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ライフ 연극 숲귀신 2014/07/28 13:32 by 오오카미


삼성동에 위치한 서울종합예술학교 창조관캠퍼스 지하에 올해 4월, 안똔체홉극장이 개관했다.
이 소극장에는 2009년 10월에 뮤지컬 화랑의 쇼케이스를 관람하러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러시아의 대표적 극작가인 안똔체홉의 이름을 빌려와 공연장의 이름을 새롭게 바꾸고
그의 작품만을 상연하는 전문공연장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창조관 건물의 홍보판에는 이 학교 출신의 연예인들 사진이 실려있다.
애프터스쿨의 나나가 특히 시선을 끈다.



안똔체홉극장에선 그의 서거 110주년을 기념하여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초기작품 중 장막극 4편을 차례대로 무대에 올리고 있다.
4월 10일부터 5월 11일까지 개관작으로 검은 옷의 수도사가 상연되었고 
차기작인 숲귀신이 7월 10일부터 8월 10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10월 10일부터 11월 10일까지 잉여인간 이바노프,
12월 20일부터 내년 1월 20일까지 부정상실이 예정되어 있다.



안똔 체홉(Anton Chekhov). 다른 표기로는 안톤 체홉, 안톤 체호프라고도 한다.
러시아어의 경우 실제 발음은 된소리에 가깝다고 하나
기존의 외래어표기법에 의하여 거센소리로 표기되다 보니
안똔보다는 안톤이라는 표기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안똔 체홉 전용극장답게 로비에는 그의 사진이 다수 전시되어 있었다.
체홉(1860~1904)은 고학으로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했고 
대학시절부터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하여 신문, 잡지에 글을 기고했다고 한다. 
체홉의 4대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갈매기(1896), 바냐아저씨(1897), 세자매(1901), 벚꽃동산(1903)은
그의 짧은 생애 중 만년에 쓰여진 작품들이다.



로비의 사진 중 체홉과 톨스토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두 명의 대문호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극단 애플씨어터의 전훈 대표가 연출한 연극 숲귀신은 4막으로 구성된 장막극이고
1부 75분, 인터미션 15분, 2부 55분으로 구성되었다.

작품 속의 주요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세례브랴꼬프 - 퇴임한 유명교수이자 예술평론가. 세상물정도 모르면서 자신만이 옳다는 자만에 빠져있는 늙은 현학자.
옐레나 - 세례브랴꼬프의 젊고 아름다운 후처. 많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천사같은 여자.
이고르 - 세례브랴꼬프 전처의 남동생. 즉 처남.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감수한 따뜻한 사내. 옐레나를 사랑하고 있다.
마리아 - 세례브랴꼬프 전처의 모친. 즉 장모. 후처를 들인 사위임에도 학식자란 이유로 그를 맹목적으로 숭배한다.
쏘냐 - 세례브랴꼬프 전처의 딸. 나이차 얼마 안나는 새엄마를 경계하면서도 애처롭게 생각한다. 흐루쇼프에게 반해있다.
졸뚜힌 - 세례브랴꼬프의 이웃.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젊은 갑부. 쏘냐를 짝사랑하고 있다.
율랴 - 졸뚜힌의 여동생. 어리숙한 오빠를 대신하여 가계를 책임지고 있다. 효도르를 좋아한다.
이반 - 세례브랴꼬프의 오랜 친구. 지역주민들에게 대부님이라 불리는 지역 유지.
효도르 - 이반의 아들. 부동산업으로 갑부가 된 호색한으로 멍청한 구석이 있다. 옐레나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친다.
흐루쇼프 - 숲 속에 살고 있는 의사. 별명은 숲귀신. 벌목을 중지하고 숲을 살리자며 자연보호운동에 앞장선다. 
쟈진 - 곰보에 다리를 저는 몰락한 지주. 외로움 탓인지 수다스럽다. 숲 속 물래방아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이날 공연은 세례브랴꼬프 역에 남명렬, 옐레나 역에 김진이, 이고르 역에 황찬호,
마리아 역에 신용숙, 쏘냐 역에 조수정, 졸뚜힌 역에 김기남, 율랴 역에 조유미,
이반 역에 이주환, 효도르 역에 최세용, 흐루쇼프 역에 김대건, 쟈진 역에 이상문 배우였다. 
티켓팅 시에 배포하는 팸플릿에 출연배우들의 이미지에 대한 간략한 느낌을 소개하어 있어서 신선했다.



연극 숲귀신은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체홉의 연극은 4대 작품 중 세자매를 제외하고는 모두 접해보았으나
대체 왜 안똔 체홉의 작품이 그토록 유명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에 관람한 숲귀신은 달랐다.
그동안 체홉의 작품을 관람하면서 쌓인 내공으로 인해 이제서야 그의 희곡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일까.
아니면 이번 숲귀신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그만큼 좋았던 것일까. 후자 쪽의 영향이 더 컸으리라 생각하지만
여하튼 체홉의 작품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수확이었다.



