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 旅行 남한산성(南漢山城) 등산 前편 2012/10/17 18:12 by 오오카미

토끼가 살찌고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계절 가을에 남한산성을 방문했다.
지난 번에 자전거로 산성역까지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후 남한산성 등산로를 조사해보았는데 산성역에서 남한산성 남문으로 향하는 코스 이외에도
마천동에서 남한산성 서문으로 향하는 코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전거 길찾기 기능을 제공하는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해보면
마천동에서 출발하는 걸로 설정해도 여전히 남한산성 남문으로 향하는 우회로를
제시하고 있어서 기능상의 한계점을 보여준다. 도보로 길찾기의 경우는 아예 루트가 표시되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네이버 지도의 자전거 길찾기는 매우 유용하므로 자주 사용하고 있다.

지도에서 마천역 부근에 보이는 성골마을출발점 부근까지 자전거로 이동한 후
우측에 표기된 등산로를 따라서 남한산성 서문까지 올라갈 수가 있다.
오전 10시 30분.
잘 하면 토끼와 청설모를 만나볼 수도 있는 올림픽공원을 경유하여 성내천자전거도로에 들어섰다.
올림픽프라자상가 북쪽면에서 성내천과 감이천으로 도로가 나뉘므로 주의해야 한다.
룰루랄라 달리다가 감이천으로 들어서서 다시 돌아나오는 해프닝이 있었다.
성내제7교 부근에서 유유히 노니는 잉어들과 아침인사를 나눈다.
성내제5교를 지나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의 고가도로가 등장하고
고가도로 아래에서 자전거도로를 이탈하면 된다.
고가도로를 따라서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거여동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마천1동 방향인 동쪽으로 계속 달리면 된다.
약간의 오르막길 구간인 노블레스아파트 옆을 통과하면 거여삼거리에 닿게 된다.
편의점 앞에서 우회전한다.
우측으로 사자아파트, 비호아파트가 차례로 등장한다.
군부대 옆에 위치한 아파트답게 용맹스러운 이름들이다.
아파트 주변에 자전거를 주차한 후 걸어서 성골마을출발점으로 향했다.
두 아파트를 지나치면 군부대 면회객 주차장, 군부대 정문, 만남의 장소가 차례로 나타난다.
면회객 주차장을 지나치면서 자연스레 군복무 시절이 떠올랐다.
초코파이 한 개에도 감사할 줄 아는 배고픈 시절이므로
군인들에게 주말의 면회와 외출은 단비와도 같은 기쁨이었다.
오전 11시 30분.
만남의 광장을 지나쳐 음식점과 산악용품매장 골목을 통과하며 10분 정도 걸으니 등산로 입구가 나타났다.
지도의 성골마을출발점일 것이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입구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거의 평상복 차림으로 앞서 올라가는 여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운동화로 오르기엔 조금 벅찰 텐테 하고 걱정이 되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등산화 신고 산에 오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나 싶기도 했지만
산에 오를 때 일반 운동화와 등산화는 정말로 현격한 차이가 난다. 특히 하산할 때 등산화는 그 진가를 발휘한다.
운동에 관심이 많은 시대이다 보니 각 지자체마다 트래킹 코스 개발에 열심인 것 같다.
올림픽공원 몽촌토성과 남한산성을 연결하는 토성산성 어울길이란 이름의 알림판이 눈길을 끌었다.
등산로에 접어들어 첫 번째 이정표가 등장했다.
서문과 수어장대 중 어느 쪽으로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서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한산성 서문으로 향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루트가 있었다.
알림판 부근에 이 길이 몇 번 루트인지를 표시한 이정표가 없었기에 몇 번 등산로로 오르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오르는 도중에 약수터가 하나도 없었고 서문 정면에 도착한 것으로 보아
3번 등산로로 서문까지 오른 것 같다. 지도에 의하면 최단거리이므로 그만큼 가파른 길로 봐도 좋을 것이다.
다음 갈림길에선 이정표가 부서져 있었으나 누군가가 친절하게도 
이정표 파편을 방향에 맞추어 가지런히 바닥에 놓아두었다. 고마운 일이다.
정상(서문)이라 쓰인 푯말이 가리키는 방향인 가파른 돌계단을 한 걸음 두 걸음 오르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45분.
돌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서문을 향하여 계속하여 산을 오른다.
돌계단, 나무계단, 흙길, 돌길
길의 종류는 달라도 모두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또한 등산로 가장자리에 목책과 두 줄의 하얀 로프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올랐던 등산로의 특징을 기억해내는 것은 하산할 때 커다란 도움이 된다.
바위로 둘러싸인 돌계단을 오른다.
이윽고 이 등산로의 정상이라 할 수 있는 남한산성 서문이 자태를 드러냈다.
오후 12시 10분.
남한산성 서문에 올랐다. 서문을 다른 말로 우익문(右翼門)이라고도 한다.
서문 누각의 편액에는 우익문이라 쓰여 있다.
서문을 통하여 산성 내로 들어가기 전에 성 외곽으로 난 길을 거닐어 보았다.
서문 서쪽으로 난 오르막길의 정상에 오르면 경치가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랬다.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조망이 좋은 곳이었다.
전망대의 조망도를 살펴보니 무려 9개의 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조망도에는 검은색 동그라미에 흰색 숫자로 좌측 위에서부터 1번부터 8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순서대로 청계산, 관악산, 대모산, 남산, 북악산, 북한산, 아차산, 도봉산이다. 
그리고 6번 아래에 있는 9번 표시가 이성산. 도합 9개의 산이 되겠다.
아쉽게도 스모그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아 조망도에 나온 모습 그대로 주변의 산을 감상할 수는 없었다.
성벽 위의 여장(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성벽 위에 설치한 담장)에선
붉게 물든 단풍이 가을이 온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탐스러운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전망대의 더욱 왼쪽을 바라보니 성벽 바깥쪽을 따라 오솔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일단 성내로 들어가보고 싶었기에 전망대를 내려왔다. 
전망대 오른쪽으로 난 길로 서문 앞까지 다시 내려왔다.
서문을 통과하여 드디어 남한산성 성내에 들어선다.

