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주쿠양산박의 텐트극장.

지난주 토요일에 대학로에서 연극 자화상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왕십리역에 들렀다.

그런데 역사 앞 광장에 파란색 커다란 텐트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었다.
처음엔 무슨 공사가 진행 중이라서 가림막을 설치해 놓은 건 줄 알았다.
그런데 텐트 옆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신주쿠료잔파쿠(新宿梁山泊).
연극을 좋아하고 일본연극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극단의 이름이다.
한때 정의신 작가가 극단의 전속작가로 활동하기도 했고
현재도 재일교포 3세 연출가 김수진(金守珍) 씨가 이끌고 있는 극단 신주쿠양산박.

그 유명한 극단이 서울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동문화재단이 주최한 신주쿠양산박의 서울 왕십리공연은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연극 도라지가 4회,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연극 백년 바람의 동료들이 3회 예정되어 있다.
토요일에 왕십리에 닿았을 때에는 이미 공연이 시작된 후라 입장이 불가했기에
다음날인 일요일에 다시 이곳을 찾기로 했다.

봄나들이하기 좋은 화창한 날씨의 주말이었다.
일요일은 오후 4시 공연이었고 티켓팅은 한 시간 전부터 이루어졌다.

줄서기 문화가 정착된 일본은 좌석이 자유석인 경우 입장시 혼잡을 방지하기 위하여 번호표를 배부한다.
3시 25분쯤 티켓팅을 했음에도 번호는 이미 151번이었다.

3시 40분부터 입장이 시작되었다.
스태프의 호출에 따라서 번호 순서대로 열 명 단위로 입장이 진행되었다.

텐트 내의 좌석은 방석식과 의자식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자유석이었다.
먼저 입장한 관객은 텐트 출입구 양옆에 설치된 계단형 구조의 의자식 좌석에 앉았고
이후의 관객은 무대와 가까운 바닥에 마련된 방석식 좌석으로 안내되었다.
방석식 좌석에 앉는 관객에겐 입장시 신발을 벗어서 담을 비닐봉지가 하나씩 주어졌다.
일본어로 진행되는 공연인 만큼 무대 양옆에 한글 자막이 표시되는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연극 도라지의 공연시간은 95분.
극단 대표이기도 한 김수진 연출의 인사말과 함께 공연은 막을 올렸다.
극단 대표이기도 한 김수진 연출의 인사말과 함께 공연은 막을 올렸다.
개화파의 지도자 김옥균은 일본의 원조를 믿고 고종을 설득하여 국가개혁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만
고종의 비 명성황후로 대표되는 민씨정권 수구파는 청과 결탁하여 이를 방해한다.
1884년 일본군의 힘을 빌어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는 민씨세력을 숙청하고 정권을 손에 쥐지만
황후의 요청으로 출동한 청의 군대에 의해 새 정권은 3일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김옥균은 고종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본으로 망명하지만 이용가치가 떨어진 그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한다.
김옥균은 오가사와라 섬과 홋카이도 등에서 10년간의 연금생활을 거친 후
1894년 이홍장과 담판을 짓겠다며 상하이를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고종이 보낸 자객 홍종우의 총에 암살된다.
김옥균의 시신은 조선으로 보내져 다시 능지처참형을 당하고 잘린 사지는 전국으로 보내져 효시된다.
오가사와라 유배생활 때 양자가 된 수제자 와다가 김옥균의 목을 수습하여 귀국한 후 아오야마 공원묘지에 안장한다.
오태석 작가의 희곡 도라지는 그가 이끄는 극단 목화에 의해 1994년 국내에서 초연됐지만
왜색이 짙다는 일부 비평에 의해 이후 무대 밖으로 밀려나 있다가
2007년에 신주쿠양산박이 창단 2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현대연극 시리즈로 기획하면서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과연 김옥균은 구국의 영웅인가 아니면 희대의 반역자인가.
이 공연의 팸플릿 서두에 쓰여져 있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하여 연극은 굉장히 중립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주인공 김옥균은 검술에도 능하고 학식도 탁월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인품을 갖춘 인물로 그려지고 있어서
개혁을 이끌 구국의 영웅처럼 묘사가 되고 있기도 하지만
왕을 버리고 홀로 한양을 탈출한다든가 일본 기생집에서 희희낙락하며 세월을 보낸다든가
아오야마 묘지에서 목만 환생하여 떠들어대는 해학적 장면을 통해서는 죽어 마땅한 대역죄인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또한 김옥균을 암살하는 프랑스 유학파 청년 홍종우에 대한 비중도 적지 않았다.
그는 유학자금 마련을 위해 족보를 팔고 일본 목욕탕에서 때밀이로 돈을 버는 등
체면치레에 급급하는 구세대가 아니라 실리를 추구할 줄 아는 청년이었다.
개혁을 꿈꾸었던 김옥균을 마음 속으로 존경하여 암살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입신양명을 위하여 방아쇠를 당기는 고뇌하는 청년으로 그려졌다.
학창시절 국사 성적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던 탓도 있겠지만
갑신정변 이후 김옥균의 삶에 관해서는 이번 연극을 통하여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일본연극을 통하여 한국사를 되돌아보게 되다니 세상은 요지경이다.
무엇보다도 극단 신주쿠양산박 단원들의 연기가 매력적이었다.
연극의 도입부인 아오야마 묘지에 혼령들이 모여드는 장면에선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아리따운 여배우가 하얀 젖가슴을 드러내며
왕실에 홀로 있는 고종을 유혹하는 장면이 오버랩되어 시작부터 강한 임팩트를 주었고
연극 중반부 일본 목욕탕 장면에선
전라의 남자배우 네 명이 바가지로 중요부위를 가리고 춤을 추는데
바가지를 움직일 때마다 그곳이 노출되어 여성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배우들의 군무 장면에선 남녀배우 모두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화려한 무대를 수놓으니
살아있는 예술 연극의 생동감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너무나도 멋진 공연이었다.
개인적으론 기생 역으로 출연한 여배우들이 어찌나 예쁘던지 황홀경에 젖어들었다.
연극 도라지 커튼콜.
인사하는 배우들과 김수진 연출.
연극 도라지의 출연배우는 다음과 같으니
김옥균 역에 히로시마 코(広島光), 고종 역에 신 다이키(申大樹), 이시이 역에 야츠시로 사다하루(八代定治),
이도재 역에 소메노 히로타카(染野弘孝), 와다 역에 코바야시 요시나오(小林由尚), 홍종우 역에 카토 료스케(加藤亮介),
망나니 역에 시미즈 슈헤이(清水修平), 타케조 역에 사토 마사유키(佐藤正行), 토야마 미츠루 역에 아소 무기(麻生麦),
명성황후 역에 와타라이 쿠미코(渡会久美子), 어린 와다 역에 아라타 쇼코(荒田翔子),
와다의 모친 역에 미우라 신코(三浦伸子), 프랑스 연구자 역에 미즈시마 칸나(水嶋カンナ),
기생 역에 에비네 히사요(海老根寿代), 아리스가와 소와레(有栖川ソワレ), 덴다 케이나(傳田圭菜) 배우였다.

