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연극 데블 인사이드 2016/07/20 11:52 by 오오카미




지난 주말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연극 데블 인사이드를 관람했다.

믿고 보는 극단 맨씨어터의 최신작이고 미니멀리즘의 대가 김광보 연출의 작품이라서 관람 전부터 기대가 컸는데
역시나 뜨거운 열정과 번쩍이는 재치가 충만한 무대였고 연극 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충실한 시간이었다.

원작은 데이빗 린지 어베이르(David Lindsay-Abaire)의 A Devil Inside(1997)이고 국내초연이다.
데이빗은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 래빗홀(Rabbit Hole. 2010)의 각본을 맡은 바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은 그가 2006년에 쓴 희곡이고
연극 래빗홀은 2006년 토니상 여우주연상과 2007년 퓰리처상 연극부문을 수상했다.



연극 데블 인사이드의 공연시간은 100분이고 여섯 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이날 공연의 캐스팅은
남편의 복수를 꿈꾸며 세탁소를 운영하는 과부 슬레이터 부인(Mrs. Slater) 역에 우현주,
슬레이터 부인의 외아들이고 스케이트보드를 잘 타는 대학생 진(Gene) 역에 이창훈,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에 몰입된 러시아 문학교수 칼(Carl) 역에 박호산,
안나 카레니나를 동경하고 칼 교수를 짝사랑하는 여대생 케이틀린(Caitlin) 역에 이은,
브래드의 동거인이고 발 그림에 집착하는 비밀 많은 화가 릴리(Lily) 역에 정수영,
밋밋하고 따분한 삶에 변화를 꿈꾸는 수리공 브래드(Brad) 역에 구도균 배우였다.



연극의 배경은 세기말적 상황에 처한 뉴욕이다.
청소부들이 파업하여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방치된 개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마을 전체에 침수가 시작되어 지하실엔 물이 찼고 언제부턴가 경찰들의 모습마저 보이지 않는다.

아들 진이 21세가 되는 생일날 슬레이터 부인은 14년간 숨겨왔던 진실을 진에게 털어놓는다.
"네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산속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어."
아들이 말을 믿지 않자 슬레이터 부인은 포름알데히드 유리병에 보관해온 죽은 남편의 발을 꺼내 놓는다.
부인의 남편은 체중이 190kg이나 되는 거구였다. 살을 빼겠다고 포코노산까지 트래킹을 계획했다.
(뉴욕에서 미동부의 대표적 휴양지인 포코노산(Pocono Mountains)까지는 200km 정도의 거리다.)
슬레이터 부인은 당시 일곱 살이었던 진과 함께 포코노산의 단골 산장에 먼저 가서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통지를 받고 부인이 현장에 달려가 보니
누군가가 도끼로 남편을 살해했고 왼쪽 발목이 절단되어 있었다.
14년이 흘렀다. "아들은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한다." 슬레이터 부인은 장성한 진에게 남편의 복수를 강요한다.



러시아 문학교수 칼은 현재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강의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사람을 나폴레옹과 이로 양분하고는
인류를 위해서 나폴레옹처럼 세상을 이끌어갈 선택된 자는
두피에 기생하는 이처럼 사회에 불필요한 인간을 벌해도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라스콜니코프는 오랜 갈등 끝에 끝내 이 신념을 실행에 옮긴다.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살해한 것이다.
칼은 꿈에서 연일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어제 꿈에서 드디어 그놈의 얼굴을 봤다.
수리점에서 일하는 특색 없고 밋밋하게 생긴 수리공이었다.
"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놈은 죽어도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칼은 수리공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밤마다 거리에서 스케이트보드 쇼를 펼치면서 용돈을 벌고 있는 진은
함께 문학수업을 듣고 있는 여대생 케이틀린에게 반해 있다.
그녀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케이틀린은 줄곧 러시아 문학교수에 대한 찬사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의 교수를 흠모하는 그녀의 모습에 진은 자신을 돌아본다.
"나도 의젓한 어른이라구. 엄마 말대로 아버지의 복수를 하러 포코노산으로 떠나겠어."

케이틀린은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무척 좋아한다.
"안나처럼 정열적인 사랑에 빠져보고 싶어."
그리고 그 대상을 찾았다. 러시아 문학을 강의하는 매력적인 교수 칼이다.
칼을 미행하여 그의 단골 술집 안을 엿보고 있던 케이틀린은
칼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가 늘 소지하고 다니던 일기장을 훔친다.
그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가슴이 뛴다.



릴리는 화가다. 수리공 브래드 집에 얹혀살고 있지만 결코 기가 죽거나 하는 일은 없다.
릴리는 비밀이 많은 여자다. 질문 받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녀가 애착하는 대상은 발이다. 지금도 브래드의 발을 스케치하고 있다.
또한 릴리는 아버지의 유품인 강아지 모양의 넥타이핀을 애타게 찾고 있다.
"그 넥타이핀을 찾아야만 나의 불행을 멈출 수 있어."

브래드는 수리공이다. 다양한 물건을 고친다.
자신의 외모처럼 밋밋하고 따분한 삶이지만 최근 활력을 주는 즐거움을 찾았다.
밤마다 거리에서 펼쳐지는 스케이트보드 쇼를 보러 간다. "나도 보드를 타고 점프하고 싶어."
최근 브래드에겐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악마가 보이기 시작한 거다.
처음엔 벽지 무늬가 악마 얼굴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벽지에서 걸어나와 말까지 건다. 



연극 데블 인사이드는 여섯 명의 등장인물을 통하여
이들이 운명의 장난처럼 서로 얽히고설켜가는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과거 또는 집착에 얽매여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 등장인물들의 가련한 삶을 투영하고 있었다.

연극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꼬인 실타래가 풀리듯 14년 전 사건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는 내용도 흥미로웠고
극단 맨씨어터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이 맛에 연극 보는 거지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매력 넘쳤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연출가의 무대답게
무대 위에는 세탁소와 수리점을 알리는 책상과 몇몇 소품이 전부였다.
무대 측면과 후면에는 붉은 피를 연상시키는 밴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벽과 출입구를 대신했다.

모든 배우의 연기가 개성 넘치고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흡인력 강한 배우는 칼 교수 역의 박호산 배우였다.
박호산 배우는 연극 프리즌에서 연쇄살인마 랄프를 연기할 때 보고서 이미 느꼈지만
광기와 유머가 혼재하는 중독성 강한 배우다.
가수 김정민을 떠올리게 하는 선 굵은 호남형이고
객석에 던지는 강렬한 눈빛에선 카리스마가 느껴지지만 입가엔 웃음을 짓게 만드는 친근감 넘치는 배우다.

연극 데블 인사이드는 배경도 세기말이고 내용상으로는 분명히 비극임에 틀림없는 작품이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공연이었다.
중간중간 개그적 연출이 포진해 있고 배우들의 연기에도 웃음을 이끌어내기 위한 과장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연극 데블 인사이드 커튼콜.
좌로부터 구도균, 정수영, 박호산, 우현주, 이창훈, 이은 배우.





연극 데블 인사이드 커튼콜.
좌로부터 구도균, 정수영, 김태훈, 우현주, 이창훈, 이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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