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 旅行 남한산성(南漢山城) 등산 續편 2012/10/25 12:05 by 오오카미

지지난주에 이어 지난주에도 남한산성에 다녀왔다.
성내천의 잉어 친구들은 따사로운 가을햇살 아래 어김없이 활기찬 모습이었다.
오후 12시 10분.
마천동의 성골마을출발점에서 남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번엔 서문 방향으로 올랐으므로 이번엔 수어장대 방향의 등산로를 택했다.
여름엔 물이 흐르려나 싶은 골짜기도 있었다.
수어장대로 향하는 길에는 약수터가 2개나 있었다.
유일천 약수터.
등산로를 약간 벗어난 지점에 위치한 유일천 약수터에서 
수통에 물을 보충한 후 산행을 속행했다.
구멍철판으로 만들어 놓은 다리가 두세 개 정도 등장했다.
일장천 약수터.
일장천약수를 지나니 계단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내딛는다.
계단길을 올라와 갈림길에서 수어장대 방향으로.
이후로는 정상까지 자연미가 물씬 넘치는 산길이었다.
나무들 사이를 요리조리 헤치며 올라가야 했는데 
경사가 가파른 편이라서 다소 힘이 들기는 하였으나 
길이 넓은 만큼 이 나무 옆으로 지나갈까 저 나무 옆으로 지나갈까,
나무를 왼쪽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오른쪽으로 돌아갈까 등등 
어떻게 길을 오를 것인가를 계속 생각해야 하는 코스였다. 
인공적인 등산로보다 이렇게 선택지가 다양한,
 자연미 넘치는 길 쪽이 산을 타는 재미를 보다 크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후 12시 55분.
등산로의 정상에 올랐다.
산을 다 올라왔음을 알려주는 남한산성의 성벽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제6암문을 통하여 성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 1시.
수어장대에 올랐다. 
장대 주변의 공사 구간은 일주일 전보다 더욱 확장되어 있었다. 
수어장대 담장 옆의 단풍나무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단체로 온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 청년과 처자들도 볼 수 있었다.
수어장대를 뒤로한 후 남문으로 향했다.
지난주에 왔을 때 남한산성의 4대문 중 남문만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벽 밖으로 바라다보이는 풍경에선 가을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울창한 소나무 가지가 빚어내는 소나무 터널이 장관이었다.
수어장대가 해발 497m에 위치하고 있고 남문은 370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동문에서 동장대터까지의 구간과 마찬가지로 수어장대에서 남문까지의 구간도
높이차가 꽤 되므로 성벽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도중에 영춘정이라는 정자를 지나치게 된다.
수어장대로부터 300m, 남문까지 700m 남은 지점이다.
산도 울긋불긋. 여장 옥개석의 담쟁이넝쿨도 울긋불긋.
굽이치는 성벽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 용이 산을 휘감으며 날아가는 듯한 모습 같기도 하다.
다사로운 가을 태양이 빛나고 있었고
많은 등산객이 가을과 남한산성을 만끽하고 있었다.
흘러내리듯 가파른 성벽에서 느껴지는 곡선미는 가히 예술이었다!
산과 숲은 이번 주말쯤에는 한층 더 알록달록하게 변해 있을 것이다.
오후 1시 35분.
남문에 다다랐다.
남문 앞에선 남문수위군점식이 행해지고 있었다.

지난주에는 광주시에서 주최하는 남한산성문화제가 개최되었다.
일주일 만에 남한산성을 다시 찾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군점식도 그 중 하나였다.
군점식 후 진행된 퍼포먼스에 참여한 엑스트라들은
얼굴을 금빛으로 분장하고 있어서 마치 마네킹처럼 보이기도 했다.
문루 위에서 구경하다가 아래로 내려왔다.
말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광화문의 수문장교대의식과 마찬가지로
남문수위군점식 또한 남문을 수위하는 병사들의 교대의식을 의미한다.
교대의식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숫자는 적었지만
그 대신 말이 무려 3필이나 등장하고 있었다.
특히 백마는 신비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지화문(至和門).
정조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지화문이라 칭하였고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이며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다.
또한 현재는 성남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성문 앞에 식재된 느티나무(350년 추정. 성남시 보호수)와 함께
문화와 역사가 살아숨쉬는 시민의 역사터로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는 순한 말들이었다.
남문을 뒤로하고 종로로 향했다.