연극 도라지는 엔딩도 파격적이었다.
무대 뒷면의 천막을 뜯어내어(屋台崩し) 무대 밖이 훤히 보이게 만들었고
무대 안과 밖의 단절이 사라진 그곳에선 죽은 김옥균이 덩실덩실 사자춤을 추고 있었다.
작품 속에서 배우들은 살육의 자유, 죽음의 자유, 사랑의 자유, 성의 자유 등
슈프레히코르(제창. 집단 낭독)를 하며 자유를 예찬한다.
천막을 뜯어내어 무대 안과 밖을 하나로 만드는 이 행위 역시 자유를 갈망하는 표현이었고
야외에 설치된 텐트극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로망의 복권(ロマンの復権)이었다.
오태석 원작의 도라지는 올해 6월에는 김수로 프로젝트의 뮤지컬로 각색되어
곤 투모로우란 제목으로 다시 무대에 설 예정이다.
일본 극단 신주쿠양산박에서 먼저 가치를 알아본 희곡이 뒤늦게나마 국내에서 재조명되는 셈이다.
그때쯤이면 김옥균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새삼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1987년 토쿄에서 결성된 극단 신주쿠양산박의 첫 한국공연은 1989년이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지속적으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1993년 한강둔치에 텐트극장을 설치하고 연극 인어전설을 공연했을 때에는
배우들이 뗏목을 타고 한강을 건너오는 연출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명성이 자자한 신주쿠양산박의 공연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고
문화적 교류는 국경도 사상도 뛰어넘는 우호증진의 활로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덧글
입장료는 기본적으로 무료이고 감동후불제로 공연 후 성심껏 내면 되는 후한 공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