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편 범인 없는 살인의 밤 外 2010/03/04 00:11 by 오오카미

지난달에 독소소설을 마저 읽음으로써 히가시노 케이고(東野圭吾)의 소설 4번째 작품의 체험을 마쳤다.
이번 주에는 그의 단편집 2권을 읽었고 3권짜리 장편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단편집 "범인 없는 살인의 밤(犯人のいない殺人の夜)"과 "수상한 사람들(怪しい人びと)"은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2009년에 번역 발간했다.
일본 원작의 발간연도는 각각 1990년과 1994년이니까 히가시노 케이고의 초기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작품의 번역가는 윤성원 씨. 나에게는 낯익은 이름이다.

이 분이 번역한 작품으로 처음 접한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
지난 1월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접한 낯익은 이름이 궁금하여 문학사상사에 문의메일을 보냈었다. 
이 책의 번역자가 내가 알고 있는 그 분이 맞는지 답변해주시면 좋겠다는 내용을 적었다.
개인 신변에 관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므로 출판사는 정중한 거절의 답변을 보내올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결과는?
... 답변 자체가 없었다. 소위 말해서 씹힌 거다.
독자가 질문을 하면 최소한 가타부타 회신을 보내는 것이 기본적인 매너라는 것을 인지하길 바란다.
여하튼 번역가 윤성원 씨의 약력으로 미루어 보건대
내가 일본어를 처음 공부하던 시절 강의를 들었던 그 분이 맞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응? 오래전의 일인데 어떻게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냐고? 
쉽게 이해되는 알찬 강의였을 뿐만 아니라 강사 분의 미모가 출중했거든.

여선생이 아예 없는 삭막한 남자중고등학교를 나온 나로서는 예쁜 여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것이 일종의 로망이었어.
그 아련한 꿈(?)을 대학생이 된 후 방학 때 수강한 외국어학원에서 달성하게 된 셈이니까 잊혀질 수가 없을 수밖에.
아는 사람이 번역한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왠지 더 친근하게 작품이 와닿는 듯한 느낌 나쁘지 않더라구.

히가시노 케이고의 작품으로 처음 접한 것은 지난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성녀의 구제라는 갈릴레오 시리즈의 최신작 장편이었어.
하지만 결말에서 밝혀지는 트릭과 타이틀의 의미를 제외한다면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
그러나 그 다음에 접한 그의 단편집 괴소소설을 읽으면서 그에 대한 첫인상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어.
짧은 단편 안에 집약해 넣은 유머와 독설. 예사롭지가 않더군.
왜 그의 작품들이 대형서점 서가의 많은 스페이스를 차지하고 있는지 조금씩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구.

3개의 웃음소설 단편집을 접한 후에 왠지 타이틀에 끌려서 집어들게 된 것이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이었어.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었지.
작은 고의(故意)에 관한 이야기 / 어둠 속의 두 사람 / 춤추는 아이 / 끝없는 밤 / 하얀 흉기 / 굿바이, 코치 / 범인 없는 살인의 밤. 
결론적으로 7개의 단편은 5개의 살인사건, 1개의 사고사, 1개의 자살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범상치가 않은 거야. 이 사람의 작품이 왜 인기가 있는지 페이지를 넘길수록 저절로 수긍이 가더군.

작은 고의에 관한 이야기(小さな故意の物語)는 좋아하는 형사드라마 아이보우(相棒)에서도 종종 소재로 등장했던
"未必の好意"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이었어. 미필의 고의란 고의적인 행동이었다고 100% 단언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그럴 의사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여 범죄를 성립시키는 용어거든. 
예를 들어 바닥에 바나나껍질을 버려서 지나가는 사람이 그것을 밟고 넘어지게 만들었을 때 
고의로 바나나껍질을 버렸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未必の好意가 성립하여 처벌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솔로들에겐 이성과 사귀기 시작한다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인데 커플들에겐 헤어지는 게 어려운 일인가 보지.
솔로들을 분노케 하는, 있는 자들의 횡포로 비춰질 수도 있는 소재라고 할 수도 있겠어.

어둠 속의 두 사람(闇の中の二人)은 일종의 안타까움이었지. 하긴 이 책의 단편은 모두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터부(Taboo)는 묘한 성적 쾌감을 주는 요소인 것도 사실이니까.
이 단편은 읽는 순간부터 그런 필이 느껴지더라구.

