 산월과 명인들의 나 잡아 봐라가 이 자작나무 숲에서 펼쳐진다.
이 공연에서 흥겨움이 절정에 달하는 장면이라 하겠다.



음악은 라이브로 연주된다.
발 뒤에 다섯 명의 음악가들이 위치했고 국악과 양악 악기가 어우러져 멋진 하모니를 들려주었다.
연주에 참여한 악기와 연주자는 다음과 같다.
대금 박명규, 클라리넷 이승훈, 아쟁 한림, 타악 김준수, 신디사이저 황경은.

젓대 명인 역의 두 배우가 손에 젓대를 들고 나오긴 하지만 직접 불지는 않는다.
박종기와 김계선이 젊은 시절에 젓대 대결을 펼쳤던 것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두 배우는 젓대를 입에 대는 대신 서로의 허리춤을 잡고 씨름 대결을 펼치고
실질적인 대금 연주는 발 뒤의 대금 연주자가 담당한다.
이날 공연에선 김정승 국악당 예술감독이 특별히 연주에도 참가하여
젓대 대결 장면에선 두 개의 대금이 격돌하는 소리를 접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박진감 넘치는 대결을 표현하기 위해 대금으로 비트박스를 구사하기까지 하여
우리 전통악기로도 얼마든지 오늘날의 음악을 접목시킬 수 있음을 들려주었다.



공연 후엔 관객과의 대화가 있어서 더욱 여운이 남는 공연이었다.
공연의 드라마트루기를 맡은 어연선 국악당 팀장이 관객과의 대화 사회를 보았고
최우정 음악감독, 정영두 연출, 안이호, 하윤주, 정윤형 배우가 참석했다.



음악극 적로는 우리의 전통악기와 서양악기가 얼마나 멋들어지게 어울릴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음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공연이기도 했다.
어연선 팀장은 인터뷰 기사에서 이러한 동서양 음악의 화합을
퓨전이란 단어가 아니라 그냥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 교수인 최우정 음악감독 또한 프로그램북의 인사말에서
작창과 작곡, 서양음악과 한국 전통음악, 정악과 속악,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 등의 구분은
사람들이 편의상 나눈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양분할 수 있는 경계가 모호한 것이고 
그래서 이들을 섞다 보면 뭔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다양한 소리가 어우러져서 하나의 음악으로 탄생한 것이 음악극 적로다.

박종기 역 안이호 배우와 김계선 역 정윤형 배우는 전통적인 판소리 창법으로 노래를 한다.
반면에 산월 역 하윤주 배우는 클라리넷의 반주에 맞추어 정가 창법으로 노래를 하여
서양악기와 동양의 소리가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매력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판소리와 정가의 어울림에 신명이 났고 동서양 음악의 조화에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공연이었다.



마치 만담을 하듯이 구수한 소리를 들려준 안이호, 정윤형 배우의 판소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아리따운 산월 역 하윤주 배우의 청아한 소리가 정말 매혹적이었다.



극 중에서 산월이 솔로로 부르는 세월은 유수와 같이와
세 사람이 모두 참여하여 정가와 판소리가 어울리는 두 눈을 딱 감고 달아납시다에서
그녀의 맑고 고운 음색은 특히 빛을 발했다.
이번 관극을 통하여 하윤주 배우와 같은
정가 보컬리스트의 존재와 그 매력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음악극 적로는 명품공연이었다.
앵콜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동서양 음악의 조화를 경험할 수 있는 이러한 작품이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지길 응원한다.





음악극 적로 커튼콜.





음악극 적로 관객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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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8/11/19 16:0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오오카미 2018/11/22 01:23 #

    감사합니다. 일정 체크한 후 메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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