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연극 맨 끝줄 소년 2017/04/07 12:31 by 오오카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맨 끝줄 소년을 관람했다.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의 동명희곡 맨 끝줄 소년(El chico de la última fila. 2006)이 원작이고
국내 초연은 이번 앵콜 공연과 같은 장소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2015년에 있었다.
초연을 연출했던 극단 코끼리만보의 대표 김동현 연출이 작년에 뇌종양으로 타계하여
이번 공연의 연출은 초연 때 드라마트루그(연출의 조언자)로 참여했던 그의 아내 손원정이 맡았다.



맨 끝줄 소년을 원작으로 하는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인 더 하우스(Dans la maison. 2012)라는 영화도 있으니
연극과 영화를 비교해가며 관람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무대 위에는 네 개의 책상과 십여 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이들 책상이 놓인 공간은 교사의 서재가 되기도 하고
학교의 교무실이 되기도 하고 학생의 방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대 양 측면과 뒷면에 투명한 아크릴판으로 벽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투명한 벽은 현실과 소설 속 허구와의 경계선 역할도 하고 있고
작품에 신비감을 더하는 효과도 낳고 있었다.



연극 맨 끝줄 소년의 공연시간은 110분이고 여섯 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작가가 꿈이었던 헤르만 문학선생님 역에 박윤희, 수학을 잘하는 문학소년 클라우디오 역에 전박찬,
헤르만의 아내이고 갤러리 큐레이터 후아나 역에 우미화, 클라우디오의 친구 라파 역에 유승락,
라파의 아버지 라파(부자가 이름이 같음) 역에 백익남, 라파의 어머니 에스테르 역에 김현영 배우였다.
그리고 이들 배우 외에 나경호, 유옥주 두 명의 코러스가 아크릴 벽 너머에서
공연에 사용되는 효과음을 육성으로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했다.



연극 맨 끝줄 소년은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소재가 문학적 재능을 지닌 주인공 클라우디오 소년이 쓴 글이기 때문이다.
문학 수업을 담당하는 헤르만 선생이 학생들의 작문 실력을 보고자 출제한 과제가 모든 사건의 발단이었다.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써 오라는 과제였는데
헤르만의 의도는 학생들이 두 개의 문장을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를 보고자 한 것이었으나
다른 학생들이 제출한 숙제와는 급이 다른 장문의 과제물이 있었으니 바로 클라우디오의 것이었다.

수학을 잘하는 나는 수학은 못하지만 철학을 잘하는 동급생 라파에게 못하는 과목을 서로 도와주자고 제안했다.
라파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함께 공부하자며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이리하여 나는 라파의 집 안으로 들어가 그의 가족들을 관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함께 공부하자는 것은 구실이었을 뿐 나의 진짜 목적은 그의 가족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내가 라파의 가족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하굣길에 그의 부모가 교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장면을
몇 번 목격하면서부터였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가 학교에 오는 것을 싫어하지만 라파는 달랐다.
단란해 보이는 라파 가족의 실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알고 싶어졌다.
계속.

클라우디오가 제출한 작문 과제는 학생이 쓴 글이라기에는 내용이 도발적이었고
글의 마지막을 계속이란 단어로 끝냄으로써 이 관찰일지가 계속될 거라는 걸 대놓고 언급하고 있었다.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는 숙제를 이따위로 제출하는 학생에겐 문제가 있다며 반감을 표하지만
제자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본 헤르만은 클라우디오를 잘 가르쳐서 작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후로 클라우디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을 빌려주기도 하고
그가 써 온 글에 대하여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등 개인교습을 시작한다.



그러나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의 훔쳐보기가 친구 라파의 어머니인
에스테르에게로까지 치닫게 되자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제 관찰하는 것은 그만두고 상상으로 글을 써 보라고 제자에게 조언하지만
클라우디오는 직접 보고 듣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며 관찰을 계속하겠다고 고집한다.
주인공은 관음증이라 할 수 있는 훔쳐보기를 통하여 글을 쓸 수 있는 동기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헤르만은 사춘기 소년이 친구의 엄마를 이성으로 느끼게 되어 사랑에 빠지고 마는 위험한 전개를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선생으로서의 직업적 윤리관, 어른으로서의 도덕적 책임과
자신은 작가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문학적 재능이 있는 제자를 발견하였으니
계속 글을 쓰게 만들어 작가로 키워보고 싶다는 욕망과
관찰일지인지 소설인지 모를 클라우디오의 글이 과연 어떻게 끝을 맺는지
읽고 싶다는 독자로서의 호기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교단 위에 선 선생님이 교실 전체를 관찰할 수 있듯이
맨 뒷줄에 앉은 학생도 나름대로 교실 전체를 관찰할 수 있다.
맨 끝줄에 위치함으로써 학생임에도 선생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거침 없이 쓰고 싶은 것을 써 내려가는 클라우디오라는 존재는
이런 의미에서 기성세대 혹은 고정관념에 대한 반발이라 볼 수 있었다.
또한 클라우디오가 친구 라파의 가족을 관찰하며 그들을 소재로 글을 쓰는 과정은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을 어기면서까지 타인을 훔쳐보고 싶은 욕망의 분출을 상징하기도 했다.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을 했던 영화 졸업(The Graduate. 1967)에서는
주인공 벤자민의 친구 어머니가 먼저 주인공을 유혹했던 것에 반하여
이 연극에서는 주인공이 친구 어머니에게 먼저 다가간다는 점이 대조적이다.
문학소년인 만큼 시 한 구절을 적은 메모지를 그녀의 손에 건네준다는 설정이 무척 낭만적이었다.
한편 이 연극은 소녀 뱀파이어와 순수한 소년의 사랑을 그린
스웨덴 영화 렛미인(Let the Right One In. 2008)을 떠올리게도 했다.
누군가를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선 그 사람이 생활하는 집 안으로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말이다.
연극 결말부에 헤르만과 클라우디오가 무대 위가 아니라 객석 통로의 계단에 앉아서
대화를 주고받는 대목에서는 영화 렛미인이 오버랩되면서 섬찟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과연 클라우디오가 과제로 제출한 이후 계속 작성한 작문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인 것일까.
글쓰기에 열중한 작가는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기도 한다는데 클라우디오의 경우는 어땠을까.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지는 연극 맨 끝줄 소년은 한 권의 잘 쓰여진 소설을
110분에 걸쳐서 완독한 듯한 청량감을 주는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클라우디오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가가 밝혀지는 후반부의 반전 또한 일품이다.





연극 맨 끝줄 소년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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