우익문(서문) 사적 제57호.
서문은 산성의 북동쪽 모서리 부분의 해발 450m 지점에 위치하며 개구부와 문루로 구성되어 있다.
개구부는 내외면이 반원형의 홍예식이다. 외면 홍예 안쪽에는 2짝의 목재판문을 설치하였다.
판문의 문짝에는 방형 철엽을 서로 겹치도록 부착하였다.
대문을 지탱하는 문지두리는 석재로 위, 아래에서 지탱하도록 되어 있고,
양측벽에는 장군목을 끼워 빗장을 지를 수 있도록 장방형 홈을 파놓았다.
서쪽 사면의 경사가 급해 이곳에서 물자를 이송하기는 어렵지만
광나루나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서문은 산성의 초축시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정조 3년(1779) 개축하여 우익문이라 칭하였다.

남한산성 성내에 들어와본 게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니 이십 년도 더 된 것 같았다.
왠지 멀게만 느껴졌던 남한산성이 자전거로 한 시간을 달리고,
등산로로 한 시간을 오르면 닿을 수 있는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남한산성 지도.

이날 등산의 희망 코스는 서문에서 시작하여 북문을 거친 후 종로 일대를 돌아보고나서
동문에서 동장대터까지 이동 후 벌봉을 찍고 한봉 방향으로 빠지다가 탑공원을 구경하고
다시 동문으로 돌아온 후 남문을 거치고 수어장대를 거쳐서 서문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남한산성 전체를 거의 훑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희망사항과는 달랐다.
방금 전 올랐던 전망대와 주변 풍경을 성 안에서 내려다보았다.
전망대에서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이 느껴진다.
여장을 따라 서문에서 북문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곳곳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나도 애주가의 한 사람이지만 한국인들 술 정말 좋아한다.
여장을 따라 걷다보니 성 밖으로 길게 삐져나온 길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야트막한 성벽과 여장으로 둘러싸인 길다란 모양의 길이었다.
언덕길로 되어 있어서 저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성 안에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금증을 자아낸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 길로 통하는 암문(暗門)은 서문으로부터 300m, 북문까지 1km 남은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제5암문(연주봉옹성 암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 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 암문은 연주봉옹성으로 연결되는 통로로 서쪽에는 성벽에서 2m 정도 돌출된 치가 있고
북쪽으로는 직선길이 150m 정도의 연주봉옹성이 연결된다.
개구부 외부는 홍예식이고 내부는 평거식이다. 통로의 길이는 5m 정도로 천장은 장대석 5매로 덮여 있다.