남한산성 남문은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문이다.
남문을 조금 벗어난 부근부터 주차장이 형성되어 있는 탓에
성 안에 있는 건지 성 밖에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남문에서 종로로 향하는 도중에 남한산성비석군을 볼 수 있다.

남한산성비석군.
성내에는 18~20세기 무렵에 설치된 39여 기의 비석이 있다.
이 중 본 부지(남문진입로) 내로 남한산성 행궁 복원 사업에 따라 이전된 11기와
현 위치에 보존되어있던 19기를 포함한 총 30기의 비석을 한 곳으로 모아
남한산성을 방문하는 탐방객들에게 옛 선현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후대에 소중히 전승될 수 있도록 비석을 한 곳으로 옮겨 정비해 놓았다.
이곳에 있는 비석은 역대 광주유수 및 수어사, 부윤, 군수의 비로서 재직시 백성들을 정성스레 돌봐
치정을 잘 했거나 사랑을 베풀어 선정을 한 분들에게 백성들이 그들을 추념하여 세운 비로서
광주유수, 영의정을 지낸 심상규의 비를 포함 30기의 비석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오후 2시.
종로의 중심 산성로터리(남문안로터리)에 도착했다.
남문주차장에는 남한산성문화제의 메인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두 시부터 세계민속음악과 열린음악회 등의 행사가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러시아 민속무용 팀이었다.
늘씬한 러시아 무희들의 매력에 회장은 한껏 고조되었다.
무대 앞에는 의자들을 나열해 놓아 객석이 조성되어 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소원지태우기 조형물과 간이식당 부스가 형성되어 있었다.
배고픈 등산객 및 방문객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음식시연회 부스 앞에는 길다란 행렬이 늘어섰다.
시연회 줄에 합류하여 십여 분을 기다린 후 음식을 배식받을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무대에서는 중국 팀의 변검 공연이 진행되었다.
변검은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공연 중의 하나인데 먹을 것 때문에 놓치게 되어 아쉽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무대에서 러시아 무희들의 플라멩코 공연이 진행되었다.
가까이에서 보고픈 러시아 미녀들도 음식을 먹느라 놓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메인무대인 주차장을 떠나 행궁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남한산성문화제 기간 동안에는 행궁 입장료가 무료라는 정보를 알고 있었으므로 
매표소로 향하여 가뿐한 어조로 한 장이요 하고 무료티켓을 주문했다.
남한산성행궁은 무료입장시에도 티켓을 발급받아야만 한다.

왕이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것을 행행(行幸)이라 한다.
행행은 당일로 끝나기도 하지만 선왕의 능행이나 휴양, 또는 전란으로 인하여 며칠이 걸리기도 하였는데
이 때 왕이 임시로 거처하던 곳이 행궁(行宮)이다.
특히 남한산성행궁은 전란, 능행시 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광주유수부(행정기관)의 기능까지 겸했던 곳이다. 

남한산성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조선 인조 4년(1626) 남한산성과 함께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14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게 된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철종, 고종이 능행길(여주 효종릉, 광주 순조릉 등)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남한산성행궁은 좌전(종묘)과 우실(사적)을 갖추고 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유사시 임시수도의 역할을 했던 매우 중요한 곳이다.

남한산성행궁의 복원은 1998년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2002년에 상궐, 2004년에 좌전, 2012년 5월 하궐 복원을 완료하였다.

남한산성 행궁 배치도.
외삼문.
외삼문에 인접해 있는 우측 건물이 북행각, 좌측 건물이 남행각이다.
 

한남루 대문을 들어서면 길 우측에 조그마한 연못이 하나 있다.
연못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고 올라서 외삼문을 지나면 외행전이 있는 하궐에 들어서게 된다.
하궐의 입구 부근에는 남한산성의 옛날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약 백 년 전의 남한산성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진들이었다.
전시물 중 몇 점을 아래에 게재해 보았다.
수어장대.1893년 이전.
남한산성 전경. 일제강점기.
남문. 1893년 이전.
남한산성 동문 전경. 일제강점기.
한남루. 1893년 이전.
침괘정. 일제강점기.
연무관. 일제강점기.

