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 旅行 박정희 대통령 신당동 가옥 2015/03/26 17:08 by 오오카미


박정희 대통령 신당동 가옥이 3월 17일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그래서 지난주 토요일에 다녀왔다.

신당동 가옥은 신당동 중앙시장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서서 계속 직진하다가
기업은행 앞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서 오르막길을 오르면 우측에 위치한다.

* 알림판 등 글자가 많이 들어간 개체가 포함된 사진은 클릭하면 글자를 판독할 수 있을 만큼 확대된다.



신당동 가옥 관람은 공공서비스예약 사이트(yeyak.seoul.go.kr)에서
예약을 한 후 방문하면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이 가능하다.
예약을 하지 않았더라도 줄을 서서 순서대로 입장도 가능하다.



사이트에서 예약을 할 때에는 우측상단의 빠른예약을 누르고
문화행사 - 전시/관람 - 중구 - 박정희 대통령 가옥 관람 순으로 선택한 후
관람을 희망하는 날짜를 선택하면 되겠다.



가옥의 철문을 들어서면 앞마당이 펼쳐진다.
가옥의 규모는 대지 100평, 건평 40평이라고 한다.



자그마한 앞마당에는 방문객들이 앉아서 대기할 수 있도록 벤치가 길게 놓여져 있다.

철대문 바로 뒤에는 짙은 녹색잎이 우거진 향나무가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고 
그 옆으로는 육영수 여사가 좋아하셨다는 목련이 높게 자라 있다.
현재 저택에 심어져 있는 여러 나무 중 향나무와 목련 이 두 그루만이
박정희 대통령 내외께서 이곳에 거주하셨을 때 심으신 당시의 나무라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가족은 1953년 7월에 동숭동으로 이사 오면서 서울생활을 시작했고 
이곳 신당동 가옥에서는 1958년 5월부터 1961년 8월까지 거주했다. 
신당동 집은 전세생활을 끝내고 처음으로 소유한 주택이었기에 애착이 남달랐다고 한다.



가옥의 정면.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커다란 미닫이식 현관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필자도 학생시절에는 한옥을 양옥식으로 개량한 이러한 주택에서 살았기 때문에
신당동 가옥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운 향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현관 좌측이 안방이고, 우측은 관람객을 인솔하는 자원봉사자들의 휴게실이다.



안방 창문 앞에도 조그마한 꽃밭이 마련되어 있었다.



통행이 금지된 가옥 왼편은 장독대로 이어진다.



앞마당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사진과 함께할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흑백사진을 연상시키는 얼굴색을 보다 화사하게 보정하면 좋을 것 같다.



가옥 안내도. 
응접실 - 안방 - 자녀방 - 영상실 - 서재 순으로 관람하게 된다. 
관람객을 인솔하는 전시안내인(도슨트)을 따라 이동하며 다양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현관을 들어서면 바로 응접실이다.
거실이라 부를 수도 있겠고 마루라 해도 좋겠다.



1961년 7월. 육영수 여사가 응접실에서 미군 장교 부인들을 접견하는 사진.



아쉽게도 가옥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소품은 응접실의 액자와 찬장을 제외하고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사용했던 물품이 아니라고 한다.
두 분께서 사용하신 물품을 구할 수가 없어서 당시의 사진을 참조하여
연대가 비슷한 물건들을 구하여 꾸며놓았다고 한다.

신이심정(神怡心靜. 정신이 온화하면 마음이 고요해진다)이라 쓴 액자가 눈길을 끄는데
충북 옥천 출생의 서예가 송치헌의 글씨라고 한다.

두 분이 직접 사용하셨던 유품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방문 포스트



응접실 벽면에는 빼곡하게 글자가 적혀 있는 1961년도 달력이 걸려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달력을 스케줄러로 활용할 정도로 메모광이었다고 한다.



응접실의 좌측에는 소파 등이 놓여져 있었고
우측에는 대통령 가족의 주거 변천과 가옥의 변화
그리고 이 가옥의 건축사적 가치를 설명하는 알림판이 설치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서울에 세워졌던 이러한 주택 양식을 문화주택이라 부르는가 보다.
기와가 얹혀져 있는 한옥의 외형에 양옥의 내부구조를 가미한 퓨전식 주택. 
이른바 동서양의 화합이다.
일본에선 1920년대부터 일본식 목조가옥에 서양식 내부구조를 결합한 문화주택이 유행했다고 한다.

신당동이 위치한 중구뿐 아니라 필자가 살았던 종로구에도 문화주택이 많았다.
신당동에 현재 남아있는 문화주택은 이 가옥이 유일하다고 한다.





응접실의 왼쪽은 안방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구형 재봉틀.



서랍장 위에는 육영수 여사의 학생시절 사진과
박정희 대통령과 여사의 결혼식 사진 등 가족사진이 놓여져 있다.