제5암문을 통하여 성 안에서 성 바깥으로 나왔다.
성벽을 이루고 있는 돌에서 역사의 자취가 느껴진다.
본성의 밖이라고는 해도 연주봉 옹성 안이기도 하니
성 밖이면서 또한 성 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길이었다.
길을 나아감에 따라서 옹성의 모습은 점차로 뚜렷해졌다.
옹성을 이루고 있는 여장과 옹성 끝에 위치한 포대의 벽에 사용된 자재를 보니 
한눈에 봐도 최근에 복원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예스러운 맛은 덜했지만 그 대신 깔끔하고 단정한 맛이 있었다.
옹성의 끝자락에 위치한 연주봉에 이르렀다.

연주봉옹성(連珠峰 甕城)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옹성은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
요충지에 대한 거점 확보를 위해 성벽에 덧대어 설치한 시설물로 다른 성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이 옹성은 북서쪽의 요충지인 연주봉을 확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연주봉에서 바라보면 아차산 북쪽과 남양주 일대의 한강이 조망되고
이성산성과 하남시 춘궁동 일대가 특히 잘 보이며 성 내부의 지역도 관측되는 중요한 요충지이다.
근래의 발굴조사 결과 옹성 끝에서 포대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되어 고증을 통하여 포대를 복원하였다.
연주봉 옹성의 둘레는 315m이고 전투 시에 성내로 출입할 수 있도록
옹성과 본성 성벽이 만나는 위치에 암문을 설치하였다.

연주봉 옹성의 포대에 올라 내려다본 경치. 
앞서 설명글에도 언급되었듯이 본성의 성벽 바깥쪽에 추가로 설치한 성벽은 
모양이 항아리 같다고 하여 항아리 옹 자를 사용하여 옹성이라 부른다.
연주봉 포대에는 포구가 1개 설치되어 있었다.
오늘날 군대에 비유하자면 포진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연주봉 옹성은 사진 촬영하기에도 좋은 포토스팟이었다.
암문을 통과하여 다시 본성 안으로 들어왔다.
서문까지 가파른 등산로로 올라왔던 만큼
북문으로 향하는 길은 내리막길로 변하였다.
지금까지 내려온 길을 돌아다본다.
산을 올라갈 때에도 반대로 내려갈 때에도 곧잘 뒤를 돌아다보곤 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확인하며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고 싶은 욕구의 발로인 걸까.
북문까지 700m 남은 지점에 도달했다.
그런데 이정표를 살펴보면 내가 걸어온 방향인 서문 표시가 없다. 
만약 북문에서 서문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면
갑자기 좌표가 사라진 이정표 때문에 당황하게 되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이정표를 세우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성의 안팎으로 소나무가 무척 많았다.
서문으로부터 800m, 북문까지 300m 지점이다.
남한산성 서문이 해발 450m이고 북문이 해발 365m라고 한다.
그런 연유로 서문에서 북문까지는 아무래도 내리막길이 많았다.
오후 1시 5분.
북문에 당도했다.

북문(전승문)
남한산성에는 동, 서, 남, 북에 4개의 대문이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에서 전승문(全勝門)이라고도 하였다.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군사 300여 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군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계략에 빠져 전멸하고 말았다.
이를 법화골 전투라 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였다.
정조 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성문을 개축하고 이름을 붙여 전승문이라 한 것은
그 때의 패전을 잊지 말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선조 때의 기록을 보면 산성 내에 동문, 남문, 수구문 총 3개의 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북문은 인조 2년(1624)에 신축된 성문이라고 생각된다.

남한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벌봉은 북문으로부터 2.1km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북문 밖으로 나가보았다.
북쪽 방향인 만큼 햇볕이 잘 안드는지 성벽에는 이끼가 무성했다.
다시 성 안으로 돌아왔다.
벌봉으로 가기 전에 남한산성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종로에 들러보기로 했다. 
북문에서 종로까지는 300m 거리였다.
혹시 쌀쌀할 수도 있겠다 싶어 점퍼를 하나 걸치고 출발하였으나
서문을 향하여 오르는 도중에 벗어버리고 말았다.
지난 주말의 날씨는 예상외로 따사로웠다.
한양의 중심이 종로였듯이 남한산성의 중심이라 하여 종로라 불렀다고 한다.
종로는 한 마디로 먹자골목, 아니 먹자마을이었다.
한옥처럼 기와지붕을 올린 건물이 즐비하였으나 거의가 식당이나 카페였다.
골목을 지나 조금 더 내려오니 산성로터리(남문안로터리)가 나왔다.
서울에서도 둥그런 원형의 모습을 갖춘 로터리는 이제 찾아보기 힘든데
남한산성 성내에서 로터리를 볼 수 있다니 신기했다.
숭렬전이란 화살표가 호기심을 자극하여 발길을 옮겨보았다.
숭렬전까지는 300m쯤 식당가 골목길을 진입하다가
산속으로 난 오르막길을 200m 정도 올라가야했다.
오후 1시 20분.
숭렬전 앞에 다다랐다.

