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연극 길 떠나는 가족 2017/11/17 15:54 by 오오카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을 관람했다.
가난했던 천재화가 이중섭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제작했고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이고
김시율 음악감독과 윤현종(드럼), 전상민(피아노)이 음악을 연주했다.

연희단(演戱團)거리패는 1986년 부산에서 창단했고
이윤택 예술감독, 김소희 대표가 이끌고 있는 명망 있는 극단이다.
길 떠나는 가족의 초연은 1991년이었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의 공연시간은 100분이다.
TV조선의 탐사보도 세븐의 진행자로도 출연 중인 윤정섭 배우가 이중섭 역으로
극단 대표이자 극단을 대표하는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김소희 배우가
이화백의 모친 및 주모 역으로 출연하여 열연했다.
그밖에 오동식, 천석기, 김아라나, 이동준, 안윤철, 박정우, 현슬기, 송성령, 오혜민 배우가 함께했다.

신문기자가 한국화단의 야수파라 불렸던 이중섭 화백의 사망소식을
신문사에 전화로 알리는 장면으로 연극은 막을 올린다.
1916년에 태어난 이중섭은 1956년 적십자병원에서 간염 및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국내에 가족이 없어서 무연고자로 3일간 시신이 방치되었다가
그의 사망소식을 들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화장한 후 일본에 있는 부인에게 보내졌다.



이중섭 화백과 이남덕 여사의 결혼사진.

이중섭은 1937년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가서 분카가쿠잉(文化學院)에서 미술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그는 턱이 길어서 아고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일본어로 턱을 의미하는 아고에 성을 붙인 별명이다.
유학 당시 같은 학교에 다니던 2년 후배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와 연인이 되었다.
1943년 이중섭이 귀국했고 1945년 마사코 여사는 님을 만나기 위해 조선반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그리고 1945년 5월 이중섭의 고향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이중섭은 마사코에게 이남덕이란 한국이름을 선물했다. 남쪽에서 온 덕 많은 여인이란 뜻이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성공한 사업가였던 이중섭의 형 이중석이
공산당들에 의해 부르조아로 몰려 처형되고 예술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흥남철수선에 몸을 실었으나 그의 모친은 고향에 남았다.
이중섭 가족은 제주도에서 1년 가까이 살았다. 가난했지만 자유롭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이 시절 먹을 것이 없어서 바닷가에 나가서 게를 잡아다가 끼니를 해결했다.
그의 그림에 게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가 게에게 미안해서 그림으로라도 그려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생활고에 아이들마저 영양실조에 걸리게 되자 1952년 마사코는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 친정으로 돌아간다.
처자식이 그리워진 이중섭은 선원증을 구해서 1953년 7월에 일주일간 일본에 다녀오기도 하였으나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처자식과 함께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중섭은
1955년 서울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개인전은 성공적이었으나 가족과 함께 살고 싶었던 이중섭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림을 판 돈이 수중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금해 오겠다고 하고서는 중간에서 착복한 놈도 있었고 그림값 지불을 차일피일 미루는 자도 있었다.
단골술집에서 주모와 술을 마시는 것으로 한을 풀던
이중섭은 건강을 해쳤고 정신분열 증세까지 보이게 되었다.
비운의 천재화가는 일본에 있는 가족과는 결국 재회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야 말았다.



이중섭의 황소 그림은 2010년 경매에서 35억 원에 낙찰되었다.
정작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종이 살 돈이 없어서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곤 했으니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믿고 보는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역시 훌륭했다.
무대 중앙부에 위치한 나선형의 비탈길은 배우들의 입장과 퇴장 경로로 활용되어
이별하는 장면이라든가 그리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 등에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화가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벌거벗은 아이들과 다양한 생물들을
인형과 목각그림으로 재현한 소품을 배우들이 손에 들고서
천천히 비탈길을 걸어내려오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중섭 역의 윤정섭 배우는 큰 키만큼이나 돋보이는 연기로 천재화가의 좌절과 고뇌를 표현해냈다.
연극 풍찬노숙 이후로 5년 만에 그를 무대에서 다시 보았는데 당시의 이미지와 그대로여서 반가웠다.
김소희 배우는 이중섭이 월남하기 이전까지의 장면에서는 따스한 모성애를 지닌 모친 역으로
월남 후에는 단골술집의 주모 역으로 출연하여 성격이 확연히 다른 1인 2역을 연기했다.
극단의 대표배우답게 언제나 존재감 넘치는 연기력을 과시하는 여배우다.

무대에 등장하는 소품들의 대부분을 나무판자 위에 그림을 붙여서 사용하고 있는 점이 독특했다.
예를 들면 술을 담은 주전자와 술잔까지도 실제 주전자와 술잔이 아니라
그림으로 그린 주전자와 술잔이었다. 화가의 삶을 다룬 연극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연극에서 배우들의 연기만큼이나 주목을 끄는 것이 음악이었다.
피리와 북, 드럼과 피아노 등 동서양의 악기가 함께 어우러져 라이브로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데다가
직접 피리도 불고 소리도 하는 김시율 음악감독은 체격도 좋고 민머리여서 외모만으로도 시선을 끌었다.
그가 연주하는 청아한 피리 음색과 중성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소리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후기를 쓰면서 이중섭 화백과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보았는데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 중에 잘못된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16년 주간조선에 실린 마사코 여사와의 인터뷰 기사
여사의 부모님은 결혼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극심한 생활고 때문에 부부가 떨어져서 살았던 것이 아니라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왔으나
한일국교단절이 지속되어 일본 국적이었던 여사가 다시 한국에 입국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라고 한다.

*1945년 광복이 되면서 한일간에 국교가 단절되었고 1965년에서야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다.



천재화가 이중섭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을 관극하며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해야 할까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고 해야 할까
이렇듯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에야 인정을 받게 된 예술가들의 삶을 돌이켜보았다.
서양화가 중에는 빈센트 반 고흐가 생전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예술가의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연극적 재미와 좋은 음악을 더하여
이중섭 화백의 삶을 그리고 배고픈 예술가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공연이었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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