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6월에 원로연극인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연극축제로 시작된 제1회 원로연극제가
올해부터는 이름을 바꾸어 7월 28일부터 8월 27일까지 한 달간 제2회 늘푸른연극제가 진행 중이다.
관람을 했음에도 제때 포스팅하지 못하여 건너뛰고 만 소재들이 꽤 많다.
앞으로는 생각날 때마다 미루어놓았던 리뷰를 간략하게나마 블로그에 포스팅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2016년 6월 3일부터 26일까지 제1회 원로연극제가 진행되는 동안 아르코예술극장 2층의 로비에는
4인의 예술가 무대에 살다라는 타이틀로 제1회 원로연극제의 네 명의 주인공
김정옥 연출가, 오태석 작가, 천승세 작가, 하유상 작가의 작품들을 회상하는 미니전시회가 개최되었다.

김정옥.
서울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현대 프랑스 문학과 연극 영화를 전공하였다.
고국으로 돌아와서 민중극장을 창설하고 외국과 지속해서 교류하며 한국 연극의 국제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연극 세계는 집단창조와 총체연극 형식과
연기자 중심의 연극성이 강한 무대를 선보여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서 외국의 희극이나 부조리극을 각색하여 소개하였고
이후 창작극을 통해 한국적 연극의 실험과 그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김정옥 작, 연출의 '숫닭이 않울면 암닭이라도(수탉이 안울면 암탉이라도)' 대본.


오태석.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웨딩드레스'로 당선됐고 이어서 1968년 국립극장과 경향신문이 공동으로 주최한
장막극 공모에 '환절기'가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연극 인생을 시작하였다.
오태석의 작품 세계는 1973년 작인 '초분'을 기점으로 한국 특유의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경향으로 선회하였으며
이 작품이 미국에서 공연되면서 한국 최초의 해외 공연이라는 기록을 남긴다.
이후 '태', '춘풍의 처', '물보라' 등 전통적인 색채가 농후한 작품들을 지속해서 발표하였고
1970~1980년대를 거치며 전통의 재발견과 현대적 수용을 통한 한국적 연극을 창조하였다.





천승세.
천승세의 작품은 1950년대 농어민의 삶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며
인간의 삶과 정,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비정한 삶의 풍경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소설 '점례와 소'로 등단하여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으며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물꼬'와 국립극장 현상문예에 희곡 '만선'이 각각 당선되었다.
그의 희곡에서는 특히 토속적인 현실 속에 소외된 민중의 삶의 중요성을 지속해서 일깨운다.





하유상.
1954년 '협동'에 시나리오 '희망의 거리'가 당선되고, 1957년 국립극장 제1회 장막희곡 모집에
'딸들의 연인(딸들 연애자유를 구가하다)'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희곡뿐만 아니라 소설, TV 드라마 등 전방위적인 활동을 해왔던 그는 유머러스하지만,
촌철살인 가득한 대사와 정서적인 호소력이 담긴 극에 인생의 애환을 담아낸다.
초기에는 주로 남녀 간의 애정 문제를 통한 신, 구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관한 관심을 보였다.
1964년 작인 '학 외다리로 서다'부터는 향토적 서정의 정감과 민족 심성의 근원을 주로 다루었으며
'꽃상여', '꽃이 지기로서니(미풍)', '꽃그네', '은장도'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품 전반에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동정과 인생에 대한 느긋한 관조, 해학적인 구성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시극으로 '달 비 피리', '핏빛 하늘에 까마귀 떼', '처녀공출(위안부 이야기)' 등이 있다.





벽면에 전시된 오래된 연극 포스터를 보며 포스터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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