그 옆에는 구형 전화기와 주판 그리고 비망록이라 적힌 노트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책상 맞은편에는 두 분의 가계도와
안방마님 육영수 여사의 프로필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방의 바로 뒤쪽은 자녀방이다.
현관과 마찬가지로 방문도 요즘같은 여닫이가 아니라 미닫이식이다.



박근혜와 박근령 자매가 사용한 자녀방.



국민학교 교과서와 수동식 연필깎이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커튼 디자인이 소녀들의 방임을 표현했다. 
숨바꼭질할 때 즐겨찾던 붙박이식 장 또한 그리움을 자극했다.





자녀방과 응접실 뒤쪽에는 영상실이 위치한다.
박정희 대통령 가족이 거주했던 당시에는 부엌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다.



영상실 바닥에 노란 선으로 표시한 구역이 원래 부엌이었던 공간이고
그 바깥쪽은 새로 확장한 구역이다.



영상실의 스크린에선 1961년 5월 16일.
즉 5.16 혁명 당일을 조명하는 영상이 상영되었다.



스크린 맞은편에는 1960년대의 대중문화를 회상할 수 있는 잡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학원사에서 발간한 학원 1961년 9월호.



유한양행에서 발간한 가정생활 1961년 3월호와
영화세계사에서 발간한 영화세계 1961년 6-7월호.



사상계사에서 발간한 사상계 1961년 5-6월호.



영상실을 나오면 우측으로 서재가 위치한다.





박정희 대통령 연보.



박정희 대통령 연보 알림판 옆에는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과 모자가 벽걸이에 걸려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박정희 대통령이 착용했던 진품은 아니다.





서재의 책장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저서인 국가와 혁명과 나를 비롯하여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 발행한 재건통신 등이 진열되어 있다.



서재의 창문은 벽면 전체를 차지한다 해도 좋을 정도의 크기다.
환기하기 좋고 빛이 잘 들어온다는 장점이 있지만
겨울철에 외풍이 심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런 커다란 베란다풍 창문도 문화주택의 특징 중 하나다.



박정희 대통령의 책상.
라디오에선 5.16 혁명 당일의 뉴스방송이 흘러나오게 설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고장이 났는지 이날은 음성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 방에서 박정희 소장은 처조카이기도 했던 김종필 중령 등과 함께
5.16 혁명의 구체적 계획을 토의했다고 한다.



서재의 창문 밖에는 라일락이 두 그루 심어져 있다. 
남편을 위하여 서재 앞 화단에 라일락을 심은 여사의 마음씀씀이가 정답다. 



라일락의 은은한 향기가 서재를 감싸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꽃이 만발했을 때 방문하면 멋진 장면이 연출될 듯하다.



신당동 가옥 관람을 마치고 대문을 나섰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향나무는 두 명의 대한민국 대통령을 배출한 명당을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었다.



신당동 가옥의 담을 따라서 둘레를 거닐어 본다.







박정희 대통령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게 해 주신 이 나라의 국부이시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되었던 최빈국에 경제부흥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반공을 국시로 하여 북괴의 마수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내었다.



신당동 가옥을 뒤로하는데 담장 위에 내려앉은 귀여운 손님이 눈에 띄었다.





직박구리였다.
서재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으니 방 안에 새들이 날아들 수도 있겠다.

신당동 가옥에 관한 보다 상세한 해설은 아래 포스트를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미리 들어보는 박정희 대통령 신당동가옥해설



여름날씨라 해도 좋을 만큼 따사로운 주말이었다.



한강에는 봄을 만끽하러 나들이 나온 인파가 평온하게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일생을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살다 가신 박정희 대통령이 계시기에
아름다운 주말을 즐길 수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리라.



덧글

  • 河異池 2015/07/04 12:49 # 삭제 답글

    1940년대 후반, 그때 박정희장군은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이셨다.
    가끔 사령부 내 각 부서를 순시할때는 위 사진에 있는 소장계급장이 달린 잠바와, 저 모자를 쓰시고,
    손에는 짧고 까만 지휘봉을 들었었다.
    참모장을 대동하고 각 부서를 순시하면서 부서 내 장병들에게는 별 말씀이 없었지만 쭉- 한번 둘러보실때
    마주치는 그 눈빛이 너무도 강열해서, 시선을 마주치기가 어려울만큼 상대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그 박정희 장군이 훗날 세계 최빈국의 한국을, 세계 10위권의 부국으로 끌어올리는 위대한 인물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지금도 박정희 대통령을 회상하면 군복을 입은 사령관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 오오카미 2015/07/07 08:48 #

    박정희 장군을 직접 만나보셨군요. 부럽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위하여 하늘이 내려주신 영웅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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