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제35회 서울연극제가 개최 중이다. 올해의 슬로건은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


공식참가작 중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관람한 연극은 거울속의 은하수.
극단 한양레퍼토리에서 제작했고 신동인이 연출, 신은수가 극작을 맡았다.

최형인, 박용수, 신용욱, 류태호, 김왕근, 추귀정, 이혜원, 조한준, 김희연, 김희정
10명의 배우가 출연했고 공연시간은 1시간 50분이었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광복을 앞두고 있는 1945년 8월,
공간적 배경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중 하나인 의친왕의 저택이다.
연극 거울속의 은하수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의친왕 이강 - 고종의 다섯 째 아들. 상해임시정부로 망명을 시도했다가 일제에게 발각되어 송환된 바 있다.
일제의 감시를 받고 있으면서도 비밀리에 독립군을 후원하는 등 끝까지 일제에 항거한 인물이지만
광복이 되면 왕실이 복권될 거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으며 수많은 후실을 둔 시대착오적 인물이다.
의친왕비 - 연안 김씨 김사준의 딸. 의친왕의 정실.
평소에도 왕실 복식을 갖춰입고 왕실의 법도와 격식을 철저히 지키는 꼿꼿한 여인.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인지 의친왕이 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내하고 있다.
이건 - 의친왕의 장남. 차남인 이우와 함께 일제의 볼모가 되어 일본에서 군사교육을 받았다.
일본 황족인 요시코와 결혼함으로써 의친왕의 눈밖에 났고 이후 부자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히로시마에 임관한 이우가 원폭으로 사망하자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조선으로 돌아온다.
이기권 - 의친왕의 측근. 왕의 비위를 맞추어 신임을 얻은 간신배. 각종 청탁을 받아 뒷돈을 챙기고 있다.
의친왕에게 젊은 여자를 조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홍정순 역시 그의 작품이다.
호리바 - 이건을 보필하는 일본인 사무관. 사리분별력을 갖춘 인물.
박찬주 - 개화파 정치인 박영효의 손녀. 이우의 미망인.
일제의 강압에도 불구하고 일본 여인과 결혼하기를 거부했던 이우가 선택한 여인.
남편의 비보를 듣고도 가족 앞에서 의연한 자세를 보이지만 홀로 남은 거실에서 끝내 눈물을 보인다.
마츠다이라 요시코(松平佳子) - 일본 황족. 조선인을 업신여기는 오만방자한 여인.
술과 춤에 빠져사는 그녀가 할 줄 아는 한국어라고는 아가씨 한 단어뿐.
이광 - 의친왕의 7남.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이나 폐병을 앓고 있다.
홍정순 - 의친왕의 13번째 후실. 교사 생활을 하다가 19세 때 43살이나 많은 의친왕에게 간택된다.
왕의 저택에 들어온 후 정실인 의친왕비 앞에서 긴장된 나날을 보내지만
정작 왕 앞에선 갖은 애교를 부리며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이해경 - 의친왕의 5녀. 발랄한 성격의 신세대 여성.
의친왕이 양악이라고 꺼려함에도 아랑곳없이 집 안에서 피아노 연주를 즐긴다.
광복 후에는 피아노를 공부하러 한국 땅을 떠나 유학길에 오른다.

연극 거울속의 은하수는 광복과 함께 몰락하는 대한제국 황실을 그린 가족극이자 시대극이었다.
광복을 맞이함으로써 대한제국 황실이 해체되고 황족은 평민 신분이 되었으니
황족 입장에선 광복의 결과가 달갑지만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의친왕은 후실 수가 13명, 자식 수가 12남 9녀에 달했다고 한다.
1945년이 배경인 극 속에서 의친왕의 마지막 후실인 홍정순 여사가 19세로 등장하고 있지만
역사상으론 당시에 이보다 나이가 많았고 1941년에 이미 의친왕의 10남인 이석을 출산했다.
젊은 후실이라는 점을 보다 강조하기 위하여 의도된 왜곡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건이 기차 안에서 만나는 창씨개명한 조선 여인 요시코(美子)였다.
그의 일본인 부인의 이름도 요시코이고(한자는 다르다) 같은 배우가 두 명의 요시코를 모두 연기하기 때문에
조선 여인 요시코가 등장하는 대목은 몽환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기차 안에서 요시코라는 이름의 조선 여인을 만난 것인지
아니면 술과 춤에 찌든 일본인 부인 요시코에 대한 애증의 결과가 만들어낸 상상 속의 산물인지 모호했다.
개인적으론 후자 쪽일 거라고 생각한다.
광복 후 이건은 일본인으로 귀화했고 요시코와는 이혼했다.
극 속에서 그가 의친왕에게 내뱉었던 대사처럼 팥죽을 팔며 평민으로 살았다.

인간사 흥망성쇠야 어찌 되었든 계절은 순환하고 따사로운 봄이다.
올림픽공원의 영산홍은 붉고 탐스럽게 물들었다.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