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연극 에쿠우스 2016/01/28 19:28 by 오오카미


8일간 지속되었던 영하의 날씨가 풀린 날에 대명문화공장에서 연극 에쿠우스를 관람했다.
피터 쉐퍼(Peter Shaffer)의 작품으로는 고곤의 선물, 아마데우스에 이어서 세 번째로 접하는 작품이었다.
대체 주인공 소년이 왜 말의 눈을 찔렀는지 늘 궁금했는데 이번 관극을 통하여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연극 에쿠우스의 공연시간은 1부 60분, 인터미션 15분, 2부 60분으로 구성되었다.
피터 쉐퍼 작, 이한승 연출, 극단 실험극장 제작이고
등장인물은 6명의 인간과 7마리의 말(원작에선 6마리)이다.

이날 공연의 캐스팅은
다이사트 역에 김태훈, 알런 역에 김윤호,
헤스터 역에 차유경, 프랭크 역에 서광일, 도라 역에 이양숙,
질 역에 이미소, 너제트 역에 은경균 배우였고
너제트 외 여섯 마리의 말을 연기한 코러스는
노상원, 김태완, 조민교, 인규식, 김성호, 김민엽 배우였다.



연극의 주인공은 17세의 소년 알런 스트랑과 정신과의사 마틴 다이사트다.
알런은 마구간에 매여 있던 말 일곱 마리의 눈을 찌르는 기이한 범죄를 일으켰고
법정에서도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소년원에 보내질 처지였으나
알런의 정신상태가 이상하다며 선처를 호소한 여판사 헤스터의 노력으로
그녀의 친구 다이사트가 근무하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다이사트는 알런의 심리를 분석하여 범죄동기를 알아내고자 하였으나
첫대면에서 알런은 다이사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텔레비전의 인기 CF송을 큰소리로 반복해서 소리칠 뿐이었다.
그러나 진료가 거듭됨에 따라서 다이사트를 향한 알런의 경계심도 점차 누그러진다.

알런은 어려서부터 말을 좋아했다.
말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가족끼리 놀러 갔던 어느 바닷가에서
백사장을 달려오는 멋진 말의 모습에 반했기 때문이다.
알런의 아버지 프랭크는 인쇄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무신론자다.
반면에 알런의 어머니 도라는 기독교에 심취한 광신도다.
도라는 아들의 방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는 예수의 종교화를 붙여놓았으나
프랭크는 고통 가득한 이 그림을 찢어버리고 대신 공장에서 가져온 말의 사진을 붙여놓는다.
부모의 극명한 종교관의 차이로 인하여 알런의 종교관은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예수님의 그림이 있던 자리를 대체한 것은 부릅뜬 두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말의 사진.
이로 인하여 알런의 종교적 숭배 대상은 말이 되어 버린다.

알런은 인근 마구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경외의 대상인 말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된 것이다.
다른 일꾼들의 증언에 의하면
알런은 말의 갈기를 빗질하고 몸을 쓰다듬으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고
마치 그 장면은 말과 사람이 서로를 애무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알런이 일하는 마구간에는 그보다 약간 연상의 질 메이슨이라는 처녀가 있었다.
알런에게 관심이 있었던 질은 알런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시내의 성인영화관에서 스웨덴산 짙은 포르노를 보고 나온 두 청춘은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질은 알런의 손을 이끌고 마구간으로 향한다.
어둑한 저녁 마구간에는 말들 이외에 인기척은 없었다.
옷을 벗은 젊은 남녀가 하나가 되려는 찰나 말의 성난 울음소리가 알런의 귓가를 때린다.
말을 숭배한 소년에게 있어서 마구간은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러한 성역에서 알몸이 되어 뒹굴려 했다니 이 얼마나 불경스러운 짓인가.
소년의 불경죄를 목격한 말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소년을 응시하고 있다.
그 매서운 시선이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알런은 쇠꼬챙이를 손에 들고 일어나 그의 신이었던 말들에게로 향한다...





연극 에쿠우스의 하이라이트는 1부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알런이 꿈속에서 자신이 숭배하는 말 에쿠우스와 동화되는 이 장면은 역동감이 넘치는 살아있는 무대였다.
영화 300을 떠올리게 하는 헐벗은 남자배우들의 몸짓 연기는 혈기왕성한 말의 움직임을 표현함에 부족함이 없었다.


연극 에쿠우스 관람에 앞서 며칠 전 역시 피터 쉐퍼의 작품인 아마데우스를 관람했기에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절대적 존재, 신에 관하여 자연스레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마데우스에선 살리에리가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모차르트를 죽이겠다며 신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에쿠우스에선 알런이 스스로 숭배했던 말의 눈을 찌름으로써 신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작가의 상상력이란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이긴 하지만서도
작가 피터 쉐퍼가 만약 독실한 종교인이었다면 과연 이런 소재의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피터 쉐퍼는 알런의 아버지 프랭크처럼 무신론자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스스로 창조했던 신을 스스로의 손으로 파괴한 소년은 승자일까 아니면 패자일까.
절대적 존재에게 해를 끼쳤다는 죄책감과 공포로 인하여
정신분열을 일으켰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니 소년의 패배로 볼 수도 있겠으나
절대적 존재를 숭배해야만 하는 종교적 굴레로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났다는 점에서 불완전하게나마 승리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알런의 진료를 마친 다이사트가 일종의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극은 막을 내린다.
아내와의 불화로 가정적 위기에 처해 있던 다이사트는 이후 아내와 화해하지 않았을까.
신에게 맞선 소년을 영접했으니 그로부터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용기를 얻었을 테니까.

한편으론 어찌 보면 에쿠우스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는 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브가 아담에게 선악과 열매를 건넸듯이
알런이 에쿠우스로부터 자립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 질이었으니까.
그래서 여자는 요물인가 보다.





질 메이슨 역의 이미소 배우의 연기는 무척 좋았다.
그녀는 난방열사라는 별명을 가진 김부선 배우의 딸이기도 하다.
질 배역의 섭외가 들어왔을 때 노출신이 있어서 처음엔 고사했다고 한다.
엄마 김부선 씨가 이 사실을 알고서 머리도 나쁜 것이 노력이라도 해야지.
몸 아껴서 뭐 하게라고 다그쳤다는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이미소 배우의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연극 에쿠우스는 노출신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알런과 질이 마구간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두 배우가 전라 연기를 펼친다.
시간적으로 어두운 밤이라는 설정이고
이 장면에서 두 배우가 객석을 정면으로 바라보지는 않으므로
객석에서 느끼는 체감적인 노출수위는 반라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커튼콜데이 때만 커튼콜 촬영이 허가된 점은 아쉬움이다.
기왕 커튼콜 촬영 가능하도록 정했으면 따로 날짜를 가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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