숭렬전(崇烈殿).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
숭렬전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 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 장군의 영혼을 모신 사당이다.
인조 16년(1638)에 지었으며 정조 19년(1795)에 왕이 숭렬전이라 이름을 지어 내려주었다.
신분이 다른 왕과 신하를 함께 모신 것이 특이한데 이는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꿈과 관련이 있다.
당시 인조의 꿈에 나타나 청병의 기습을 알려준 온조왕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우자
온조왕이 꿈에 다시 나타나 혼자는 외로우니 충직한 신하 한 명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다음날 이서 장군이 병사한 것이다.
인조는 필시 온조왕이 이서를 데려갔다고 생각해 함께 사당에 모시게 했다는 것이다.
이서는 평소 독서를 즐겨 소장한 장서가 매우 많았으며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정공이다.

문이 닫혀 있어 사당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숭렬전 옆에 위치한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을 보충하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숭렬전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내려왔다.
내려오다 보니 숭렬전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되던 부근에도 약수터가 하나 있었다. 
 
효자우물
한 소년의 지극한 효성 이야기를 담고 있는 우물이다.
산성 북문 안에 살던 정님이라는 열두 살 난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가 병이 나 눕자 지나던 사람이 잉어가 특효인데 하고 가버렸다.
정남이는 매일같이 잉어를 잡으러 여기저기를 다녔으나 잡지 못했다.
어느 날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우물가에 황금비늘잉어가 있어 잡아다 고아 드렸더니
아버지의 병환이 나았다는 이야기다. 그 후 이 우물을 효자정이라 불렀다 한다.
원래는 3m 정도 위쪽에 있었는데 일반 약수터로 개조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이용하고 있다.

어떤 식당의 넓은 뒤뜰에서는 운길산에서 마주쳤던 백구를 연상시키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개목줄 연장장치가 설치되어 있어서 향수를 자극했다.
다음으로는 산성로터리 부근에 위치한 침괘정에 올라보았다.
오후 1시 45분.
침괘정에 올랐다.

침괘정(枕戈亭) 
침괘정은 무기제작소라 알려져 왔으나 온돌과 마루방, 회랑처럼 된 툇마루 등
건물 구조로 보아 집무실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건립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주변에 있던 무기창고를 명나라 사신 정룡이
총융무고라 이름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영조 27년(1751) 광주유수 이기진이 고쳐 짓고 枕戈亭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침과정을 침괘정이라 부르는 까닭은 명확하지 않다.
무기제작소와 무기창고는 침괘정 부근에 별도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침괘정에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한옥 형태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침괘정을 내려와 역시 로터리 부근에 위치한 남한산성 행궁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행성의 정문 누각에는 한남루(漢南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당당하게 정문을 들어서는데 검표인이 나를 막아섰다. 표를 내란다.
남한산성 입장료 폐지되지 않았냐고 반문했더니 행궁은 제외란다.
남한산성 행궁의 입장료는 성인의 경우 2,000원이다.
입장료를 강요하는 행궁을 뒤로하고 다시 종로를 배회했다.
종로에서 수어장대로 향하는 길의 도중에는 만해기념관이라는 사설 박물관도 있었다. 
입장료는 행궁과 같은 가격이었다.
오후 2시 10분.
종로 배회를 마치고 산성로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으로 들를 남한산성 동문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했다.

덧글

  • 준짱 2012/10/17 21:32 # 삭제 답글

    아니, 이렇게 오래 읽었는데 아직도 절반이 남았어?ㅋㅋㅋ
    나는 아무래도 올해 등산은 무릴 것 같으니 날씨 좋을 때 너 혼자라도 실컷 다니렴. 아~ 부럽다.^^
  • 오오카미 2012/10/18 09:32 #

    몸조리 잘 해라. 허리와 무릎 강화에 좋은 실내운동도 한번 찾아보고.
    빨리 완쾌해서 같이 등산 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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