검은 황소가 풀을 뜯고 있던 자리에는 현재 남한산성로 도로가 지나고 있으니
상전벽해, 격세지감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남행각에선 무료로 차를 시음해볼 수 있는 다례체험이 가능했다. 
참가하기 위해선 예약표에 인적사항을 기입하여 미리 예약을 해야 했고 시간대별로 인원수가 정해져 있는 듯했다.
남한산성 외행전.
외행전은 왕이 정무를 보던 곳이다. 
 
외행전 앞마당의 우측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건물이 발굴된 현장을 보존해 놓은 시설이 있었다.

남한산성 내행전.


하궐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상궐로 발길을 옮겼다. 
상궐에는 내행전이 자리하고 있다.
내행전의 중앙에는 대청마루가 위치하고 있다.
마루 중앙에는 국왕의 뒷배경에 빠질 수 없는 일월오봉도 병풍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앞에는 왕이 앉는 접이식 의자 교의가 놓여져 있었다.  
마루의 왼편에는 왕의 침전이 있었다.
마루의 오른편에는 세자의 침전이 있었다.
오후 3시.
행궁을 둘러보다가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세 시부터 효종갱 시식회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효종갱은 새벽종(曉鐘)이 울릴 때 먹는 국(羹)이라는 뜻으로
남한산성에서 만들어 밤사이 서울로 보내면 4대문 안 양반들이 새벽에 먹었다고 하니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음식인 셈이다. 
경기문화재단은 1925년에 간행된 해동죽지라는 책의 기록을 근거로 
효종갱의 조리법을 복원하여 올해 8월에 상표출원했고
현재 남한산성 내 음식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올해는 남한산성행궁뿐만 아니라 효종갱도 복원된 셈이다.
효종갱 시식회는 300명 한정이었다.
효종갱은 맛있었다.
전체적으로는 갈비탕을 연상시키는 맛이었는데 전복이 들어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옆 부스에서 진행한 산삼막걸리 시음을 마친 후 먹어서였을까
효종갱 시식을 끝낸 후 입안에서 은은한 삼 향기가 감돌아 뒷맛 또한 개운했다.
효종갱이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행전에서 내려다본 일장각.
외행전 우측에 위치한 일장각은 광주 유수가 거처로 사용한 곳이다.

행궁 안에 있는 나무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내행전 뒤쪽에는 후원이 마련되어 있었다.
후원의 정자에 앉아 행궁과 언덕 아래 백성들이 사는 민가를 내려다보았을 왕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후원 담장 부근에는 근사한 소나무도 한 그루 서 있었다.
남한산성과 관련된 시조들을 접할 수도 있었다.
오후 4시.
외행전 앞마당에서 왕들의 행행이라는 상설공연이 막을 올렸다.
남한산성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음식명과 같은 이름의 백숙이라는 여행자가
남한산성에 와서 백숙만 먹고 가지 말고 산성과 관련된 조선 임금들의 업적을 알고 가길 바란다며 
조선 임금들을 현세에 불러내어 공연을 관람하는 백성들에게 왕들의 치적을 알린다는 내용의 공연이었다.
30분 간의 짧고 코믹한 무대였다.
남한산성행궁을 뒤로하고 귀로에 올랐다.
우리의 옛 것을 복원함으로써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선조들의 시대를 느껴볼 수 있다는 것,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종로에서 서문을 향하여 길을 잡았다.
2주 연속으로 방문한 남한산성은 
다시 또 찾고 싶어지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깊어가는 가을.
가을산은 단풍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덧글

  • 준짱 2012/10/27 08:12 # 삭제 답글

    너 남한산성에 꽂혔구나?^^ 사진으로만 봐도 서울 성곽길과는 비교도 안 될 멋드러진 성벽이긴하다.
    메인 무대랑 관객 사이가 너무 간격이 넓은 거 아니냐? 난 처음에 사람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좀 가까워야 무희들도 흥이 날텐데.
  • 오오카미 2012/10/27 12:47 #

    사람들 득시글댔다. 주말엔 연중 인파로 붐비는 것 같더라.
    높낮이를 달리하며 굽이치는 남한산성의 길다란 성곽은 정말 멋지더구나.
    가장 앞좌석이 무대에서 10미터 가량 떨어져 있었으니까 확실히 무대와 객석의 간격이 넓긴 했다.
    짧은 치마의 무희들은 무대 가까이에서 보아야 흥이 더 사는 법인데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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