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금요일 아름다운 극장에서 연극 리얼게임을 관람했다.
찬바람이 불어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쌀쌀한 날씨였다.

연극 리얼게임은 여행을 즐기는 미국 극작가 윌리엄 미조리 다운스(William Missouri Downs)의 작품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그의 희곡
피카소 훔치기(How To Steal A Picasso. 2015)의 국내 상연에 발맞추어 작년 11월 초에 내한했을 때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찬반 공방으로 어수선했던 대한민국의 현황이었다는 거다.
당시 미국에서도 트럼프와 힐러리가 대통령 자리를 놓고서 한창 격돌하고 있던 때였으므로
미국 내에서도 후보자들을 둘러싼 진실 공방으로 한창 떠들썩한 시기였을 거다.
이러한 상황이 맞물려서 과연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이 진실인가를 탐구하는 희곡이 쓰여졌고
외국 극작가의 작품이 한국에서 전세계적으로 초연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연극 리얼게임은 윌리엄 미조리 다운스 작, 박혜선 연출이고 공연시간은 90분이다.
네 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장상욱 역에 윤상화, 세실리아 킴 역에 이지하,
신대표 역에 정의순, 장현우 역에 박종용 배우다.
시나리오 작가 상욱은 2년 전 대학원생 여제자와의 불륜이 발각되어
대학교수직에서 쫓겨났고 아내에게도 이혼을 당한 이후로
2세 경영인인 신대표가 운영하는 영화 에이전트 회사로부터
아르바이트로 원고 일감을 받아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상욱에겐 게임중독에 빠진 아들 현우가 있다.
현우는 고등학교 자퇴 후 방 안에 틀어박혀 온종일 게임만 한다.
얼마 전엔 무인전투기를 조종하는 드론 스트라이크라는 게임의 한국챔피언이 되었으나
상금이나 이런 건 일절 없고 그저 명색뿐인 챔피언이다.
어느 날 현우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며 상욱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드론 스트라이크 게임 속에서 탈레반의 리더를 죽이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는데
게임 속에서 제거한 타깃과 똑같은 이름의 탈레반 리더가 폭격으로 사망했다고 뉴스에 나왔다는 거다.
상욱은 아들이 게임중독으로 미쳐버려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거라 생각하고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로 결심한다.
한편 신대표는 모임에서 만난 어떤 여인이 시나리오 작가를 구하더라며 상욱에게 그녀의 전화번호를 건넨다.
약속장소에 나간 상욱 앞에 아직 젊고 아름다운 여인 세실리아 킴이 나타났다.
세실리아는 폐를 이식받은 자신의 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며 상욱에게 시나리오 집필을 부탁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뉴스를 통하여 그리고 최근에는 SNS를 통하여 현대인은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가를 판단해야만 하는 때도 있다.
240번 버스 사건이나 김광석 딸 사건 같은 경우가 진실과 거짓의 판별이 왜 중요한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거짓이 유포되어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뻔한 사건이었다.
연극 진실게임에서는 현우와 세실리아라는 두 명의 인물이 극단적인 대조를 보이고 있다.
현우는 자신이 게임 드론 스트라이크에 접속하여 게임 속의 드론을 조종하면
실제로 미군의 무인전투기가 똑같이 움직이게끔 CIA가 자신의 컴퓨터를 해킹했다고 믿고 있다.
그 결과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들이 겪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똑같은 증상까지 보이게 된다.
한편 세실리아는 자신의 딸과 관련된 인간애가 넘치고 사랑이 가득한 이야기를 영화로 남기고 싶다며
그녀의 딸이 길에서 만난 고아 소녀를 집에 데리고 와 다락방에 숨겨놓고서 부모 몰래 5년간 보살폈던 이야기와
얼마 전 시한부 선고를 받은 딸을 위해 그 소녀가 자신의 폐를 기증했다는 믿기 어려운 미담을 상욱에게 털어놓는다.
세실리아는 어둡고 슬픈 진실보다는 밝고 즐거운 거짓을 선택하는 재주를 타고난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다.
연극 진실게임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거짓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며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아들과 의뢰인 사이를 오가며 진실과 거짓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는
주인공 상욱의 번민과 고뇌를 잘 표현한 윤상화 배우의 연기도 좋았고
섹시한 여성미를 발산하며 남자들을 번롱하는
의뢰인 세실리아를 매혹적으로 그려낸 이지하 배우의 매력도 찬란하게 빛이 났다.
그녀가 영화제작사 대표와 미팅을 가진 후 술에 만취하여 집에 돌아온 장면에서는
정말로 술에 떡이 된 듯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리얼한 연기가 특히 일품이었다.
비참한 현실에 웅크리기보다는 아름다운 허구로 가슴을 쫙 펴는 세실리아가 당당했고 돋보였다.
어찌 생각해보면 예술만큼 거짓으로 치장된 세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에 눈을 감고 거짓만 바라보며 살 수만도 없는 일이다.
그것이 예술과 현실의 경계일는지도 모르겠다.
연극 리얼게임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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