이반 역의 이주환과 효도르 역의 최세용 배우.

연극 숲귀신의 줄거리는 현학적인 교수가 등장하고 그 교수의 학식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장모가 등장한다는 점 등
많은 부분에서 바냐아저씨와 유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냐아저씨는 숲귀신을 토대로 하여 쓰여진 작품이라고 한다.
숲귀신의 이고르가 바냐아저씨의 바냐로 진화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연극 숲귀신 속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체홉은 그의 작품 속에서 이야기보다도 인물을 그려내는 데에 특히 중점을 두었다고 전해지는 만큼 
무대 위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을 하나하나 뜯어서 살펴보는 것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한 방편이라 생각한다. 

효도르는 웃음을 유발하는 코믹한 캐릭터다.
유부녀인 옐레나에게 거침없이 대시하다가 따귀를 맞고선 그런 그녀의 박력에 더욱 감동해버리는가 하면
분위기 파악도 하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하는 등 자신의 무지함을 자각하지 못한 채
모든 여성들에게 자신의 남성적 매력이 통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유쾌한 인물이었다.



쏘냐 역의 조수정과 숲귀신 역의 김대건 배우.

쏘냐는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신세대여성이다.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남자, 숲귀신에게 반해버린 후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언니뻘 되는 젊은 새엄마 옐레나에게 경계심을 품기도 하지만 깐깐하고 고집불통인 아버지의 수발을 드는
그녀의 모습을 애처롭게 지켜본다. 술기운을 빌어 옐레나에게 사랑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두 여자는 화해한다.

숲귀신은 토지개발 붐에 반대하며 숲을 보존해야 함을 역설하는 이상주의자다. 
수입이 보장된 의사의 길을 마다하고 숲 속에서 사는 그의 삶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오늘날 자연보호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만큼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의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체홉 자신이 의대 출신의 작가였으므로 작가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진웅 배우의 이미지를 연상케 했던 이고르 역의 황찬호 배우.

이고르는 사색하는 낭만주의자였다.
죽은 누이가 남기고 간 조카 쏘냐에 대한 연민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고서
고향에 남아 저택과 토지를 관리하며 온갖 잡일을 도맡아해왔다.
유명한 교수였던 매형 세례브랴꼬프는 마리아뿐 아니라 이고르에게도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글쓰기에만 몰두하는 그의 이기적인 삶의 자세는 동시에 경멸의 대상이기도 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온 이고르의 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여인
옐레나는 그의 무미건조한 삶에 비치는 한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커튼콜 영상.
아역배우 출신의 김진이 배우는 예쁘게 잘 컸더라.
그녀가 연기하는 옐레나는 매력 넘쳤다.



옐레나 역의 김진이와 세례브랴꼬프 역의 남명렬 배우.

연극 숲귀신은 작품의 제목을 숲귀신이 아니라 옐레나로 해도 좋았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 옐레나의 비중이 컸다.
작품 속에서도 옐레나를 트로이전쟁의 원인이 된 아름다운 왕비 헬레네에 비유하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학자라는 매력에 반하여 나이차가 많음에도 세례브랴꼬프와 결혼했고 그에게 헌신하는 옐레나였으나
애정을 표현하지 않는 남편, 반면에 자신에게 구애하는 귀찮은 남자들 때문에 그녀의 인내력은 이윽고 바닥을 드러낸다. 
누구든 좋으니 제발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달라며 울부짖는 옐레나는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절정을 장식했고
심신의 안정을 되찾은 후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는 옐레나는 갈등이 해소되는 결말을 상징하고 있었다.

[인터뷰] “비극을 넘어 희극으로” ‘숲귀신’의 세례브랴 꼬프와 옐레나 - 데이터뉴스 2014.07.28.



장마가 그치고 모처럼 파란 하늘이 눈부신 주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올림픽공원 상공에서 비행선을 발견했다.
파란 하늘을 헤엄치는 한 마리 자유로운 물고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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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준짱 2014/08/06 09:08 # 삭제 답글

    나나는 구석에 찌그러져 있구만 뭔 '특히' 눈길을 끌어?ㅋㅋ
    이번에 모스크바 갔을 때 체홉의 무덤에 갔었다. 생각보다 수수하더구나.
  • 오오카미 2014/08/06 11:52 #

    구석에 있어도 빛을 발하는 여인이잖냐. ^^
    체홉은 연극계에선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문호라고 하더구나.
    그가 잠들어있는 곳은 다음에 나올 네 책에서 볼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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