춤추는 아이(踊り子).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고 생각해.
누군가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용기 있게, 확실하게 고백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인지도 모르겠어. 
문제는 그렇게 실천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거지. 젠장...
홍길동은 호형호제를 못해서 울부짖었지만 솔로들은 고백을 못해서 울부짖고 있는 거라구. 안타까운 일이야.

끝없는 밤(エンドレス・ナイト). 나도 오사카는 마음에 들지 않아.
60km 떨어져 있는 쿄토는 가장 좋아하는 도시이지만 말야.
사람마다 장소에서 느끼는 감각이라는 것도 달라지기 마련일 거야.
여성의 향수 냄새라든가 샴푸 냄새라든가 살내음이라든가...
향기로 기억한다는 것도 꽤 매력있는 추억일 거라는 생각을 해봤어.

하얀 흉기(白い凶器). 담배는 백해무익하다고들 하잖아.
10년 이상 담배를 피우다가 금연하고 있는 한사람으로서 의견을 피력해 보자면
확실히 흡연할 때보다는 금연할 때의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해.
음... 여자들이 담배 냄새 싫어한다잖아? 그것만으로도 금연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아?
부족해? 그럼 이유를 더 갖다 붙이든가.

굿바이, 코치(さよならコーチ). 아... 이 이야기도 가슴이 저미는 내용이었어.
음...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것.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 감사할 일이지.
하지만 그 누군가가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 그때는 한편으론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론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거든.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될 테고, 솔직히 어려운 이야기지.
여하튼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부담이었던 것이 지금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더라구.
인간이란 간사한 동물인가 봐.

범인이 없는 살인의 밤(犯人のいない殺人の夜). 이 단편집의 타이틀로도 사용된 7번째 단편의 제목이야.
구성 자체가 무척 신선했어. 밤과 지금이라는 챕터로 번갈아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모두 1인칭 주인공 시점이야.
하지만 밤에서의 나와 지금에서의 나가 서로 다른 인물이거든. 그래서 읽어나가다보면 조금 헷갈리기도 해.
게다가 이야기가 결말부에 다다르고 나서야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을 접하게 되면 
필시 앞에 읽었던 페이지들을 다시 읽어보며 내용을 다시 한번 훑어보게 될 거라고 생각해.
그런 묘미가 있는 작품이었어. 번역가께서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내용을 이해했다고 후기에 적으셨더라구.


덧글

  • 준짱 2010/03/04 05:59 # 삭제 답글

    나도 포스팅 읽으면서 혹시 그 사람? 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구나.
    니가 자주 입에 올려서 그 이름을 나도 기억하고 있다. 허허허~

    암튼 번역가로 일을 하고 있다니 반갑구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실마리는 역시 소중한 것 같아. 그게 무엇이건 간에.^^
  • 오오카미 2010/03/04 10:22 #

    당시 그녀의 수업을 듣게 된 것도 하나의 인연이라고 생각해.

    나는 여자 선생님 수업 듣자고 했으나 너희가 남자 선생님 수업이 착실할 거라면서
    강사들 이름 보고 골랐던 거잖아.
    첫날 등원했을 때 교단에 아리따운 여성 분이 서 계시길래
    강의실 잘못 안 줄 알고 바로 들어가지도 못했다니까.

    예전 일기장 들춰 보니까 당시 학원 다니면서 일본어 수업 듣던 때의 감회가 예상대로 적혀 있더라구.
    역시 일기는 꼭 써야 한다니까.
  • michell 2011/01/12 09:16 # 삭제 답글

    이 글 읽으니 너무 기분이 좋네요.
    고맙고 반갑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일인데,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요.
    좀 더 제대로 가르칠걸, 하고 이따금씩 후회도 하는데.....
  • 오오카미 2011/01/12 18:09 #

    우와. 답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선생님께 일본어 수업 듣던 그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청강한 제자 중 한사람으로서
    수업은 정말 훌륭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윤 선생님께 일본어의 기초를 배울 수 있었던 것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왕성한 번역활동 응원하겠습니다.
  • michell 2011/01/16 07:21 # 삭제 답글

    왕성한 번역활동은 하지 않고, 그저 간간이 하는 정도이지요.
    아무튼 응원해주신다니 고맙네요.
    그때 학생들 얼굴 보면 기억날 텐데, 친구들 한 번 모아보세요.
    한국 나가면 소주라도 한 잔 살게요^^
  • 오오카미 2011/01/17 15:59 #

    네. 감사합니다. ^^
  • 2012/12/18 22:5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황장수의 뉴스브리핑 블루

문갑식의 진짜tv